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바구니.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제공
봄이다. 제법 포근해진 밤공기 덕분에 퇴근길 발걸음이 산책할 때 템포와 비슷해졌다. 여느 해 같으면 나들이 떠나고픈 생각이 목련 꽃봉오리처럼 부풀어 올랐을 테지만 여전히 우리는 쉽게 떠나지 못하고, 여럿 어울리지 못하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설레는 봄밤, 마음을 다독일 차분한 취미를 찾았다. 나무를 손으로 직접 엮어 만드는 라탄 공예, 자작나무 껍질 공예(네베르슬뢰이드)는 집에 있는 시간이 긴 요즘 하기 좋은 활동이다.
자연스러운 질감의 나무 소재는 입고, 보고, 쓰는 등 여러 영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대형 가구 브랜드들이 나무를 엮어 짜 넣는 기법을 다양한 가구에 활용하는가 하면, 뉴트로 열풍을 타고 고색창연한 1980년대풍 등나무 가구도 재조명받고 있다. 셀린느, 로에베 등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에선 몇 년 전부터 아프리카에서 자라는 야자나무의 일종인 라피아야자 줄기로 엮은 가방을 선보이고 있다.
공방 카나비요르크에 전시된 공예품. 이 공방은 자작나무 껍질 공예(네베르슬뢰이드) 공방으로 유명한 곳이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제공
나무 공예품들은 봄을 맞아 집 안을 정돈하거나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에도 좋은 소품이 될 수 있다. 동남아풍의 라탄, 북유럽 느낌의 자작나무 껍질 공예품을 하나, 둘 만들어 모으다 보면 어느덧 집 안이 이국적인 분위기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너무 거창한 계획 같은가. 그렇다면 언젠가 떠날 봄 소풍을 위해 나만의 작은 바구니를 직접 짜보는 것도 좋겠다.
나무 공예를 취재하며 매일 나무를 만지는 사람들을 만났다. 오나영 카나비요르크 대표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생활용품 숍을 차리며 자작나무 껍질 공예에 매료됐다. 자작나무 특유의 따뜻한 질감과 만드는 기쁨, 자작나무 껍질 공예자들이 자연을 존중하는 태도 등 그가 손으로 꼽는 매력은 여러 가지다.
공방 카나비요르크에 전시된 공예품.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제공
박금자 한국등공예연구회 회장은 1980년대에 라탄 공예에 입문해 40여년간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직접 개발한 라탄 공예 패턴도 수천가지다. 호텔 신라, 그랜드 하얏트 서울, 뚜레쥬르 등 전국의 웬만한 브랜드에 들어간 라탄 가구와 바구니들은 다 그의 손을 거쳤을 정도다.
나무 만지는 일을 하는 두 사람은 다른 듯 닮아 있었다. 거칠지만 단단한 손끝, 차분한 눈빛, 느리고 단정한 말투. 그런 태도가 어디서 배어나오나 했는데, 작은 바구니를 만드는 2~3시간 동안 비결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과연 이게 무언가 쓰임새 있는 물건이 될까 싶었던 나무줄기 뭉치들이 형태를 이루기 시작하니 복잡했던 마음이 차분하게 정돈됐다. 한번 작업에 빠지면 몇 시간씩 꼼짝 않고 나무를 엮는다는 작업자들의 말이 이해됐다.
공방 카나비요르크에 전시된 공예품.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제공
고요한 수고로움과 나무줄기가 함께 엮이면서 형태가 만들어지는 모습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언제 우리가 하루에 몇 시간씩, 이렇게 자연물을 오래 붙들고 만질 수 있을까. 이번 주 ESC는 나무 공예의 가장 기본이 되는 바구니를 만들며 최근 유행하는 라탄, 자작나무 껍질 공예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올봄, 고요한 ‘바구니족’이 되어 온전히 재료와 하나가 되는 이 시간을 함께 누려보자.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
[ESC] 한 땀 한 땀, 봄 바구니 엮어봅시다
자작나무 껍질 공예, 네베르슬뢰이드
국내 알려진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친환경적이고 자연스러운 미감이 매력
초보도 가능한 바구니 만들기 도전~
서울 성북구 자작나무 껍질 공예(네베르슬뢰이드) 공방 카나비요르크에 전시된 공예품.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제공
“이런 거 만들어본 적 있어요?” 지난달 23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자작나무 껍질 공예 공방 ‘카나비요르크’를 찾았다. 다짜고짜 바구니를 만들어보겠다고 하니 오나영 카나비요르크 대표가 물었다. “아뇨.” 해맑은 나의 대답에 오 대표의 눈빛이 흔들렸다.
