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이프와 라이벌…“이기는 자가 강한 것” 명언 남겨
“베켄바워의 리베로 포지션에 대한 해석이 축구를 변화시켰다. 어쩌면 1960년대 유럽에 퍼져있는 문화적 자유주의와 자유의 정신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율리안 나겔스만 독일 대표팀 감독은 8일 (현지시각) 세상을 떠난 독일 축구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를 추모하며 이렇게 말했다.
베켄바워는 축구에 사상과 철학을 담고 축구를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그라운드의 철학자이자 예술가였다. 그는 범접할 수 없는 실력과 압도적 카리스마로 그라운드를 지배해 ‘카이저 (황제)’로 불렸다.
베켄바워는 리베로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는 수비라인의 최후 저지선 역할을 하는 리베로에 공격적인 요소를 도입해 ‘특별한 수비수 ’로 재창조했다. 상대 공격수의 공을 걷어내는 데만 급급했던 기존 리베로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는 상대 공을 가로채 중원으로 돌진하거나 정확한 전진 패스로 공격에 숨통을 트이게 하고 활력을 넣었다. 미드필드는 어느새 수적 우위를 점하게 됐다. 베켄바워는 마지막 수비수이자 첫 공격수로 축구 전술에서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 혁명가였다.
베켄바워에게는 라이벌 요한 크루이프가 있었기에 그의 축구 철학이 더 빛났다. 크루이프는 ‘토털 사커의 완성자’로 불린다. 이것은 베켄바워의 ‘창조적 리베로 ’와 같은 맥락이다. 베켄바워와 크루이프는 마치 메시와 호날두처럼 1970년대 세계 축구 최고의 라이벌이었다.
두 선수는 조국 네덜란드와 서독 (통일 전 독일)의 명예를 걸고 1974년 서독 월드컵 결승에서 숙명의 대결을 펼쳤고,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에게 수여하는 발롱도르상을 놓고 다섯번이나 경쟁하기도 했다.
월드컵 결승에선 서독이 2-1로 이겨 우승했지만 대회 최우수선수 (MVP)는 크루이프의 몫이었다. 자존심 강한 베켄바워는 이를 지켜보며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해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에게 수여하는 발롱도르도 크루이프가 차지했다. 그러나 베켄바워는 수비수로는 발롱도르를 2회 수상한 역대 유일한 선수다.
숨막히는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 사이지만 8년 전, 크루이프가 세상을 떠나자 베케바워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나의 좋은 친구이자 형제였다”며 애도했다.
베켄바워는 고향 뮌헨과 인연이 깊다. 그는 1945년 9월 11일, 2차 세계대전 직후 폐허가 된 서독 뮌헨에서 태어났다. 8살 때 뮌헨의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19살 때 바이에른 뮌헨에서 데뷔했다. 뮌헨은 베켄바워와 함께 분데스리가 4차례, 독일축구협회컵 (DFB 포칼) 4차례, 유럽축구연맹 (UEFA) 챔피언스리그 (UCL)의 전신인 유러피언컵 3차례 등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통산 A매치에서는 103경기에서 14골을 넣었고, 독일 선수로는 역사상 최초로 A매치 100경기 이상을 뛴 ‘센추리클럽 ’ 멤버다.
베켄바워는 지도자와 행정가로도 큰 업적을 남겼다. 1984년 39살에 대표팀 감독을 맡아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준우승,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특히 1990년 대회에서는 1986년 결승 상대였던 아르헨티나에 설욕했다. 월드컵에서 주장 (1974년 서독 대회)과 감독 (1990년 이탈리아 대회)으로 우승하는 첫번째 영광도 차지했다.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을 우승한 것은 브라질의 마리우 자갈루에 이어 역대 2번째다. 자갈루는 베켄바워보다 사흘 먼저 세상을 떠났다.
지도자에서 물러난 뒤에는 뮌헨 구단에서 1994년부터 2002년까지 회장직을 맡았고, 2002년부터는 명예회장을 지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유치위원장과 조직위원장을 맡는 등 행정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베켄바워와 분데스리가에서 함께 뛰었던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2020년 차범근 축구상 시상식에서 “내가 어릴 때는 베켄바워의 시대였다 . 내게 베푼 마음 한 조각 한 조각이 따뜻해 (베켄바워의 생일달인 ) 9월에 축하 샴페인과 꽃 , 카드를 보낸다 ”고 말했다 .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날 “여러 세대에 걸쳐 열정을 불러일으킨 독일 최고의 축구 선수였던 카이저를 우리는 그리워할 것”이라며 고인을 애도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