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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사랑 없이 의리만 남은 우리, 계속 살아도 될까요?

등록 2021-04-23 05:00수정 2021-04-23 15:51

Q1 연애∙결혼 도합 10년째 멀어진 남편
사랑 없이 의리만 남은 우리 괜찮을까
A1 ‘이렇게 살 수 있을까’가 아니라
원하는 부부의 삶 무엇인지 성찰할 것

Q2 아이 건강문제로 주말부부 생활 시작
몸 멀어지며 마음도 자꾸 멀어지는 우리
A2 관계란 물주며 가꾸는 식물 같은 것
관계 회복 위한 의식적 노력 필요해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Q1. 안녕하세요. 장장 3년을 끌어오던 고민을 보냅니다. 언젠가 작가님이 이혼에 관해 얘기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가장 나쁜 것은 둘이서 외로운 것이다.” 이 말에 무릎을 탁 쳤죠. 저는 지금 남편과 계속 살아야 할지 고민입니다.

저는 올해 33살, 남편은 38살이에요. 연애와 결혼 생활 합이 10년이고요. 아이가 없어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결혼한 지 4년째인데, 결혼한 이후로 한 번도 부부관계를 가진 적이 없어요. 남편의 코골이가 심해 결혼 초부터 각방을 쓴 탓도 있어요.

현재 남편은 저희 아빠 가게를 물려받을 생각으로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저와 함께 장사하고 있어요. 장사 시작 뒤엔 아빠가 원해서 현재 저희 부모님 집 아래층에 전세로 살고 있어요. 이사로 인해 대출금이 늘었고, 이사 과정에서 아빠가 좀 강압적으로 나온 부분이 있어요. 남편이 아빠와 잘 맞지 않아 그 화풀이를 저한테 하고, 그게 싸움으로 이어지는 일이 벌써 2년째 반복되고 있어요. 부부관계가 소원해지고 사랑한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들어요. 저도 이제 이 싸움에 해탈한 것 같아요. 가끔 데이팅 앱을 통해 사람을 만나기도 하는데 최근엔 설레는 사람과 잠시 만나기도 했어요.

요즘 남편은 오로지 돈만 바라보며 열심히 매진 중이에요. ‘영끌’ 대출을 해서 주식에 매진 중인데, 경제학과 출신이기도 하고 재밌어하더라고요. 노력이 대단한 부분도 존경스럽고요. 그렇다고 제가 기쁘진 않아요. 이 남자와 계속 사는 게 맞을까요? 현재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데 부부관계도 안 하고 사는 지금, 그냥 의리로 계속 살 수 있을까요? 남편과 의리로 사는 여자

A1. 의리로 계속 살 수 있겠냐는 질문에 대해 제 답은 ‘당연히 그렇다’입니다. 사랑한다는 느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없어도 인간은 누군가와 함께 살 수 있는 존재에요. 이미 3년째 그렇게 살고 계시잖아요. 3년 아니라 30년, 40년도 그렇게 고민만 하면서 살 수 있어요. 사랑은 빛이 바랬어도 의리로 함께 하는 삶을 사는 부부는 이미 당신 주변에도 많을 겁니다. 당신이 내색하지 않듯이 그들도 당신에게 내색하지 않을 뿐이죠.

싸움에 해탈할 정도로 자주 싸우고, 만남 앱을 통해 사람을 만나게 될 정도로 외롭고, 서로 몸에 대해 조금의 관심이나 애정도 없는 이 관계를 돌아보세요. 의리로 산다, 친구 같은 관계라고 하셨지만, 서로 관심도 없고 자주 싸우는 관계를 어떻게 의리이고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애정이 고갈된 부부관계라는 것을 직면하기 두려우니, 의리나 친구 같은 단어 뒤로 도망쳐 버린 것은 아닐까요?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우니, ‘다들 그렇게 살아’라는 말로 스스로 위로하는 것은 아닌가요? 평생 아끼고 사랑하겠노라 종신 계약을 한 것이 불과 4년 전인데요.

당장 나의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가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는 부부로서의 삶은 어떤 것인가?’를 물어야 해요. 전자는 성찰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그저 불평과 괴로움에 대해 주목하게 되는 질문이지요. 그러나 후자는 성찰로 이어집니다. 내가 원하는 중요한 가치가 내 삶에 실현되지 않고 있다면, 어디부터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지요. 부부로서 필요한 것은 따뜻한 대화, 배려와 관심, 상대방과 진심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는 마음입니다.

