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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그 남자 왜 갑자기 사라진 거죠?”

등록 2020-11-13 07:59수정 2020-11-13 09:21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

Q1 이혼 뒤 만난 그, 잘되어가는 듯했는데
갑자기 연락 두절… 뭐가 잘못됐나 답답해
A1 어쩌면 그는 당신과의 관계 중요치 않아
진심 없는 사람과의 이별은 오히려 다행

Q2 친구들에게 양보 잘하고, 거절 못하는 나
자꾸 나를 무시하고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아
A2 마음에 안 드는데 양보만 하는 것보다
거절을 두려워 말고 원하는 것을 말해보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Q1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30대 초반 짧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별거 과정을 지나 이혼을 했습니다. 이후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여러 명을 소개받았고, 만나보기도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그러다 몇 달 전, 지인으로부터 한 남자를 소개받았어요. 매우 자상하고 인물도, 성품도 모두 좋았습니다. 아주 오래전 사별했다는 그에겐 청소년기 자식이 있었고, 사는 지역이 제가 사는 곳과 멀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어요. 친구들은 너무 힘든 길을 가는 것일 수도 있다고 조언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라면 먼 거리도, 그의 가족도 모두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품고 갈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함께 만날 때도, 전화 통화를 할 때도 미래를 약속하는 듯한 얘기도 나눴고 모든 게 다 잘 되어가고 있다고 느꼈을 때 갑자기 그가 사라졌어요. 전화도 하지 않고 카톡도 보내지 않아요. 제가 연락해도 연락이 닿지 않고요. 소개해준 지인에게 그의 의중을 물었는데 “사업이 바쁜 걸 수도 있다. 지난번 만났을 때 너를 가볍게 만날 수 없다고 말하는 걸 보면 진지하게 널 만날 생각이 있는 거 아니겠냐”고 합니다. 몇 주간 머리와 가슴이 답답해요. 뭐가 잘못된 것인지 정말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합니다.

마침내 만난 그의 연락 두절이 답답한 여자

A1 많이 속상하시겠어요. 어이없음과 절망감, 혹시 다시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그에 대한 분노가 뒤섞여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실 수 있죠. 당연한 일이고, 또 당연한 감정입니다. 먼저 당신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부터 말씀드릴게요. 지인의 소개로 만나 상당 기간 살가운 연락을 주고받았고,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만남을 이어갔으며 다소의 어려움과 희생이 있더라도 함께하고 싶은 강렬한 끌림이 있었던 남자. 이것이 당신이 가진 그에 대한 마음일 겁니다. 그런데 정말 그도 당신과 같은 마음이었을까요?

제삼자의 입장에서 묘사하면 그는 그저 이런 사람입니다. 지인의 소개로 연결되었고 상당 기간 잘 만났지만, 일순간 무책임하게 증발해 버리고 연락조차 두절한 사람. 미래를 약속하는 듯한 이야기를 나눴다지만, 그는 미래를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다지만 그건 그저 당신의 설익은 기대였을 뿐이죠.

아프지만 이것을 인정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네요. 그는, 그저 당신과의 관계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잘되고 싶은 사람에게 오는 연락을 몇 주씩 거부하지는 않지요. 마음이 식었을 때 연락을 두절하지, 바쁘다고 연락을 두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함께 행복한 대화를 나누던 그 시간, 당신은 미래를 꿈꾸었지만 그는 손절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슬픈 일이죠. 어쩌겠습니까. 사람이란 본래 그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겉으로는 살갑게 웃으며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사람과의 관계가 이젠 부담스럽고 끝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요. 12월24일엔 A와 데이트하고, 12월25일엔 B와 데이트를 하며 “너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 너무나 행복하다”고 두 명과 통화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는 존재인 것을 어쩌겠습니까?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지?’를 내려놓고, ‘인간은 더러 그럴 수 있다’로 생각의 지점을 옮겨와야 하죠. 누군가가 내게 보여주는 달콤한 말과 행동을 다 불신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누군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해서 그것에 내 온 마음을 다 빼앗기고 휘청거리는 것도 우리 자신의 삶에 유익한 일은 아니니까요. 혹시 큰돈을 빌려주었다거나, 보증을 섰다거나 한 것은 아니죠? 진심도 없고 열정도 없던 사람과의 짧고 허무한 데이트가 연락 두절로 강제 종료되는 것을 부르는 두 글자가 있는데 그걸 아마도 ‘다행’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작가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Q2 안녕하세요. 저는 17살 학생입니다. 저에게는 누구보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2명 있습니다. 이들 중 1명은 4살 때부터 친했던 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친했던 친구입니다. 전자를 A, 후자를 B라고 할게요. 그런데 저는 친구를 사귈 때 제가 많이 양보하고 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어도 말을 안 하는 편입니다. 정말 힘들 때 한 번씩 말을 합니다. 이런 성격이라서 친구들이 하자는 걸 잘 거절 못하고, 싫은 소리를 잘 못합니다.