“경험이 없으면,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만, 한번 해보죠.” 나는 이런 영역에선 요즘 말로 ‘똥손’이다. 손재주가 없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급한 성격 탓인지 무언가를 차분하게 엮는 뜨개질, 바느질에는 특히 젬병이다. 자작나무를 격자로 차분히 엮어가는 바구니를 만드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아 보였다. 완성할 수 있을까, 나무껍질이 잔뜩 엉키진 않을까, 호기심과 걱정을 동시에 안고 작업을 시작했다.
자작나무 껍질을 엮어 바구니를 만드는 신소윤 기자.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제공
“이걸 네베르라고 해요.” 오 대표가 너비 2㎝ 정도로 잘린 자작나무 껍질 한 묶음을 작업대에 올리며 말했다. 자작나무 공예를 뜻하는 ‘네베르슬뢰이드’(네베르스로이드)는 스웨덴 말로 자작나무 껍질이라는 뜻의 ‘네베르’와 수공예를 뜻하는 ‘슬뢰이드’를 합친 말이다. 스웨덴 등 북유럽 지역에 많이 자라는 자작나무를 재료로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드는 공예 활동이 요즘 활발하다고 한다.
재료는 간단했다. 네베르, 고정용 집게, 나무 주걱, 가위, 연필 따위가 내 앞에 놓였다. 기다랗게 잘린 자작나무 껍질인 네베르 한 줄을 잡았다. 약간 기름진 듯 촉촉하면서도 질긴 질감이었다. 자작나무 껍질은 종이처럼 가로로 얇게 벗겨지는 특징이 있는데, 북유럽 지역에서는 늦봄~초여름 약 한달 동안 공예용 자작나무 껍질을 채취한다고 한다. 이 시기에 작업한 나무껍질이 유수분이 촉촉하게 배어 있어 물건을 만들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자작나무 껍질을 엮어 바구니를 만드는 신소윤 기자.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제공
네베르 두 줄을 잡고, 가운데 부분을 직각으로 포갰다. 이를 기점으로 네베르를 사방으로 한 줄씩 격자로 엮어가다 보면 바구니 바닥 면이 만들어진다.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수직, 수평을 잘 맞추면 된다”는 오 대표의 설명이 듣기에는 쉬웠지만, 손은 귀로 들은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바닥을 짠 뒤 모서리를 만들며 옆면을 짜 올릴 때는 지금 내가 맞게 하는지, 틀리게 하는지 더 헷갈렸다.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고정용 집게를 잘 사용하고, 네베르가 빡빡해서 잘 들어가지 않으면 나무 주걱을 활용하라”는 선생님의 설명이 귓전만 맴돌다 사라졌다. 도구란 무엇인가. 헝클어진 나무껍질들 앞에서 나는 호모하빌리스(도구의 인간)로 진화하기에도 한참 멀어 보였다.
“선생님, 이렇게 하는 게 맞는가요?” “선생님, 지금 잘되어가고 있는 거죠?” 불안한 마음이 연달아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며 나쁜 작업의 예로 보여줬던 작업대 끄트머리에 놓인 바구니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내가 오늘 만든 게 곧 저 옆에 놓이겠구나.’