같은 집에 살고 법적으로 부부이고 성관계를 갖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결혼의 하드웨어적 측면이라면, 하드웨어를 함께 운영하는 두 사람이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과 태도는 결혼의 필수 소프트웨어이지요. 껍데기는 부부지만, 내용물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니 공허하고 외로울 수밖에요. 그리고 매일 관계를 갖는다고 해도 몰래 바람을 피우기도 하는 존재가 인간이에요. 잠자리가 없다는 것은 이미 마음이 멀어져서 일어난 ‘결과’일 뿐 잠자리가 없어서 마음이 소원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살고 있을 뿐 마음이 완전히 따로인데, 굳이 저 사람의 몸을 아껴주고 기분 좋게 만들어줄 이유가 있을까요? 외로움에 대한 해소이든, 성욕의 해소이든, 그냥 다른 사람을 만나 손쉽게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 되겠지요.

당신이 살까 말까를 고민한다는 건, 당신에게 중요한 무엇이 빠져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스럽더라도 이 질문을 멈추지 마세요. ‘내가 진심으로 관계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이 결혼에 있는가 없는가?’ 당신이 원하고 바라지만 이 결혼에 없는 것, 그것을 만들려고 노력해야죠. 개인 상담을 먼저 받고, 부부 상담도 받을 수 있도록 하세요. 지금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노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세요. 그것이 바로 상대에 대한 의리이고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이 아닐까요? 한 번뿐인 삶. 목숨이 붙어 있는 누구나 살긴 살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삶을 만끽하고 깊은 사랑을 느끼며 제대로 살지는 못합니다. 살긴 사는 삶을 원하세요? 제대로 살기 원하세요? 이제 당신이 답할 차례입니다.작가(헤르츠컴퍼니 대표)

Q2.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사는 결혼 10년 차, 8살 아이의 아빠입니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천식이 심했어요. 여러 방안을 찾다가 공기 좋은 지역에 가서 생활하니 좀 나아지는 것 같아서 2년 전부터 아내와 아이는 지방에 있는 처가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올 초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집으로 돌아올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작년에 코로나19도 터지고 또 막상 아내도 친정에서 지내는 생활이 편한지 아이 학교를 거기서 보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주말 부부 생활이 길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매주 아이와 아내를 보러 제가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차로 운전해서 3시간 이상 가야 하는 곳이라 가끔은 좀 지치더라고요. 너무 피곤한 주에는 한 번씩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몇 차례 반복되다 보니 가는 날보다 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아지더라고요. 지금은 얼굴 본 지 6개월이 넘은 것 같아요.

아내도 특별히 저에게 오라고 채근하지 않습니다. 뭐랄까 서로 싫은 건 아닌데, 또 딱히 보고 싶은 건 아니고,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좀 편한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 저희 관계가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가끔 '썸'을 타는 사람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을 넘고 싶은 마음도 안 생기고요. 그렇다고 부부 관계를 깨고 싶은 마음은 안 들어요. 그렇다고 아내와 뭘 잘 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기진 않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몸도 마음도 멀어진 부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A2. 주말부부 생활이 길어지면서 소원해진 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계시는군요. 아이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부부의 관계에는 독이 되는 선택이 되었네요.

‘결혼만족도’ 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결혼 생활 전반에서 추구하는 목표와 욕구가 어느 정도 달성되었는지에 대해 부부의 감정과 태도를 가늠하는 기준이지요. 연구에 따르면 이 결혼만족도는 생애주기에 연동됩니다. 즉 신혼 때 만족도가 최고점을 찍고, 아이가 출생하고 커가면서 급격히 하락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관찰됩니다. 청소년 자녀를 양육할 때 만족도는 최저점을 찍고, 자녀가 독립한 이후로 중년 이후에 다시 만족도가 상승하는 유(U)자 곡선을 그립니다. 아이가 커갈수록 결혼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결혼 후 20년간은 삶이 더 고단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죠. 행복하기 위해 결혼을 했지만, 노력 없이는 행복이 유지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더 많은 대화,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 관계가 지금 뭐지?’라는 질문은 그만 하세요. 이미 알고 계시잖아요. 아내와는 법적으론 부부이지만 현재 썸 타고 밥 먹고 술 마시는 가벼운 관계보다도 못한 관계이지요. 원하지도 궁금하지도 무언가를 함께 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관계요. 부부의 연이 소중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시간을 내어 가족을 만나러 가세요. 몸이 지쳤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라도 가시고 아이와 아내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올라와 달라고 부탁도 하세요. 특별히 오라고 채근하지 않으니 안 가도 되는 것이 아니죠. 마음이 소원해진 것을 느끼니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부부의 관계를 깨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면 더더욱 이런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관계는 계속해서 물을 주고 가꿔야 하는 식물 같은 것입니다. 특히 부부는 더 그렇지요. 6개월간 만나지 않고도 보고 싶지 않은 관계는 어느 순간 말라 비틀어져 살릴 수 없는 식물처럼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딱히 깨고 싶지 않다고 해서 깨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뜻입니다.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 후회하기보다 작은 노력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작가(헤르츠컴퍼니 대표) 

곽정은 작가가 상담을 이성 관계, 사랑, 연애뿐만 아니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물론 이성 관계, 연애 고민 상담도 진행합니다.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s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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