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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게임, 친구, 술, 담배 다음…날 사랑하긴 할까요?”

등록 2020-08-21 14:48수정 2020-08-21 15:07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

Q1 매일 피시방 데이트만 하는 남자친구
늘 뒷전인 기분, 날 사랑하는 걸까?
A1 한쪽이 시간 구걸하는 관계, 연애 아냐
외로움 도피하지 말고 자존감 회복을

Q2 직장생활 잘하려다 친해진 동료
‘뒷말왕’인 그, 관계 설정 어려워
A2 사내 뒷말은 당신의 커리어에도 위험
능력 업그레이드, 품위 있는 사내 생존법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곽정은 작가가 상담을 이성 관계, 사랑, 연애뿐만 아니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물론 이성 관계, 연애 고민 상담도 진행합니다.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sc@hani.co.kr">esc@hani.co.kr

Q1 저는 27살 직장인입니다. 4년 동안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저와 동갑인 남자친구는 가난한 대학원생인데, 조교를 하며 빠듯하게 살면서 남는 시간은 전부 게임을 하는 데 씁니다. 데이트다운 데이트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합니다. 건강이 안 좋아서 수술까지 받았는데도 담배와 술을 합니다.

처음엔 그저 제 술친구이자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였지요. 어느 날 그가 고백했는데, 처음엔 거절했다가 꾸준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자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남자친구를 더 좋아합니다. 전 항상 뒷전인 듯합니다. 제 말은 잔소리로 여겨요. 제 친구들과 있다가도 그가 보고 싶어지면 욕먹어도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남친은 반대입니다. 제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릴 때도 오라고 하면 친구들과 있으니 다음날 보자고 해요. 우리는 거의 피시방 데이트만 하는 편입니다. 친구들과는 여행도 자주 가면서 저와는 4년 동안 딱 한 번 갔어요. 친구들과 간 여행은 친구가 빌려준 돈으로 갔답니다. 그래서 “나도 돈 빌려줄 테니 해외여행 가자”고 했더니 여친한테 자존심 상하게 어떻게 빌리느냐는 겁니다. 카톡도 하루에 몇 개만 주고받아요. 전 그가 친구들 만날 때 간섭하지 않아요. 그 자리에 여자가 있는지 없는지만 물어요. 제가 너무 구속하는 건가요? 저만 좋아하는 것 같아 비참해요. “너는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닌 것 같다”란 소리를 하면 “좋아하는 거 맞다”고 합니다.

어쨌든 피시방 데이트 말고 다른 데이트도 하자고 했는데, 그런 데이트를 할 때마다 자기 친구들 얘기를 해요. 이해가 안 됩니다. 남자친구는 노력하겠다고 해요. 저는 아직도 이 애를 정말 사랑하는데요, 어쩌면 좋나요? 그는 저를 정말 사랑하는 게 맞나요? 남친 사랑이 의심스러운 여자

A1 사연을 읽는 내내 저는 제 눈을 믿을 수 없었고 가슴이 답답했어요. 도대체 연애가 무엇이고,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가요? 하루에 몇 개 카톡을 주고받고, 거의 피시방에서만 데이트하고, 데이트는 한 달에 한 번, 항상 친구들에게는 시간을 내지만 당신에게는 빈말이라도 걱정조차 해주지 않는 사람과 나누고 있는 교류를,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도 정말 괜찮은가요? 저는 당신의 지금 이 관계에 대해 사랑이라는 단어를 도저히 붙일 수 없을 것 같아요.

그저 둘 사이의 시간이 부족하고, 그가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에요. 연인이라는 건, 정말 친밀한 사이가 되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관계여야 하지 않아요? 누군가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시간을 구걸하고, 함께 있어 달라고 하는데도 그 말을 거절하는 관계가 어떻게 연인일 수 있나요? 연인에게 너무 과한 기대를 갖는 것도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지만, 기본적인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를 붙잡고 있는 것도 우리를 무너뜨리는 주요한 이유가 되곤 해요.

술친구였고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 그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였어야 합니다. 고민을 들어주는 모든 사람이 당신의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되는 거죠. 설혹 처음엔 마음이 끌려 사귀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태도, 또 당신에 대한 태도가 굉장히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 직후 이 관계를 끝내는 것이 좋았을 것이고요. 그러지 못했던 것은, ‘이런 사람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요? 당신의 이야기를 잠시나마 진지하게 들어주었던 사람을 차마 배신할 수 없었던 것일까요? 이유가 무엇이었든, 그 결정은 당신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이 되었어요. 가장 친밀한 자리에 당신이 선택한 사람은, 당신에게 최소한의 관심도 애정도 인정도 배려도 주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시간을 구걸하는 관계를 연인이라고 착각해서는 곤란해요.

