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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조는 20년 만에 나타난 ‘제2의 황선홍’이 될 수 있을까

등록 2018-08-28 16:09수정 2018-08-29 08:33

아시안게임 5경기 8골로 24년 전 황선홍 11골 기록 도전
골 결정력과 함께 공간 창출과 수비수 등지는 움직임까지
전성기 황선홍 뛰어넘는 한국 축구 대형 스트라이커 탄생
황선홍과 황의조. 한겨레 자료 사진.
황선홍과 황의조. 한겨레 자료 사진.
연장 후반 10분께. 황인범이 골대와 40m 정도 거리에서 벌칙구역(페널티 에어리어) 안에 있던 황의조에게 패스했다. 황의조는 이미 이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수렁에 빠진 한국 축구대표팀의 멱살을 혼자 잡아끌고 오던 상황. 수비수 2명 사이에서 골대를 등지고 패스를 받은 황의조는 오른발로 두 번 툭툭 공을 차올린 뒤 골대를 향해 빠르게 돌아섰다. 깜짝 놀란 우즈베키스탄 수비수가 어깨를 잡아끌었지만 이미 늦었다. 결정적인 페널티킥 유도.

이 장면에서 많은 축구 팬들은 한국 축구에 오랜만에 나타난 대형 스트라이커의 탄생을 확신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전성기 시절의 황선홍 감독을 떠올렸다.

황의조는 사실 이번 아시안게임 이전까지 대중적으로 알려진 축구 선수는 아니었다. 키 184㎝ 몸무게 73㎏이라는 좋은 신체조건에 민첩성이 좋고 슈팅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각급 청소년 대표팀에 뽑혔지만, 국가대표팀 경기에선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는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고,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 국가대표팀에는 슈틸리케의 황태자 이정협에게 밀렸다. 국가대표 데뷔전이던 2015년 9월3일 라오스와의 경기에선 후반전 교체 출장했지만 데뷔골을 기록하는 데 실패했다. 이후 이정협, 석현준 등과 함께 원톱 스트라이커 경쟁을 했지만, K-리그에서의 활약과 달리 국가대표 경기에선 유독 부진했다. 11경기에 출장해 1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 때문에 결국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일찌감치 빠졌다.

이번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학범 감독이 러시아 월드컵에서 활약한 공격수 손흥민, 골키퍼 조현우와 함께 황의조를 24살 이상 와일드카드로 뽑자 “왜 유럽파 석현준이 아니고 J-리그에서 뛰는 황의조냐”라며 ‘인맥 축구’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두 사람이 성남FC에서 감독 선수로 뛴 걸 두고 실력이 아니라 인맥으로 선수를 선발했다는 비난이었다.

대표팀의 약점은 수비인데, 공격수만 2명(손흥민과 황의조) 뽑은 것도 ‘인맥 축구’의 일환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프랑스 리그1 스타 드 랭스에서 부상 복귀 이후 13경기 1골로 부진한 석현준보다 J-리그 감바 오사카 소속으로 20경기(19선발 1교체) 9골로 리그 득점 3위를 기록하고 있는 황의조를 뽑는 게 맞다는 반론은 비난에 묻혀 제기되지 못했다.

결국 황의조는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조별리그 1차전 바레인전 3골, 2차전 말레이시아전 1골, 16강 이란전 1골, 8강 우즈베키스탄전 3골 등 모두 8골을 터뜨리며 2위 그룹(4골)을 따돌리고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11골을 터뜨리며 아시안게임 단일 대회 역대 최다 골을 기록한 황선홍의 기록까지 노리고 있다.

본격적인 전성기를 열고 있는 황의조는 기록만이 아니라 플레이스타일도 선수 시절 황선홍을 닮았다. 키 183㎝ 몸무게 80㎏의 황선홍은 머리와 발 등 몸의 어떤 부분을 쓰더라도 어려운 자세에서 슈팅을 때릴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전술 이해도와 패싱력까지 훌륭했다. 공이 없을 때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도 탁월했고, 최전방에서 수비수 2~3명을 끌고 다니면서 등지고 공을 받아 양쪽으로 파고들어 오는 윙어에게 패스하거나 스스로 슈팅을 창출해내는 능력은 황선홍을 따라올 선수가 국내에 없었다. 부상만 아니라면 늘 국가대표팀 주전 공격수는 황선홍 차지였던 이유다. 이 때문에 황선홍은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타깃형 스트라이커로 꼽힌다.

황의조는 이번 대회에서 내내 17개의 슈팅으로 8골이나 기록하는 뛰어난 골 결정력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축구 역사상 한 대회에서 이렇게 순도 높은 골을, 그것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터뜨려 주는 선수가 없었다는 점에서 우선 황의조의 이번 대회 활약은 역대급으로 꼽힌다.

하지만 애초 국가대표팀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을 뿐, 축구 팬들 사이에선 황의조가 페널티 에어리어 어느 위치에서든 또 어떤 자세에서든 강력한 슈팅을 터뜨릴 수 있는 선수로 유명했다. 이 때문에 이번 더욱 놀라운 건 이번 대회에서 보여주는 황의조의 움직임이다. 황의조는 이번 대회에서 앞서 말한 우즈베키스탄전 페널티킥 유도에서 볼 수 있듯, 수비수를 등지는 움직임과 함께 공간을 창출해내는 능력, 전방부터 상대 공격을 압박하는 활발한 운동량까지 보여주면서 원톱 스트라이커로서 갖춰야 할 모든 능력을 꽃피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 황의조가 ‘포스트 황선홍’을 증명하기 위해 남은 과제는 23살 이하 선수들과 경기하는 아시안게임 목표인 우승을 넘어서 아시아 밖의 국가대표 A팀 선수들과의 경기에서도 이번 대회와 같은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느냐다. 마침 황의조는 27일 발표된 파울루 벤투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의 1차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9월7일 코스타리카, 11일 칠레와의 평가전을 치를 예정이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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