자신의 취향에 맞춤한 브랜드의 정기 구독 회원이 되고, 추천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정교한 구독 서비스에 깊이 빠져든 사람들. 는 이들을 ‘구독인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굳이 만나서 설명하지 않아도 나의 취향대로 보고 먹고 쓸거리들이 내 손안에 도착한다. 특정 서비스나 물품을 정기 결제를 통해 제공하는 구독경제가 일상에 촘촘히 파고들었다.
<구독경제 마케팅>을 쓴 존 워릴로우는 신문과 잡지의 흥망성쇠로 기존의 경제관념과 구독경제를 설명한다. 그는 “우리는 더 이상 주류 출판업자들이 제공하는 아주 개략적이고 일반적인 정보에 만족하지 않게 됐다. 콘텐츠에 대한 취향이 점점 세분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테면 컬링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1년에 기껏해야 한번 겨울에나 컬링 기사를 몇 번 내보내는 신문을 읽기보다, 컬링에 특화된 다른 매체를 찾아 떠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보고, 읽고, 먹고, 쓰는 다른 것에도 적용된다. 취향의 세분화와 이에 맞춤한 경험들, 구독경제라고 하면 바로 거론되는 영상 구독 플랫폼 ‘넷플릭스’ 회원 가입과 술·꽃·청소·운동 구독 등이 그 예다.
내 마음을 읽은 듯 취향을 반영한 물건을 제공하는 브랜드의 정기 회원이 되고, 추천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정교한 구독 서비스의 세계에 깊이 빠져든 이들이 있다. ESC는 이들을 ‘구독인간’이라 부르기로 했다.
구독경제 시장은 매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다.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에 따르면 2016년께 4200억 달러(약 516조원)였던 구독경제 시장은 올해 5300억달러(약 651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구독경제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미국의 결제 시스템 소프트웨어 회사 ‘주오라’는 경험 중심의 구독경제에 초점을 맞춰 “제품을 소유하는 것은 이제 과거의 방식”이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이 세계를 이끄는 구독인간이란 누구인가. 하나경제연구소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서의 구독 경제>에서 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반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가 구독경제를 이끄는 주축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의 해석에 따르면 20~30대 청년층은 저성장의 장기화로 소득 규모와 관계없이 소비자로서의 욕구가 즉각 충족되는 소비에 더욱 관심을 쏟는다는 것이다. 한편 구독인간의 범위를 더 넓게 보는 전문가도 있다. ‘주오라’ 창립자인 티엔 추오는 <구독과 좋아요의 경제학>에서 설명한다. “(이 시대의) 새로운 고객들은 필요한 순간에,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기기를 통해, 원하는 정보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물론 이런 기대는 밀레니얼 세대가 주축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이 이 기대를 공유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지난 몇 달간 비대면 구독 서비스가 일상화하면서 구독경제는 정말로 ‘거의 모든 사람’의 삶에 탄탄하게 자리 잡은 듯하다. ESC가 취재한 구독 서비스 업체 가운데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한 지난 2월 이후 가입자가 늘거나 구독률이 눈에 띄게 증가한 곳은 여럿으로 파악됐다. 프리미엄 면도용품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와이즐리’는 신규 구독자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5배 늘었다. 와이즐리는 회원이 제출한 면도 습관에 맞춰 적절한 면도 용품과 사용주기를 추천한다. 면도날 교체 시기에 맞춰 면도날을 배송한다. 와이즐리 김동욱 대표는 구독자 수 급증에 대해 “4월 출시한 신제품 영향도 있겠지만, 비대면 소비가 늘어난 코로나19 사태와도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영상 구독 서비스 ‘왓챠’의 경우 “코로나19가 국내 유행하기 직전인 1월13~19일 일주일간의 총 시청 분량을 100으로 잡았을 때, 1월 말~4월 말까지 주간 시청 분량 평균은 133”이라고 밝혔다. 왓챠의 허승 매니저는 “연휴가 많은 1월~2월이 성수기고 봄이 되면 통상 시청 시간이 줄어드는 게 과거 패턴이었는데, 올해는 달랐다”고 말했다. 책 구독 서비스 ‘리디셀렉트’의 최해월 피알(PR) 총괄은 “통상적으로 신규 가입자가 감소하는 입학·개학 시기임에도 가입자가 증가했고, 유료 연속 결제율 또한 늘었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구독인간의 시대다. 심지어 최근에는 홍수처럼 넘쳐흐르는 구독 서비스 때문에 이를 정돈하기 위한 구독 관리 서비스도 출시됐다고 한다.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일상을 촘촘히 채우는 다양한 구독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넘어 구독 제공자가 된 진화한 구독인간들을 만났다.
