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은 작가가 상담을 이성 관계, 사랑, 연애뿐만 아니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물론 이성 관계, 연애 고민 상담도 진행합니다.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sc@hani.co.kr
A1 저는 34살 직장인 여성입니다. 얼마 전 6개월간 사귄 남자친구와 이별했습니다. 저는 소위 나쁜 ‘남자 컬렉터’라 불릴 정도로 힘든 연애를 반복해왔습니다. 이번 연애도 그랬어요. 그 사람은 유튜버였고, 저보다 경제적인 측면이나 모든 면에서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 사람에게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을이 되었어요. 모든 걸 그 사람에게 맞춰주고,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상대는 내가 그렇게 나를 바꾸면서까지 맞춰줄 정도로 좋은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저의 노력을 당연시하고 저를 무시했던 남자였습니다. 이별 과정도 일방적이었어요. 카톡으로 헤어지자고 얘기하더니 그다음은 연락도 받지 않고 계속 잠수 중입니다. 평소 자존감, 연애 관련한 작가님의 조언과 책도 많이 봤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왜 실전에서는 매번 이렇게 같은 패턴의 연애만 하는 걸까요. 나이도 30대 중반인데 아직도 20대 초반 수준의 연애를 하는 것 같아서 저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한편으로 너무 안쓰러워요.
저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그런 걸까요? 있는 그대의 나를 유지하면서 편안하게 연애를 하고 싶은데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면 그게 잘 안됩니다. 그게 참 힘듭니다. 다시 이런 악순환을 반복할까 봐 이제 누구를 알아가고 만나는 것도 조금 두렵습니다. 연애할 때마다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같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마음 편하고 제가 저다울 수 있는 연애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쁜 남자 그만 수집하고 싶은 여자
Q1 일을 시작한 지 10년은 충분히 되었고, 20대 초중반에 서툴렀던 많은 것들도 이제 제법 성숙함을 찾아갈 무렵, 어쩐 일인지 연애만은 인생의 다른 부분에서만큼 능숙함과 단호함이 생겨나지 않을 때, 돌아와 생각해보니 사실은 그렇게까지 괜찮은 사람도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빠져있었다는 점을 느낄 때…. 내가 많이 초라하게도 느껴지고, 남들은 평생의 짝을 찾는 이 시점에 나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에 막막함도 느낄 것 같아요.
‘나쁜 남자 컬렉터’라고 자신을 표현하셨어요. 그런데 이 말을 조금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나쁜 남자들이 당신을 ‘알아보고 접근한다’는 뜻도 될 수 있죠. 누군가와 진지한 관계, 서로 노력하는 관계를 경험하는 것에는 관심 없는 사람들은 일단 공략하기 수월한 상대를 어떻게든 찾아내요. 초반의 열정적인 구애, 뭐든 다 이해하고 감싸 안아줄 것처럼 구는 로맨틱함, 운명이나 미래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꺼내는 일 같은 것이 바로 그들의 전략이죠. 어차피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끝날 시한폭탄이라는 걸 그들은 이미 알고 이 관계를 시작하기에, 관계 초반에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쏟아붓는 거예요. 그리고 그들에게, ‘난 지금 너무 외로워’ ‘난 혼자 있고 싶지 않아’ ‘누구라도 와줬으면 좋겠어’ ‘혼자는 불완전해’라고 느끼는 여자들은 가장 간단하고 수월한 공략 상대가 됩니다.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하는 일은 그저 나이가 좀 들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얻어지는 스킬이 아닙니다. 20대라고 해서 다 나쁜 남자에게 빠지는 것이 아니듯, 30대라고 해서 다 안정적이고 품위 있는 연애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은 그 때문이죠.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내가 느끼는 부족함, 불안정함,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내 삶에 둬 보고, 허용해 본 적이 있나요? 너무 많은 사람이 외로움이 삶의 기본적인 성질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혼자 있는 것이 편치 않아 어떻게든 나를 ‘혼자’에서 벗어나게 해줄 사람을 찾아 나서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볼 겨를도 차분한 판단도 발휘하기 어렵죠. 회사에서 업무 능력이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것은 특정한 이유가 있습니다.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실수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하고, 어려워도 무언가를 회피하기보단 직면하는 태도를 견지하기 때문이죠. 반대로 당신이 10년 전이나 할 만한, 어리석게 느껴지는 연애를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한 연애를 통해 진심으로 무언가를 깨닫고 직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남자들의 얼굴은 바뀌었을 테지만, 그냥 계속 같은 관계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을지 모르죠. 정신분석학의 유명한 개념인 ‘반복강박’이 바로 이것입니다. 독서를 아무리 하고 타인의 좋은 말을 아무리 들은들, 내 내면에 존재하는 반복강박을 뼈아프게 성찰하지 않는다면, 지식은 그저 자갈밭에 뿌려진 씨앗에 불과합니다.
목표 설정을 새로 하세요. ‘단 한 번이라도 마음 편하고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연애를 하고 싶다’는 목표 이전에, ‘단 1년, 단 6개월이라도 나 홀로 마음 편하고 나다운 모습으로 살자’가 먼저 성취되어야 합니다. 편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스스로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그 삶을 충만히 사랑하게 될 때, 당신에게는 역설적으로 남자라는 존재는 그다지 간절한 존재는 되지 않을 테지만요.
