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원 감독이 지난 1일 일본 사이타마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농구 조별리그 A조 3차전 세르비아와 경기에서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이타마/연합뉴스
1번.
여자농구의 ‘영원한 포인트 가드’인 그의 선수 시절 포지션 번호다. 지도자로서도 그는 최근 1번 상징을 달았다. 한국 구기종목 사상 여름올림픽(2020 도쿄) 최초의 여성 사령탑으로 농구팀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3패 조별리그 탈락. 하지만 전문가 집단의 평가는 달랐다. 지난 4일 대한민국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는 “너무 준비가 잘 된 팀이었다”라며 높은 점수를 줬다. 보기엔 서글서글하지만 속으로 깐깐한 전주원(48) 감독의 승부사 면모를 평가한 것이다.
지난 13일 <한겨레TV>의 ‘스포츠왓수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전주원 올림픽 여자농구대표팀 감독은 “팬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예선 A조 3경기 스페인(69-73), 캐나다(53-74), 세르비아전(61-65)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고개숙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스페인과 캐나다는 세계 톱5 팀이고 세르비아(8위)도 한국(19위)보다 랭킹에서 앞선다. 올림픽 예비 엔트리 24명을 꾸리기도 힘들었고, 그 가운데 12명을 뽑아야 했던 게 한국팀이었다.
전 감독도 “고교 팀이나 선수층만 봐도 외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자원이 한정되다 보니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다닌다”고 어려움을 설명했다.
사실 이번 대표팀 가운데 올림픽 경험이 있는 선수는 맏언니 김정은(34·우리은행) 한 명뿐이었다. 대회에서는 30대의 김단비(31·신한은행), 박혜진(31·우리은행)과 허리의 강이슬(27·KB), 후배 그룹인 박지수(23·KB), 박지현(21·우리은행) 등 5명이 주로 뛰었다. 전 감독은 “2008년 이래 13년 만의 올림픽 진출이어서 공백이 길었다. 올림픽처럼 큰 무대에 자주 나갈 수 있도록 지역예선부터 준비를 잘 해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실제 신예 선수들은 득점판 상황도 잘 볼 수 없을 정도로 긴장했다. 하지만 1차전 스페인전 뒤 자신감을 얻었다. 전 감독은 “모두가 하나가 돼 뛰었다. 최강 팀이라도 해볼 수 있다는 동기부여를 얻으면서 분위기가 살아났다”고 말했다. 캐나다전에서는 뒷심부족으로 무너졌지만, 세르비아전에서는 잠재력을 확인했다.
전주원 올림픽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이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상수역 근처의 ‘인아우트’(INOUTE) 농구장에서 슈팅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엔 전 감독의 신뢰의 용병술도 한 몫했다. 전 감독은 “소집 초기부터 기술과 전술, 소통보다는 신뢰를 중시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선수 시절 룸메이트인 이미선 코치가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아쉬움도 남는다. 그는 선수시절 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97년 아시아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었고,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는 4강의 주역이었다. 2002년 세계챔피언십에서는 4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는 과거 한 수 아래였던 일본이 준우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전 감독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선수층을 확대해야 한다. 학교에서 엘리트 선수가 아니더라도 농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많이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단기적인 대표팀 강화 방안과 관련해서는, “박지수와 함께 골밑에서 버텨줄 수 있는 센터가 한 명 더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박지수도 더 발전하면, 대표팀의 전력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에서 내려와 우리은행 코치로 돌아갔다. 소속팀이 있어 전임 감독제의 대표팀을 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이달 중으로 차기 여자농구대표팀 사령탑을 확정할 예정이다.
위성우 감독을 보필해 여자프로농구 시즌 준비에 들어간 그는 “팬이 많이 모이면 농구 관심도 커지고 농구를 하고자 하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다. 여자농구를 더 재미있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잘 내세우지도 않는 성격이지만 필요할 땐 두 팔 걷어붙이는 그의 1번 성격이 다시 발동했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