부탁해요, 구독의 세계! 꽃배달부터 욕실 청소까지
의류 쇼핑몰 추천 앱 ‘지그재그’에서 일하는 이유진(30)씨는 구독 서비스 마니아다. 아이티(IT)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개인적인 호기심과 지인들의 추천으로 유명한 구독 앱이나 서비스를 경험 삼아 사용해보곤 한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양한 구독 서비스를 이용한다. 주로 유료 앱을 이용해서 듣고 읽는 편이다.
큐레이터이자 통번역가로 일하는 박재용(37)씨 또한 사용하는 유료 구독 앱이 많다. 그는 “매달 지출하는 비용을 계산해보니 15만원 이상”이라서 화들짝 놀란 적도 있지만, 영화감상부터 일하고 운동하고 공부하는 데 쓰는 것까지 무엇 하나 끊기가 어렵다.
프리랜서 작가 김윤영(38·가명)씨는 집에서 주로 작업을 한다. 사적인 영역과 일터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에서 가사노동 등 반복된 업무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존재가 구독 서비스다. 스케줄과 건강을 챙기는 데도 구독 매체를 활용한다.
손에 잡히는 것부터 그렇지 않은 것까지, 구독의 세계는 넓고 깊다. 이 시대 ‘구독인간’인 세 사람의 일상을 풍성하게 하는 구독 서비스들을 추천받았다.
꽃부터 운동까지, 구독 서비스로 모든 일상이 가능하다. 사진은 농장에서 갓 수확한 꽃을 집으로 보내주는 ‘어니스트플라워’의 꽃. 사진 어니스트플라워 제공
힐링을 부탁해
어니스트플라워: 많은 꽃 구독 서비스 가운데 어니스트플라워의 특이점은 업체가 자체 기준으로 선별한 농장에서 갓 수확한 제철 꽃을 바로 보내준다는 점이다. 배송 박스에는 일러스트로 그린 농부의 얼굴 스티커가 붙어 있어 신뢰감을 준다. 하지만 농가 직배송이라고 특별히 가격이 저렴하진 않다. 어니스트플라워 박혜란 플로리스트는 “가격을 낮춰 매입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농가의 평균 도매가 대비 20~30% 이상 지불하는 것을 지향한다. 가격 변동이 심한 시장이므로 안정적인 수익을 농가에 제공해 상생하는 구조”라고 밝혔다. 각 농가의 특색이 드러나는 농가별 혼합 꽃 꾸러미 ‘파머스초이스’(2만9000원)가 가장 인기다. 곧 정기구독 서비스를 할 예정이다. (제철 꽃 1종 월 1회 2만원, 제철 꽃 3종 이상 혼합 월 1회 3만5000원 등)
마음수업 코끼리: 2019년 9월 론칭해 현재 가입자 수 22만5000명에 이른다. 명상 앱 가운데 매우 빠른 속도로 세를 넓혀가는 구독 서비스다. 마음수업 이윤정 커뮤니케이션팀 차장에 따르면 “특히 코로나19 이후 월평균 가입자가 평소의 2배에 가까운 1만명씩 늘었다”고 한다. 최근 가장 인기가 많은 콘텐츠는 혜민스님의 ‘힘겨운 시간을 위한 명상’과 숙면과 관련된 콘텐츠인 ‘잠으로 안내하는 보디 스캔’, 영어 동화와 한국 전래동화 등이라고 한다. (7일 무료 체험 후 월 4900원, 연 2만9000원)
디지털콘서트홀: 베를린필하모닉의 연주 실황을 앱으로 감상할 수 있다. 매 시즌 40개 이상의 공연 생중계와 지난 50년간 수백개의 공연도 볼 수 있다. (7일 무료 이용 후 일주일 이용권 1만2000원, 월 2만6000원, 12개월 17만9000원)
