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이 지난 5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제공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충청권 세계대학경기대회(U대회) 조직위 구성을 둘러싸고 강한 집착을 드러냈다. 지난 5일 충북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 구성 관련 대한체육회 연석회의’가 무대다. 17개 시·도체육회장, 체육회 이사, 국가대표 지도자 등이 여럿 참여한 이날 회의에서 이 회장은 참가자들의 지지 발언을 통해 자신의 U대회 조직위 구상 방안을 더 강화했다. 회장이 지명하면 발언하는 식으로 3시간 가까이 이뤄진 토론에서 회장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발언자들이 공모로 선임된 윤강로 사무총장을 심하게 몰아붙일 때는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 공모 사무총장은 안된다. 왜?
이기흥 회장은 이날 U대회 조직위 구성에 자신이 원하는 특정 인물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대회 유치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세계대학스포츠연맹(FISU)에 비딩할 때 뒷 이야기가 많다. 2년 전부터 FISU에서 유치위원회 사무총장을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써달라고 했다. 레터까지 와 있다. 그쪽 의견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대회를 개최하고 6천억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충청권 4개 시·도 지자체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이 회장과 유치위 사무총장, FISU 삼자가 각별한 관계이고, 유치위 사무총장의 전문성을 조직위에서도 활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자체와 문체부의 반대를 무릎쓰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태도가 집요하다. 이 회장은 자신이 미는 인물이 조직위 사무총장이 아니라면 조직위 대외협력 전문위원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날 회의에서는 공모로 뽑힌 윤강로 사무총장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다. 발언권을 얻은 이들은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을 향해 “체육인에 먹칠을 했다” “반드시 윤리위에 올리거나 법적인 조처를 해야한다” “무너진 자존심을 지키자” “참담하다”고 성토했다. 윤강로 사무총장의 자격이나 능력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실에 청원을 넣은 것 자체를 비판했다. 이 회장은 “윤 모씨에 대해 오늘부로 당장 형사소추하겠다”고 맞장구쳤다. 형사소추의 뜻을 묻자, 그는 “소를 제기하겠다”는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형사소추는 검찰만이 할 수 있다.
■승인권자인 문체부 장관마저 부정
이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5월3일 충청권 4개 시·도 수장과 대한체육회 회장, 문체부 2차관이 모여 논의한 U대회 조직위 구성안이 무조건 관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합의안을 보면, 상근 부위원장이 사무총장을 겸직하고 대외협력 전문위원을 두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자인 문체부 장관은 이를 거부했다. 문체부는 “당시 삼자합의는 비공식 간담회다. 문체부가 이를 수용하겠다고 밝히 바 없다”고 강조했다. 합당한 이유없이 윤강로 사무총장을 면직한다면 국가기관의 신뢰는 떨어지고, 법적 다툼에서도 유리하지 않다.
이에 이기흥 회장은 “장관이 다 합니까? 체육의 최고책임자는 차관이다. 이 정도면 실무진급 사안”이라며 격앙했다. U대회 조직위 구성의 최종 승인권이 문체부 장관한테 있고, 문체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고 있지만 그의 발언에 거침이 없다. 이 회장은 “왜 (조직위 구성 문제가) 이렇게 됐는지 장관 항의 방문단을 만들자. 그게 안되면 서명이라도 받겠다”고 압박했다.
■신뢰성 없는 말 바꾸기
애초 이날 회의는 U대회 개최단체(the Host Partners) 탈퇴를 포함한 현안 논의가 포함돼 있었다. 체육회 내부 문건에는 ‘회장님 지시사항’으로 이 부분이 강조돼 있었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서는 거론되지 않았다. 기자들에게 배포한 자료집을 보면, 밑줄친 문장까지 체육회 내부 문건과 같았는데 회장님 지시사항 부분은 빠졌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애초부터 “개최단체 탈퇴를 얘기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회장님 지시사항 아니었냐고 묻자, “말이 잘못 전달된 것이다”라고 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반발로 U대회 조직위 구성 마감은 애초 5월초에서 5월말, 이제는 6월말까지로 연기됐다. 충청권 4개 시·도의 속앓이는 깊어가고 있다. 최종 결정권자인 문체부도 엉거주춤하고 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비해 비중이 떨어지는 대회임에도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자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9일 예정된 충청권 4개 시·도와 문체부, 대한체육회의 논의에서 활로가 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