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현지 시각)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경기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정정용 감독이 그라운드를 돌며 성원해 준 관중석의 한국 응원단에 박수를 치고 있다. 2019.6.16 연합뉴스
“한계에 도전하겠다.”
지난 4월22일 경기도 파주 축구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국내 최종 소집훈련이 시작되던 날 정정용(50) 감독은 “2년 전 (아시아지역) 예선부터 선수들과 함께 즐거운 일, 힘든 일을 모두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며 이렇게 출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20살 이하 대표팀을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곳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결승전 패배 뒤 “우리 선수들은 정말 잘 싸웠다. 감독이 부족했다”며 끝까지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한국 20살 이하 축구대표팀의 돌풍은 비록 정상 일보 직전에서 멈췄지만 정정용 감독이 보여준 변화무쌍한 작전과 용병술, 자율적 리더십과 수평적 소통은 국민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정 감독은 축구계 비주류다. 대구에서 태어나 청구중·고-경일대를 거쳐 1992년 실업축구 이랜드 푸마의 창단 멤버로 참가해 6년 동안 뛰었다. 그나마 28살의 이른 나이에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일찍 접었다.
그는 은퇴 뒤 유소년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한국 축구의 미래를 설계했다. 용인 태성중 감독을 시작으로 14살 이하 대표팀, 2011년 17살 이하, 2013년 23살 이하 대표팀 코치를 지냈고, 2016년 20살 이하, 2017년 23살 이하 감독대행도 거쳤다. 유소년 축구 시스템의 근간이 된 ‘골든 에이지’ 프로그램도 그의 손에서 다듬어졌다.
20살 이하 대표팀 감독대행 시절엔 2016 수원 컨티넨탈컵에서 백승호와 이승우를 제대로 활용하며 이란, 잉글랜드, 나이지리아를 잇따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2년 전 한국에서 열린 20살 이하 월드컵 대표팀 사령탑은 신태용 감독에게 밀렸다.
정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다. 이랜드 현역 시절에도 팀의 허락을 받아 명지대 대학원에 다녔고, 훗날 한양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도 이수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자율 속의 규율’을 강조한다. 대표팀 소집 기간에도 선수들에게 휴대전화 사용 등 자유 시간을 존중해줬다. 가벼운 숙소 밖 외출은 오히려 권할 정도였다.
정 감독은 특히 “유소년·청소년 선수들에게는 지시가 아니라 이해를 시켜야 한다”는 지도 철학을 가졌다. 그가 지난해 19살 이하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아시아지역 예선에 출전했을 때 선수들에게 나눠줬던 ‘전술노트’는 그의 이런 철학이 잘 녹아 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도 선수들이 다양한 포메이션과 세트피스(코너킥, 프리킥) 상황의 콤비플레이를 숙지하도록 두툼한 노트 한권씩을 나눠줬다. 미드필더 고재현(대구FC)은 “마법의 전술노트였다. 그 노트를 매일 시간 날 때마다 읽었다”고 했다.
정 감독은 이번 대회 필드플레이어 가운데 4강전까지 유일하게 한번도 출장하지 못한 이규혁(제주 유나이티드)을 결승전 막판 10분 전 투입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그는 16일 결승전이 끝난 뒤 “선수들이 발전하는 모습에 저도 사실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며 “우리 선수들이 앞으로 한국 축구에서 5년, 10년 안에 자기 포지션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이어 그는 “기회가 되면 좀 더 큰 무대를 접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충분히 기대되는 선수들”이라고 덧붙였다. 정 감독이 한국 축구에 던진 희망과 울림의 메시지가 의미심장하다.
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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