베를린필하모닉의 ‘디지털콘서트홀’앱을 구독하면 독일 베를린에 가지 않아도 베를린필하모닉의 모든 연주 실황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클래스101의 시그니처플러스: 그림 그리기, 공예, 베이킹, 사진 등 다양한 취미 수업을 소개하던 클래스101에서 연간 구독 수업 ‘시그니처플러스’를 준비했다. 마술, 웹툰, 종합격투기 취미 생활을 포함해 네일 아티스트나 외식업 등 창업과 관련한 본격적인 수업도 들을 수 있다. 강사진으로는 종합격투기엔 김동현 선수, 유튜브 전략엔 대도서관, 외식업엔 홍석천, 요리사 박준우 등이 나선다. 500여개의 콘텐츠를 1년간 수강할 수 있다. (5월11일부터 수강 가능. 월 5만9900원)
책장을 부탁해
리디셀렉트: 전자책 베스트셀러와 리디셀렉트 전용 짧은 읽을거리인 ‘아티클’을 무제한으로 구독할 수 있다. 아티클은 국내 유명 저자 칼럼, <이코노미스트>, <뉴욕타임스> 등 해외 매체 번역 기사로 제공된다. 한번 유료 결제를 하면 90% 이상 구독을 유지할 정도로 고객 충성도가 높은 편. (월 9900원)
전통주 구독 서비스 ‘술담화’에서는 정기 구독자에게 매 달 전통주 소믈리에가 선정한 한국 전통주 2병과 스낵 안주 등을 보낸다. 사진 술담화 제공
식탁을 부탁해
그리팅: 다이어트, 당뇨 예방식, 영양식 등 맞춤형 식사를 정기적으로 배송받을 수 있다. 150여종의 다양한 건강 식재료를 활용해 당분과 염분을 줄인 식단을 제공한다. 식단 관리 기간, 배송받을 끼니 수, 배송 시간 등을 선택하면 매주 세 차례 원하는 장소에서 주문 메뉴를 받을 수 있다. 배송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늘 마음에 걸렸던 포장도 최대한 줄였다. 종이박스와 생분해비닐 등을 이용했다. (한 끼에 8500~8800원 선)
쏨와인: 소믈리에가 해당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 2병을 골라 와인 설명 키트와 함께 보낸다. 여러 수입사의 와인을 다뤄 마트나 일반 와인 숍보다 선택지가 다양하다. 평균 6개월~1년 구독할 정도로 구독률이 높다.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을 함께 배송하는 서비스도 곧 출시할 예정이다. (엔트리 레벨의 가성비 좋은 와인으로 꾸려진 ‘디스커버리’ 박스 6만9000원, 중간급 와인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와인 박스 9만9000원, 중고가 와인으로 구성된 ‘엑스퍼트’ 와인 13만9000원)
술담화: 전국 각지에서 발굴한 다양한 한국 전통주의 세계를 펼쳐놓는다. 구독 신청하면 매달 전통주 소믈리에가 선정한 전통주 2병과 잘 어울리는 안주, 술에 대한 소개가 적힌 큐레이션 카드가 함께 온다. 술담화의 이재욱 대표는 “술은 취하기 위해 먹는 게 아니라 모임의 분위기를 정의하는 옷과 같은 것”이라며 “2000종이 넘는 한국 전통주 가운데 소비자들이 ‘인생 술’을 찾길 바란다”고 말한다. 경험한 전통주 중 마음에 드는 술은 회원가로 재구매도 가능하다. 5월의 전통주 박스는 안주를 빼고 술 4병이 간다. 청매실주과 꿀주, 노간주 열매로 만든 증류주 2병으로 구성됐다. (월 3만9000원)
버거킹: 햄버거 프랜차이즈 최초로 ‘햄버거 정기 구독’을 시작했다. 월 4700원인 구독권을 구입하면 매주 특정 버거 1개를 구매할 수 있는 쿠폰을 제공한다. 할인율은 50% 정도.