작가
Q2 저는 30대 후반 여성입니다. 작은 사업을 하나 하고 있어요. 저에게는 아주 부자인 친구가 있습니다. 대학 때부터 친구였던 우리는 서로 ‘절친’이라고 얘기합니다. 주변을 보면 이렇게 오랫동안 관계를 쌓아온 친구들끼리는 자주 만나지 않아도, 사는 수준이 달라져도 보이지 않는 실처럼 이어지는 연대감 같은 게 있던데, 저랑 이 친구는 그런 게 왜 없는 걸까요? 해가 갈수록 부자 친구의 변덕에 너무 힘듭니다. 우리는 몇 년째 절교했다가 다시 친하게 지내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어요.
친구는 30대 중반 남편 사업이 잘되면서 갑자기 부자가 됐어요. 친구도 직업이 있어요. 직장에서 인정받고 잘하는 편이기도 해요. 그런데 뭐랄까, 친구는 부자가 된 이후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왕인 것처럼 행세할 때가 있어요. 저에게도 수틀리면 연락을 끊었다가, 자기 기분이 풀어지면 엄청 잘해줬다가 합니다. 언젠가 생일 때는 이런 적도 있어요. 제가 값비싼 선물을 했어요. 친구가 갖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했고, 그때는 간도 쓸개도 내줄 것처럼 사이가 좋을 때였거든요. 그런데 몇 달 뒤 제 생일에 그 친구는 커피 원두 한 통을 선물하더군요. 제가 특별히 커피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선물하는 사람 마음이겠지만, 좀 섭섭하긴 했어요. 쇼핑할 때도 제가 고른 걸 보고 별로라고 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랑 같은 걸 몸에 두르고 나타납니다. 그러면서 제가 자기와 같은 것을 사는 건 매우 싫어해요.
“너니까 얘기한다”며 고민을 털어놓을 때도 있는데 제가 며칠씩 고민해서 답변하면 “맞아, 네 말대로 해야겠어”라고 하고, 전혀 반대의 행동을 할 때도 잦습니다. 물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다 보면 결론이 바뀔 수도 있겠죠. 하지만 번번이 그러니 그저 저를 감정의 하수구로 쓴 듯한 느낌이에요. 저의 다른 친구에게 이 얘기를 하니 “그냥 순간의 기분이 중요한 사람인가보다. 그 애 스타일이라고 생각해”라며, 그 친구를 있는 그대로 보라는데 저는 그게 잘 안됩니다. 제멋대로인 그 친구의 태도가 너무 화가 나고 기분이 나쁠 때가 많아요. 언젠가 또 절교하겠죠. 그때는 영영 헤어져 버리는 게 나을까요?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받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까요?
부자 친구의 변덕이 힘든 여자
A2 ‘오랫동안 관계를 쌓아온 친구’라고 표현하셨어요. 그 말을 정말 진심으로 하실 수 있으세요? 100년 살고도 자신의 인생을 낭비할 수 있고, 단 30년을 살더라도 큰 영향력을 남기고 갈 수 있는 게 인생이듯, 우정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지요? 20대 초반에 만나 30대 후반까지 함께 알고 지냈으니 시간은 오래 흐르긴 했습니다만, 그동안 두 분 사이에 시간만 흘렀지 깊이가 더해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몇 가지의 에피소드만 보아도 당신의 피로감이 이렇게 선명히 묻어나는데요. 물론 누구나 인생에는 미숙한 부분들이 있고, 친구처럼 가까운 관계에서 이것들이 오히려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두 사람이 그저 시간만 같이 보낸 것이 아니라, 정말 ‘관계를 쌓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당신은 그런 친구의 미숙한 모습을 어느 정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었거나, 혹은 마음 편하게 ‘나 이런 것이 조금 서운했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친구 관계의 밀도란 그저 자주 만난다고, 오래 알아왔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친구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고, 힘든 부분은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서로의 삶을 진심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기반 되어야 하죠. 이런 것이 없이 어떻게 ‘연대감’을 쌓을 수 있을까요?
사실 지금 중요한 건 그 친구와 우정을 쌓을지 말지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혹여, 갑자기 부자가 된 친구에 대한 부러움과 불편함이 당신을 점점 더 괴롭게 하는 것은 아닌가요? 비싼 선물에 저렴한 선물로 답을 하고, 고민을 털어놓기만 하지 내 말과는 반대로 행동하고, 자기 기분 따라 제멋대로 행동하는 등의 상황에서 그저 불쾌감이 아니라 미움이 증폭해 이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절친’이라고 말해왔으니 내 손으로 끊어내며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싫어서 그냥 관계를 붙잡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닐까요?
내가 감정의 하수구처럼 여겨지는 관계를 굳이 가져갈 필요는 없을 거예요. 친구 한 명 정도 없어도, 당신의 인생이 어떻게 되는 건 아니죠. 오히려 홀가분해질 수도 있고요. 하지만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내 마음이 어째서 불편했던 건지 한 번쯤은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언제나 그렇듯, 타인의 태도가 아니라 나의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