이번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오랜만에 집에 모여서 영화를 보고 놀기로 했어요. 근데 A가 약속을 한 날 연락도 안 하고 잠수를 타버렸어요. 그리고 나중에 와서 하는 말이 잠이 들어서 못 왔다고 했어요. 또 이번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만나기로 했는데, B도 잠수를 타버렸어요. 또 A는 저랑 집 방향이 같아서 같이 가는데, 저한테 연락도 안 하고 가는 일이 허다했고, 자신이 수업이 있는데 저한테 연락을 안 하는 일도 있었어요. 심지어 저는 그걸 그 수업이 시작한 지 3달 만에 알게 되었어요.

많이 친했던 친구들인데 이전부터 계속되는 약속 어김과 저를 너무 만만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서 요즘 연락을 끊고, 학교에서도 모른 척하고 지내고 있어요. 근데 이건 정말 아닌 것 같고, 아예 친구 관계를 끊거나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만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아 속상한 사람

A2 당신이 기억해야 하는 단 한 가지 진실은 이것이에요. 잠수를 타는 것, 약속을 어기는 것 같은 친구들의 행동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많이 양보하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어도 참아온 것이 당신의 고유한 선택이었던 것처럼, 친했던 친구와의 약속을 쉽게 어기고 미안해하지 않는 것은 그 친구들의 선택이거든요. 친했던 친구가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 같을 때 서운하고 상처받는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므로 그 친구들이 이제부터 갑자기 바뀌어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죠. ‘나는 이렇게까지 양보했는데, 너희는 어떻게 그럴 수 있니?’라고 말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들이 당신이 원하는 사과를 할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변화할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에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우리의 선택뿐이지, 타인의 선택이 아니랍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을 때 자꾸 양보만 하지 말고 이제 원하는 것을 표현해보면 어떨까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고, 허용할 수 없는 경계선을 알려주고, 내가 무엇에 예민한지 설정하는 것은 우리의 관계를 좀 더 바람직한 모습이 되게 도와줘요. 이것은 건강한 인간관계의 기본수칙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저 참고 양보하고, 불만을 속으로 삭이는 것은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유익하지 않거든요. 마음속에서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강한 경우 자기표현을 주저하게 되기도 하죠. 내가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상대에게 거절을 못 하는 거예요. 지금 당신의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를 만만하게 보는 친구들이 아닙니다. 친한 친구들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내가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죠.

친구들에게 한 번 용기를 내어 말해보세요.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 먼저 연락을 해주면 좋겠어. 많이 속상하더라’라고요. 그럼 그 친구들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유나 그간의 생각을 이야기하겠죠. 예를 들어 “집 방향이 같아서 같이 간 적은 많지만, 그렇다고 같이 못 가는 날 너에게 일일이 연락을 해줘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매일 같이 가자고 약속한 적 없잖아”라는 식으로요.

내 생각에 빠져서 홀로 상처받기보다, 원하는 것을 말하고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서 관계를 조율하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상당히 어려운 일이랍니다. 쉽지 않겠지만, 홀로 토라짐보다는 자기표현을 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은 인생의 어느 시간에든 언제나 유익한 결정이고, 이것을 17살 때부터 연습해보면 정말 좋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요? 작가

곽정은 작가가 상담을 이성 관계, 사랑, 연애뿐만 아니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물론 이성 관계, 연애 고민 상담도 진행합니다.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sc@hani.co.kr">es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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