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KIA) 타이거즈 최형우가 20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2023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경기 4회초 1사1루 때 2점 홈런을 쳐낸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어찌 보면 공백이 길고 출발이 늦었다 하겠으나, 실은 기회에 강한 선수였다. 프로 방출 뒤 찾아온 두 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꾸준하고 치열한 분투 끝에 15년 세월을 새 역사로 돌려받았다. 팀이 절박할수록, 주자가 많을수록 잘 쳤던 최형우(39·기아 타이거즈)가 한국프로야구 ‘올 타임 타점왕’에 올랐다.
최형우가 KBO리그
첫 1500타점 고지의 주인공이 됐다. 20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한화 이글스 방문 3연전 첫날 팀이 0-1로 뒤진 4회 초 1사1루 상황에서 한화 선발 한승주의 시속 144㎞ 초구를 공략했다. 중견수 머리 위로 높게 뜬 타구는 비거리 125m 아치를 그렸다. 역전 투런포. 2타점을 추가한 그는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1498점)을 제치고 통산 타점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가시거리에 들어왔던 타점 1인자 문턱을 승부처에서 역전 2점 홈런으로 넘어선 순간이었다. 최형우는 지난 16일 엔씨(NC) 다이노스전에서 홈런 두 방으로 4타점을 쌓았고, 이튿날 1타점을 추가하며 이승엽 감독의 역사에 어깨를 나란히 했다. 18일 엔씨와 마지막 경기에서는 타점을 올리지 못했으나 이어지는 경기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전설의 자리를 꿰찼다.
험난한 여정이었다. 2002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시작한 프로생활은 4년간 열 타석도 채우지 못한 채(2002·2004시즌 6경기 7타석) 방출로 마무리됐다. 방출 통보를 받고 지직거리는 티브이를 멍하니 쳐다보며 “진짜
인생이 끝난 줄 알았다”던 그의 야구는 그러나,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운 좋게 들어간 경찰청 야구단에서 포지션 변경(포수→외야수)을 감행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과 타협”이라는 선택지를 배제한 채 정진했다.
기아(KIA) 타이거즈 최형우가 20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2023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경기 4회초 1사1루 때 2점 홈런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야구의 절실함’을 온몸으로 체현한 최형우는 2008년 다시 삼성의 부름을 받았다. 복귀 후 첫 시즌 네 번째 타석에서 그는 프로 첫 타점(4월1일 LG 트윈스전)을 뽑아냈다. 1500점 기록과 마찬가지로 1사1루 상황에서
2점 홈런을 때려냈다. 앞으로 그가 기록하는 타점은 하나, 하나 역사가 된다.
최형우가 프로에서 맨 처음 달았던 등 번호는 43번이었다. 하지만 야구에 간절함이 생기며 삼성과 재계약했을 때 메이저리그 왼손 거포 다비드 오티스를 따라서 34번으로 바꿨다. 공교롭게도 43번을 뒤집은 번호였다. 34번은 그의 오른팔에 어머니, 동생들 이름과 함께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프로야구 역사에도 잊힐 수 없는 등번호가 됐다.
한편, 이날 최형우의 역전포로 리드를 잡은 기아는 9회 말 연달아 볼넷을 내주며 2점 차까지 쫓긴 끝에 6-4 진땀승을 거뒀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