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안녕하세요? 저는 한 회사에 10년쯤 다닌 직장인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저의 부장님이랑 너무 안 맞아서 사연을 보냅니다. 우리 회사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구시대적인 편입니다. 저는 아이가 없지만, 육아하는 선배들을 보면 제게 아이가 있었다면 회사에 다닐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육아 휴직 1년을 당연하게 쓰는 회사도 많은데, 우리 회사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2개월만에 몸조리 겨우 하고 복직하곤 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용모 단정’을 이유로 옷차림 간섭도 심하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급이 낮은 여성들은 유니폼을 입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일이 저와 잘 맞아 성과도 좋은 편이고, 같은 팀원들과는 돈독한 편입니다. 우리 부장님만 빼고요. 부장님은 우리 회사에서 몇 안 되는 여성 부장입니다. 회사 역사상 첫 여성 임원이 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팀 여성들은 그가 여성이라서 좋은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동성이니까 당연히 뭉쳐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남성 직원이 여성 직원에게 옷차림 지적을 한다거나, 술자리에서 성적인 농담을 할 때 남성을 대변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요즘 다이어트 성공해서 그런 거 입고 다니느냐”, “걔가 장난으로 말 한 걸 그렇게 기분 나쁘게 듣느냐” 따위의 발언을 합니다.
친구에게 이런 부장님 얘기를 하면 “요즘 세상에 그런 상사도 있나! 결국 자기에게 화살로 돌아올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들을 철옹성처럼 보호하는 이 회사에서 그게 가능할까요? 부장님에게 “부장님, 요즘 그런 말 하면 큰일 나요”라고 얘기하면 농담인 줄 압니다. 저도 젊은 친구들한테 ‘꼰대’ 취급받을 나이에, 왕꼰대 부장님 때문에 너무 힘듭니다.
왕꼰대 부장님이 괴로운 회사원
A1 회사에서 첫 여성 임원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이는 여성 부장, 하지만 ‘왕꼰대’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거슬리고 애매한 발언들을 하는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같은 여자이기에 실망이 더 컸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동성이니 당연히 뭉쳐야 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래도 흔치 않은 여성 상사에게 기대를 더 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보수적이고 구시대적인, 육아 휴직도 눈치 보며 얼른 돌아와야만 하는 회사에서 숱한 경쟁과 견제를 이겨내 부장 자리에 어렵사리 오르고, 최초 여성 임원 자리에 오를 것이 점쳐지는 ‘여성’부장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죠. 남성의 권력을 대변하고 직장 내 성희롱 문제조차 남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역시 여자의 적은 여자야’라며 닳고 닳은 서사를 꺼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남성이 권력의 대부분을 잡고 돌아가는 남성 중심적 조직에서, 어떤 여성들은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 남성 중심적 시각, 즉 권력이 있는 쪽의 시각을 받아들이고 내면화합니다.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여성의 이익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서는 자신에게 유익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직 내 권력자, 즉 남성의 시각으로 모든 사안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생존의 방식이며, 요즘에는 이를 ‘명예남성’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하죠. 모두가 그를 ‘여성 부장’, ‘최초의 여성 임원’이라고 표현하겠지만, 사고의 차원에서 그분은 단지 ‘권력자’이며 다른 남성 임원들과 다를 바가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은 가당치 않죠. 명예남성이 되어야 조직 내에서 생존할 확률이 높아지는, 오래된 권력 구조가 여자의 적일 따름입니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센스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며, 여성의 노동을 임시·부차적인 것으로 차별해온 역사는 많은 곳에서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그래서 부장님의 ‘왕꼰대’적 성향을 욕하고 불평한들, 상급자에게 건의한들, 안타깝게도 변화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회사 내에서 목소리를 모아 보기를 권합니다. ‘아니다’ 싶은 사안에 대해, 여러 사람의 의견으로 전달해보세요. 세상은 언제나 불편함과 부당함에 작은 목소리라도 모으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해 왔습니다. 당장 무엇이 바뀌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일터에서 더 존중받는 환경을 만들어갈 권리와 책임이 있지요. 흐름은 느리더라도 변화는 찾아올 것입니다. 위계 서열이 존재하는 회사에서, 젠더의식을 갖추고 언행에 주의하는 것은 다가오는 시대에 모든 직장인의 기본 매너가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회사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이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구시대적인 차원에 머물다가 철퇴를 맞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늘어나게 되겠죠. ‘너무 힘들어’에서 ‘나의 후배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로 생각을 바꿔보시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일이 무엇이든 중간관리자로서 성과도 좋고, 팀원과도 돈독한 당신이 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어떤 일이 아닐까요?
