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의 나이와 두 번째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한 투수에게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건 당연하다. 아무리 뛰어난 투수라고 해도 나이와 부상을 극복하는 건 힘들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류현진(36)에게 향한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복귀 후 류현진은 ‘얼마나 잘할지’보다 ‘얼마나 버틸지’가 관건이었다.
토론토도 신중했다. 류현진을 서둘러 복귀시키지 않았다. 토론토는 휴식일 없는 17연전을 소화하는 시점에서 류현진을 합류시켰다. 임시로 6인 로테이션을 썼던 토론토는 17연전이 끝나면 다시 5인 로테이션으로 돌아갈 것을 암시했다. 선발진에서 누군가가 빠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류현진도 기량을 회복하지 못할 경우, 선발진 잔류를 장담할 수 없었다. 토론토 역시 ‘30대 중반에 두 번째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류현진에게 확신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2일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돌아온 류현진은 첫 등판에서 5이닝 9피안타 4실점으로 물러났다. 초반 난조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경기 운영으로 경기 중반까지 마운드를 지킨 점은 고무적이었다. 반면, 더 느려진 포심 패스트볼(포심)과 무뎌진 체인지업은 보완이 필요한 과제였다.
류현진은 다음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전(8일)에서 4이닝 노히트 피칭을 이어갔다. 그러나 투수 강습 타구에 무릎을 맞고 교체됐다. 다행히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두 번째 등판에서 감각을 되찾은 것으로 보였던 류현진은, 이후 시카고 컵스전(14일)에서 복귀 첫 승리를 장식(5이닝 비자책 2실점)했다. 그리고 세 경기 연속 승리를 질주하고 있다. 세 경기 성적만 놓고 보면 15이닝 2자책으로, 평균자책점은 1.20이다. 같은 기간 피안타율도 0.175로 잘 관리하고 있다. 한편, 토론토는 류현진을 선발진에 남기고, 알렉 마노아를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냈다. 류현진은 복귀와 동시에 피하지 못한 경쟁에서 또 한 번 살아남았다.
류현진은 포심 평균 구속이 아직 88.5마일(142.5㎞)에 머무르고 있다. 류현진보다 포심 평균 구속이 느린 선발 투수는 애덤 웨인라이트(86마일)와 카일 헨드릭스(87.7마일)밖에 없다. 포심 성적도 20타수 6안타(0.300)로 안 좋았다. 하지만 다른 무기들이 포심의 약점을 상쇄하고 있다. 현재 류현진은 포심뿐만 아니라 싱커와 커터, 커브, 체인지업 비중도 모두 두 자릿수(포심 30.2%, 체인지업 25.3% 커브 18.6%, 싱커 14.6%, 커터 11.3%)다. 다양한 레퍼토리로 타자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 류현진은 하나의 구종도 구속과 궤적에 변화를 주면서 다르게 보이는 효과를 주는데, 실제로 현지에서는 “류현진의 포심 움직임이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복귀 후 주목 받는 구종은 단연 커브다. 큰 각을 형성하면서 들어오는 커브는 포심(평균 구속 69.6마일)과 약 20마일(32㎞) 정도의 구속 차이를 보인다. 직전 등판 커브의 평균 구속은 67.4마일(108.5㎞)로, 이번 시즌 투수 중 가장 느린 커브 구속(10구 이상 기준)이었다. 참고로 직전 등판 류현진에 의해 이 부문 최저 2위로 내려간 투수가 지지난 등판의 류현진(21일 커브 평균 68.8마일)이었다. 즉 올해 류현진은 타자들이 겪어본 적이 없는 느린 커브로 타자들을 당황스럽게 하고 있다.
체인지업도 나아지고 있다. 포심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체인지업은 여전히 류현진의 핵심 구종이다. 첫 경기에서 공략을 당하는 모습이 있었지만, 현재 체인지업 피안타율은 0.219(32타수 7안타)로 준수한 편이다. 체인지업 헛스윙률 30.2%는 류현진이 가장 눈부셨던 2019시즌 체인지업 헛스윙률(29.6%)과 비슷하다. 평균 구속 70마일 후반대 체인지업은 80마일 후반대 포심과 60마일 후반대 커브의 중간 지점으로, 이 두 구종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아야 하는 류현진도, 결국 체인지업이 타자들에게 통해야 진면목을 발휘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는 투수들의 구속이 점점 빨라지는 추세다. 이번 시즌 포심 평균 구속 94.2마일(151.7㎞)은 구속 측정이 시작된 2008년 이후 최고 기록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구속만 집착하는 분위기는 경계해야 한다. 뉴욕 타임스도 공은 빠르지만 제구가 불안한 투수들이 급증한 리그를 두고 ‘스로워(thrower)의 시대’라고 비판한 바 있다. 스로워는 목적을 가지고 공을 던지는 피처(pitcher)와 다른 개념이다.
구속이 강조되는 시대에서, 류현진은 시대를 역행하는 투수로 돌아왔다. 과거 톰 글래빈은 “야구를 향한 나의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류현진도 구속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는 투수다. 그리고 이러한 투수의 가치를 몸소 증명하고 있다.
이창섭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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