자작나무 껍질을 엮어 바구니를 만드는 신소윤 기자.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제공
작업 중반쯤, 엉킨 머리카락처럼 솟아올라 있던 네베르들을 한 땀 한 땀 아래로 접어 내리며 테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음이 정돈된 건 이쯤부터였던 것 같다. 차츰차츰 잡혀가는 모양을 보며, 조금 전까지 혼란스러워서 보이지 않았던 작업의 단순성이 눈에 들어왔다. 한 땀을 짜고 나면 그다음 한 땀, 갈 자리가 정해져 있다는 것. 행여 잘못 꿰더라도 돌아가 바로잡고 다시 나아가면 된다는 것. 그렇게 하나씩 진행하다 보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다른 얘기들도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년 전 <네베르스로이드>를 펴내기도 한 오 대표는 국내에 자작나무 공예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인물이다. 한국 네베르슬뢰이드의 ‘조상님’ 격인 셈이다. 그는 한국에서 재료도 구할 수 없었던 시절인 2013년 생활용품 상점을 운영하며 우연히 접한 네베르슬뢰이드에 흠뻑 빠졌다. 일상에서 자주 보던 한국의 대나무 바구니나 동남아시아의 라탄 바구니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샘플을 구하려고 온·오프라인을 수소문하던 당시 옆 나라 일본에서는 네베르슬뢰이드 열풍이 먼저 불었는데, 그마저도 희소성과 인기 때문에 번번이 품절이 이어진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기 어려우니 직접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일본의 공방까지 찾아가 배운 것이 오늘에 이어졌다.
오나영 카나비요르크 대표.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제공
그는 처음에는 네베르슬뢰이드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반해 만들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인간과 자연이 소박하게 공생하는 공예라는 점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북쪽 지역의 특성상 나무가 빨리 자라지 않으니 나무를 베어서 작업했다간 남아나지 않았을 텐데, 정해진 기간에만 껍질을 채취한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스웨덴은 자작나무 껍질의 채취 기간을 엄격하게 지킨다. 나무의 생존을 위해 해마다 채취 구역을 바꾼다. 껍질을 벗긴 자작나무는 생장 속도가 느려지긴 하지만, 오히려 더 단단하게 자란다고 한다.
자작나무 바구니는 완성된 뒤에도 보관만 잘하면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다. 가볍고 공기가 잘 통해 음식물을 보관하기도 좋고, 사용한 뒤에는 물로 씻어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 말리면 된다. 세척을 자주 해 바구니가 건조해지면 기름을 발라 말리면 다시 새것 같아진다.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바구니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제공
천천히 작업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덧 3시간 가까이 지나 있었다. 긴장했던 손끝에 한층 여유가 생겼다. 코로나19로 집 안에만 갇혀 있던 지난 1년, 진작 이걸 왜 몰랐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작업을 이어가며 마음속에 들어찼던 화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시간째 자연물을 계속 만지작거리며 얻은 위로인지, 잔뜩 뒤엉켜 있던 재료가 정돈되며 헝클어져 있던 마음도 함께 차분해졌는지, 혹은 둘 다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이 작은 바구니가 주는 위안에 흠뻑 빠졌다는 것이었다. 긴 겨울을 보내는 스웨덴 사람들은 자작나무를 엮어 바구니, 가방, 신발 등을 만들며 시간을 보낸다고 하던데, 바구니를 짜다 보니 기어이 봄이 오는 듯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SC] 자작나무 바구니 만들기 팁
관건은 촉촉함 자작나무 껍질인 네베르는 자연 재료 특성상 상태가 조금씩 다를 수도 있고, 보관 기간에 따라 빨리 건조해질 수도 있다. 작업 전 상태를 확인했을 때, 나무가 메말라 있다면 가정에 있는 식물성 기름(올리브유, 포도씨유, 해바라기씨유 등)을 바르면 된다. 기름이 나무껍질에 잘 흡수되어 촉촉해지면 작업을 시작하자.
도구는 나의 힘 네베르슬뢰이드의 장점은 자작나무 껍질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만들 수 있다는 단순함에 있다. 하지만 좀 더 용이한 작업을 위해 오일, 나무집게, 나무 주걱 등을 준비해보자. 오일은 바구니 안쪽을 짤 때 빡빡한 짜임인 네베르의 마찰력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나무집게는 바구니를 붙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네베르를 끼울 때 활용하는 나무 주걱도 익숙해지면 제3의 손처럼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색깔 내기
밝은색의 자작나무 껍질 바구니를 좀 더 짙은 색으로 만들고 싶다면 ‘태닝’ 과정을 거치면 된다. 면포에 식물성 기름을 묻혀 바구니 전체 표면에 발라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 완전히 말린 뒤 햇빛이 닿는 곳에 두면 바구니가 자연스럽게 진한 갈색으로 익어간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참고 도서 <네베르스로이드>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