작가
Q2 안녕하세요? 33살 여자입니다. 이별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지금, 저는 재회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와 저는 10년 전 첫사랑 연애 상대였습니다. 대학 졸업반이었던 저에게 다가와 준 그 사람은 처음으로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을 준 사람입니다. 지난해 연락이 다시 닿게 되었습니다. 서로 평범한 일상을 묻는 게 너무 좋았고 가치관이 비슷해 말이 잘 통했습니다.
그렇게 올 초 다시 사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의 연락을 기다리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일에 집중이 잘 안 되고, 온종일 휴대전화만 쳐다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연락 공백이 길어지면 화가 났습니다. 그에게 자꾸 “나 안 보고 싶어?”라는 질문을 하게 되고 ‘왜 먼저 전화를 하지 않지?’‘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그의 생각을 듣고 싶어 “연락이 뜸해진 것에 어떻게 생각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는 제가 불편해졌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애정 표현을 요구하고 연락에 관해서 계속 얘기해서 그런 거야?”라고 물었더니 “네 생각은 어때?”라는 식으로 다시 질문을 해왔습니다. 과거에도 갈등이 생기려고 할 때 말을 잘 하지 않았던 그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말을 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헤어지자더군요.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애착의 성향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연애를 시작하면 당연히 사랑의 대화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걸 바라는 전 ‘불안형 애착’이었고, 갈등 상황이 닥치자 피해버리고 싶었던 그는 ‘회피형 애착’인 것 같더라고요. 그것을 알게 된 후 전 제 자존감을 높이고 ‘안정형’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려고 노력도 하고 있고요. 그에게 달라진 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회피형은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고 해서 몇 개월은 연락하지 않고 제 모습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 때에 다시 연락해보려 합니다. 저, 잘하는 건가요?
성향 다르지만 그를 다시 만나고 싶은 여성
A2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을 때는 제법 지켜지던 평온함이 연애가 시작된 후 깨져 버리는 것, 아주 많은 사람이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행복만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오래된 심리적 과제를 내면 깊은 곳에서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용을 하기도 하지요. ‘내가 이렇게까지 의심이 많고, 집착이 강한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을, 연애가 시작되기 전까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해도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연애할 때 자신의 모습을 통해 자기 자신을 어떻게든 성찰하려고 애쓰고, 지식에 접근하려 한 모습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검색한 몇 가지 지식을 토대로 쉽게 ‘나는 이런 타입’이라고 단언하고 ‘그 사람은 이런 타입’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꼭 좋은 결론으로 향하진 않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나의 정서나 행동 패턴을 그런 식으로 쉽게 판단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그것을 잠시 노력으로 마치 헤어스타일 바꾸듯이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진지하게 자신을 탐색하기 원한다면, 전문가의 심리 상담이 동반되어야 하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인터넷의 심리테스트는 나를 정확히 반영할 수 없으며, 몇 권의 책과 몇 번의 다짐으로 사람은 변화하지 못해요.
마지막으로 이런 비유를 들어볼까요. 오로지 남성들에게 섹시한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운동하는 여성이 있고, 근육을 만들어 튼튼한 체력으로 더 좋은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여성이 있습니다. 운동하는 모습은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두 사람이 평상시 자기 몸을 대하는 정서와 태도는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당신은 어느 쪽이 더 주체적이라는 느낌이 드나요? 당연히 후자가 아닌가요?
변화하려는 노력의 궁극적인 의미가 ‘남자에게 선택받는 일’이라면 그것은 좀 허무합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는 화답할 생각이 없을 수도 있으며, 내가 아무리 안정형이 되었다 해도 그는 여전히 회피형이라서 감정적으로 피폐해지고 이 관계가 종료될 수 있어요. 몸이든 마음이든 자신을 돌보고 변화를 꾀하는 이유가,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선택받고자 하는 것이 목적일 때 우리는 변화를 얻고도 자신을 끊임없이 질타하며, 타인에게 평가받는 존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나 자신을 진심으로 돌아보는 여정은, 그 자체로 나와 화해하고 나를 만나는 과정이어야 해요. 그것을 잊지 않고 나를 충분히 돌본 후에, 그 사람과의 인연이 어떻게 될지 찬찬히 지켜보시죠.
작가
곽정은 작가가 상담을 이성 관계, 사랑, 연애뿐만 아니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물론 이성 관계, 연애 고민 상담도 진행합니다.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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