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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야구·MLB

“미트가 여친 얼굴이라 생각하고 던져요”

등록 2009-07-22 18:54수정 2009-07-22 23:03

송승준(29·롯데)
송승준(29·롯데)
[36.5℃ 데이트] 롯데 에이스 송승준 ‘희로애락’ 야구인생
경상도 사나이 송승준(29·롯데)은 턱수염을 기른다. 미국 마이너리그 시절 마운드에 섰을 때, 한 백인 타자의 덥수룩한 수염이 자신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경험에 따른 것이다. 턱수염으로 얼굴 일부를 가렸지만, 그의 야구에 대한 열정만은 숨길 수 없다. 지난 21일 잠실구장에서 두산전에 앞서 그의 야구인생 희로애락을 들어봤다.

“메이저리그 타자 한명만 상대해보자” 애걸
빈 맥주캔으로 산 쌓은 마이너리그 8년 설움
귀국 2년만에 PS진출·병역해결 ‘인생역전’

■ 희

송승준은 “시즌 전 마음속에 목표로 삼은 것을 시즌 후 달성했을 때 제일 기쁘다”고 했다. 때문에 그의 야구 인생에서 지난해는 가장 기쁜 한 해였다.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과 시즌 두 자릿수 승수, 군문제 해결 등 모든 목표를 이뤘다. 메달 수확이 없었다면 그는 지금 상무나 경찰청에 입단했을 터였다.

이해심 많은 여자친구도 큰 기쁨이다. 사귄 지 1년 된 여자친구는 시즌 초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 “7~8살 어린 투수들도 잘 던진다. 자만하지 말고, 더그아웃에서 웃을 시간에 공 한 개라도 더 던지라”며 그를 채찍질했다. “내 말에 화가 난다면, 포수 미트를 내 얼굴이라 생각하고 던져라”고도 했다. 처음에는 발끈했지만, 다음날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자친구 말이 틀린 게 없었다. 그날부터 포수 미트를 ‘얄밉지만 똑부러진’ 여자친구 얼굴이라 생각하고 던졌다.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꽂히기 시작했다.


■ 로

2003년 9월, 그는 팀 내 메이저리그 승격 1순위였다. 하지만 구단(몬트리올 엑스포스)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확대엔트리 때 단 1명의 선수도 메이저리그로 올리지 않았다. “돈을 받지 않을 테니 제발 메이저리그로 보내달라”고 매달렸지만 구단은 “불법 소지가 있어 안 된다”며 냉혹하게 거절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가난한 구단에 속한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2004년 5월에도 그랬다. 메이저리그 선발등판을 코앞에 두고 불의의 팔 부상을 당했다. 결국 그 대신 더블A 선수가 승격됐다. “나 대신 올라간 선수가 잘 던지기라도 했으면 화가 덜 났을 텐데, 5번 선발 동안 계속 얻어터지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집에서 맥주만 퍼마셨다.” 당시 마신 맥주캔으로 산을 쌓을 정도였다.


송승준(29·롯데)
송승준(29·롯데)
■ 애

2006년 말 송승준은 캔자스시티 로열스 산하 더블A 감독에게 매달렸다. “군 입대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메이저리그에서 단 한 타자만이라도 상대하고 귀국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사정은 구단 사장에까지 보고됐다. 하지만 역시 돌아온 대답은 “팀 규정상 안 된다”였다. 구단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훔쳤다. 메이저리그만 바라보며 견뎌냈던 8년 동안의 마이너리그 생활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가슴이 많이 아렸다.

한국으로 돌아온 첫해(2007년)에도 눈물을 쏟았다. 1군에서 너무 부진해 2군으로 떨어졌을 때였다. “기대를 많이 받고 돌아온 첫해 성적이 너무 안 좋았다. 한국까지 와서 2군에서 야구를 해야 하는 마음에 화도 나고 해서 남몰래 울었다.”

■ 락

올해 그는 에스케이전(7월4일)에서 완봉승을 거뒀을 때 가장 큰 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1위 팀을 이겨야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특히 그날 경기에서는 그가 원하는 곳에 공이 쏙쏙 박혀서, 상대 타자들을 마음껏 요리했다. 완봉승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아주 만족스러웠던 경기였다. 히어로즈전 완봉승(7월10일)도 좋았다. 그동안 히어로즈전(현대전 포함) 11경기에 등판했는데,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송승준은 “야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기에서 뛰든 안 뛰든 오랫동안 꾸준한 성적을 내면서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게 프로에서 진짜 살아남는 것”이라고 했다. 부상 없이 마운드 위에서 이기는 기쁨을 오랫동안 느껴보고 싶다는 뜻이다. 그는 여기에 더해 지금껏 프로 데뷔 뒤 싱글A팀에서만 느껴봤던 우승의 감격을 누려보고 싶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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