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하나의 장르로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세상에는 ‘호텔 영화’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들이 있다. 아름다운 도시의 특정 호텔을 배경으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영화들이다. 대부분 가상의 호텔을 무대로 한다. 수많은 스태프가 몇 주 동안 시끌벅적하게 호텔을 점령하고 영화를 만드는 걸 반길 경영자는 없다.
그런데도 몇 편의 영화들은 실제 운영 중인 호텔을 배경으로 촬영됐다. 가장 유명한 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리젠트 베벌리 윌셔 호텔을 무대로 한 〈귀여운 여인〉과 이탈리아 피렌체의 펜시오네 베르톨리니를 무대로 한 〈전망 좋은 방〉일 것이다. 1929년 개장한 리젠트 베벌리 윌셔는 여전히 건재하니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줄리아 로버츠처럼 프린스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것도 가능하다(물론 스위트룸 가격은 그리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전망 좋은 방〉에서 헬레나 본햄 카터가 묵었던 펜시오네 베르톨리니는 몇 년 전 데질 오라피라는 이름의 호텔로 새롭게 리뉴얼되어 개장했다. 토마스 만의 소설을 영화화한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의 죽음〉도 호텔 영화 카테고리에서 뺄 수 없는 걸작이다. 베니스 리도섬에 1900년 개장한 베인즈 호텔은 20세기 내내 당대 셀러브리티들이 휴양을 즐기던 초특급 호텔이다. 토마스 만은 여기서 만난 아름다운 소년에 대한 책을 썼고, 16년 뒤 비스콘티는 베인즈 호텔에서 이 책을 영화로 만들었다. 불행하게도 〈베니스의 죽음〉 속에서 흥청거리던 베인즈 호텔은 지난 2010년에 완전히 문을 닫았다. ‘호텔 영화’의 거장을 단 한 명만 꼽으라면 역시 소피아 코폴라를 꼽을 수밖에 없다. 도쿄 파크 하얏트 호텔을 무대로 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LA 샤토 마몽 호텔을 배경으로 한 〈썸웨어〉에서 코폴라는 소녀 주인공들을 침대에 던져두고 별 대사도 없이 카메라를 돌린 뒤 기가 막히게 나른한 아름다움을 잡아내는 장기를 보여준다. 그야말로 궁극의 호텔 영화들이다. 김도훈(전 〈허프포스트〉편집장·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