마지막 질문에 답할게요. 그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에요. 백번 양보해 지금 저 모습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법이라고 해도, 당신은 겨우 이런 관계 안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그 정도의 자격은 있다는 거예요. 타인에게 관심을 달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 삶을 얼마나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시길 바라요. 타인을 만나 외로움을 해소하려고 하기 전에, 내가 내 외로움에 얼마나 직면해보려고 했는지를 생각해보시기를 바라요. 내 삶에서 도피하고, 내 외로움에서 도피하는 방법이 연애가 된다면 그 연애의 종착역에서 만나게 되는 건 더 낮아진 자존감과 더 외로워진 나 자신일 뿐이니까요. 작가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Q2 직장생활을 잘하고 싶은 여성입니다. 어렵게 입사했으니 승진도 하고 싶고 인정도 받고 싶습니다. 사내 정치라는 것도 잘해야 한다면서요. 그런데 전 소질이 없습니다. 남들 다 아는 사내 사건도 나중에야 겨우 알게 되는 식입니다. 눈치도 별로 없습니다. 그냥 일을 열심히 하면 잘 되겠거니 했는데, 직장생활 몇 년 해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닌 듯해요. 회사에서도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던 중에 친구처럼 가까워진 동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얘기할 때 살짝 마음이 무거워요. 그는 회사 사람들 흉을 많이 봐요. 한두명을 보는 게 아닙니다. 듣다 보면 그럴듯해요. 같이 험담도 하면서 맞장구도 쳤지요. 같이 흉도 봐야 관계가 끈끈해지기도 하고 연대감도 생기잖아요.

그런데 한번은 마냥 장단 맞추기가 왠지 꺼려져서 반응을 안 했어요. 어두운 표정을 지었더니 흉보는 걸 멈추더라고요. 그가 살짝 삐친 것 같았어요. 자기계발서를 보면 직장에선 뒷말은 안 하는 게 좋다고 하잖아요. 그 이후부터 알게 모르게 그와 멀어진 느낌입니다. 어딘가에서 제 흉을 보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도 되고요. 더구나 그는 회사에서 마당발이에요. 이 부서 저 부서 안 친한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사내 정보도 밝아요. 종종 그에게서 듣던 정보들이 아쉬워요. 제가 자기를 흉만 보는, 좀 질이 안 좋은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오해했을까요? 그래서 저를 멀리하는 걸까요? 다시 친해져야 할까요? 사내 정치를 잘하고 싶은 사람

A2 회사 생활이 녹록지 않고 일견 외롭다고까지 느껴지던 차에, 뒷말을 많이 하는 동료와 친해지셨군요. 저도 13년간 조직에 몸담아 일하면서, 뒷말을 해보기도 하고 또 그 대상이 되어보기도 했답니다. 뒷말, 사실 많은 직장인의 ‘길티 플레져’ 같은 거죠. 누군가의 비밀이나 단점, 허점에 대해 공유하다 보면 묘한 동지애 같은 것도 생기고, 그 과정에서 내가 특별한 정보를 얻은 것 같은 착각도 들죠. 하지만 확실히 알아두셔야 합니다. 사내 정치에 뒷말이 때때로 포함될 때가 있기는 하겠지만, 뒷말 자체가 사내 정치는 될 수 없습니다.

승진과 사내 정치에 대한 압박감은, 회사 내의 사람들에 대해 이것저것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과 친해져야 할 것 같은 생각으로 당신을 이끌었을 거예요. 그러나 그는 그냥 남는 시간에 남을 흉보는 사람일 뿐이라서, 당신에게 딱히 이득 될 일은 없을 겁니다. 흉보는 게 취미인 사람이 주는 정보가, 얼마나 영양가가 있을까요? 다음에 또 그러면, 같이 흉보는 것으로 절대 장단 맞추지 마시고, ‘아 그랬구나!’라고만 대응하세요. 누군가와의 뒷말은 당신의 커리어 평판까지 위험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다시 친해져야 하냐고요? 그는 당신을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 텐데요.

조직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다른 이와 차별되는 자신만의 장점을 가지는 것이죠. 그 장점과 업무적 두각을 기반으로 정치를 할 수도 있어요. 잠시 줄을 잘 서서 잘 풀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차피 그렇게 해서 잡은 줄은 결국 썩는 동아줄이더라고요. 능력을 키우세요. 조직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다면 그것에 대해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회사 내의 혹은 동종업계의 좋은 선배를 찾아 나서세요. 다양한 모임에 나가서 자신을 개발하세요. 뒷말을 하는 동료에게 귀 기울이기 전에, 당신이 먼저 동료 직원에게 다가가고, 좋은 아이디어나 새로운 것들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 사람이 되세요. 자신만의 품위 있는 생존 방식을 결정하는 사람만이, 조직에서도 품위 있게 살아남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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