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시즌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 활약하고 있는 ‘보미짱’ 이보미 모습. 올 시즌에는 “샷이 잘 안됐으나 퍼팅 등 쇼트게임이 좋았다”고 했다. 르꼬끄골프 제공
“행복하다♥♥”
그의 카카오톡에는 이런 글귀가 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여전히 ‘보미짱’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데, 지난해에 이어 올 시즌에도 투어 선수 중 최고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2년 연속 올해의 선수와 상금왕(1억7586만9764엔·18억2000만원)을 동시에 거머쥐었고, 평균타수도 70.092로 당당히 1위에 올랐다. 어디 그뿐인가. 올 시즌 무려 5승을 올렸다. 2011년 일본 투어에 공식 데뷔해 이번 시즌 말 통산 20승 고지에 올랐다. 6년 동안 상금으로만 7억엔(75억원) 이상을 벌었다. 명예에다 부까지 다 얻은 셈이다. “작년에도 너무 잘했는데, 그것을 이어서 올해도 잘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보람이 있어요.”
2010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4관왕(대상, 상금왕, 최저타수상, 다승왕)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뒤 일본으로 건너가 최고 인기스포츠 스타 중 한명이 된 여자프로골퍼 이보미(28·혼마골프). 한국 투어에서 ‘스마일 퀸’이던 그는 이젠 ‘보미짱’으로 일본 열도 미디어는 물론 골프팬들로부터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지난 일요일 2016 시즌을 화려하게 마친 뒤 28일 밤 자신을 뒷바라지하던 어머니(이화자)와 귀국한 그를 다음날 전화로 인터뷰했다. “죄송해요. 너무 바빠서…. 주말엔 (임)지나 언니 결혼식에다 사촌 결혼식까지 있고, 저의 팬카페 송년회도 있어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다. 어머니는 “시즌 뒤 노느라고 정신이 없는 것 같다”고 했고, 이보미는 “레슨 하는 친구들 만나 수다 떨고 얘기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일본 팬들이 이보미의 2년 연속 상금왕 등극을 축하해주고 있다. 이보미 제공
지난 시즌에는 무려 7승을 올리며 일본 남녀 프로골프 투어 사상 처음으로 시즌 상금 2억엔(2억3050만엔·21억3000만원)을 돌파하며 새 역사를 쓴 이보미는 올 시즌 이어진 상승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올해는 샷이 좋았다고 할 수 없어요. 그린플레이 등 쇼트게임이 좋았던 것 같아요. ‘리커버리’(미스 샷이 났을 때 이를 만회하는 능력)와 ‘파세이브율’(그린을 공략하지 못했을 때 정확한 칩샷으로 공을 핀에 붙여 파로 막는 것)이 아주 좋았습니다. 보기를 하지 않은 것이죠. 퍼팅도 잘됐고요.”
이보미는 지난해에는 32개 대회에 나갔지만 올해는 28개 대회에 나갔다. 지난 27일 시즌 최종전인 리코컵 투어챔피언십에서는 김하늘이 우승한 가운데 톱 10(2언더파 9위)에 들어 막판 올해의 선수를 확정지었다. “일주일 전 상금왕을 해서 편할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이 긴장했고 압박감이 많았어요. 특히 그린플레이가 잘 안됐어요. 그린이 느리다 싶으면 거기에 맞춰 속도감이나 (공) 터치를 바꿔야 하는데 그게 힘들더라고요.” 그는 당시를 이렇게 돌아봤다. 올해의 선수상을 2년 연속 받은 것도 일본에서는 이보미가 처음이라고 한다.
일본여자프로골프 투어에서는 한국 선수들의 경쟁이 뜨겁다. 이지희(37)를 비롯해 전미정(34), 안선주(29), 신지애(28), 김하늘(28) 등이 우승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보미는 “(이)지희·(안)선주 언니 때문에 잘 버티고 이렇게 왔던 것 같다”고 감사를 표한다. “지희 언니는 벌써 일본 투어 16년째이고, 저는 고작 6년차인데 힘들어 하잖아요. 언니들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가졌고, 언니들처럼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했어요. 자주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투어 대회 아침에 마주칠 때 언니들의 잠깐 한마디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말에 다시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고요.”
동갑내기인 신지애와는 올 시즌 막판까지 상금왕 경쟁을 벌여야 했다. 한국 선수들은 이보미의 5승을 비롯해 7명이 올해 17승을 합작했다. 상금 순위에서도 신지애가 2위(1억4709만8013엔), 김하늘이 4위(1억2897만1119엔)에 오를 정도로 일본 투어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전미정, 이지희, 안선주가 7~9위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 투어에서 2년 동안 6관왕을 했으니 일본 사람들이 싫어하지는 않을까. “아니에요. 전부 다 축하해주시고, 협회나 스폰서 분들도 축하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할 뿐이에요. 기분 나쁘다고 하는 사람이 없어요.”
이보미가 어머니 이화자씨와 함께 일본 투어 중 찍은 셀카 사진이다. 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그를 뒷바라지하고 있다 이보미 제공
2년 전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이보미는 어머니의 헌신적 뒷바라지로 일본 투어를 무리 없이 뛰고 있다. “제가 마음이 약해질 때 엄마가 항상 도와주세요. 엄마의 도움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이보미는 여동생 2명에 언니 1명 등 딸부잣집의 셋째 딸이지만 아직은 결혼 생각이 없다. 그는 가족을 무척 소중히 생각한다.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져 속상하지만 제가 잘함으로써 가족들과 잘 지낼 수 있는 게 너무 좋아요. 가족들과 더 좋은 데도 가보고, 더 행복한 시간도 가지고 싶어요.”
이보미는 내년 시즌에도 미국 투어로 진출하기보다는 일본 투어에서 계속 뛸 생각이다. “미국 투어에는 메이저 대회에만 출전하고 싶어요. 올해 유에스(US)여자오픈에서 컷오프 당하는 등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는데, 에이엔에이(ANA) 인스퍼레이션에서는 톱 10에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미국 투어에서는 잘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 않아요.” 이보미는 이번 시즌 뒤 일본 현지 인터뷰에서 “3년 연속 상금왕을 목표로 하면 압박감이 생길 것 같다”며 “평균 타수 60대 진입과 메이저 우승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경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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