구독 서비스는 가사 노동도 분담한다. 문 앞에 빨래를 내놓으면 다음날 세탁해 배송해주는 ‘런드리고’의 빨래 수거함. 사진 런드리고 제공
노동을 부탁해
노션: 업무를 돕는 메모 앱. 하지만 단순한 메모장이라고 하기에는 기능이 많다. 메모, 문서 작성, 할 일 관리, 수식 계산, 타인과 작업 공유 등 업무 생산성을 높여주는 대부분의 기능이 다 있다. 기능을 잘 활용하기 위한 유튜브 강의와 책까지 출간되어 있을 정도다. 레이아웃 디자인이 다양해 업무를 정리하기 편리하다. 1천 블록(단락)까지는 무료 사용, 1·5·10·30년 단위로 구독 가능, 월 약 5000원(4달러). 대학생과 교사는 인증 시 무료.
런드리고: 어젯밤 내놓은 빨래 더미가 다음날 깨끗하게 정돈돼 돌아온다. 생활 빨래부터 드라이클리닝까지 앱을 통해 신청이 가능하다. 사용자가 밤 11시 전에 세탁물이 든 수거함을 문 앞에 내놓고 수거 요청을 하면, 다음 날 자정 전에 돌아온다. 가장 구독률이 높은 서비스는 수거∙배송 2회를 포함해 드라이클리닝 12장을 월 5만8600원에 할 수 있는 ‘드라이온리58’ 서비스라고 한다. 가장 기본적인 구성은 배송 3회, 30ℓ 분량 물빨래 3개, 드라이클리닝 3장, 와이셔츠 20장 등을 포함한 ‘올인원 64’ 서비스로 월 6만4200원이다.
호텔리브: 집 욕실이 호텔처럼 항상 보송보송하고 깨끗하다면? 까다로운 욕실 청소를 대신 해주는 호텔리브는 ‘집에서 만나는 호텔 서비스’를 표방한다. 록시땅, 아베다 등 호텔 욕실에서 많이 쓰는 브랜드의 어메니티도 정기 구독할 수 있다. 수도권 일부 아파트 단지, 그중에서도 신청 주민이 최소 40명 이상인 곳에서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단점이다. (욕실 청소 서비스는 평형에 따라 월 2회 3만7000~5만2000원. 월 4회 4만9000~6만9000원)
운동을 부탁해
다운독: 어디서든 혼자서 요가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로 수련 단계, 시간, 속도, 어떤 타입의 수련을 원하는지, 요가 강사 목소리, 배경 음악 등을 세세하게 설정할 수 있다. 6만가지가 넘는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고, 설정하기에 따라 수업 내용이 달라져 매일 다른 수업을 받는 듯한 느낌이다. 3일 무료 사용 후 월 약 9800원(7.99달러), 1년 6만1천원(49.99달러)다.
런데이: “뛸 바엔 지각하자는 주의였는데, 전보다 오래 뛰고 잘 뛰는 나를 발견해 놀랐다”는 후기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달리는 내내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나와 끊임없이 당근과 채찍을 제공한다. 이 앱의 목표는 두 달 동안 꾸준히 훈련해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는 것. 5분 걸은 후 1분 달리기 등의 기초 단계부터 시작한다. 총 달린 거리와 소모 칼로리, 회차 당 페이스가 기록되고 한 회 훈련에 성공할 때마다 도장을 찍어준다. 출시 5년차로 비교적 오래되었지만, 러닝 초심자에겐 이만한 앱이 없다는 평가다. 글로벌 버전은 지난 3월 출시. 무료.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