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막힌다.’
그를 만난 상대방은 이런 심정일지 모른다. 화려하지 않지만 ‘큰 벽’이 세워진 것 같은 느낌. 상대의 템포와 리듬을 휘감아 질식시키는 최성원식 당구가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 선수 최초의 세계3쿠션 랭킹 1위 등 빛나는 경력의 최성원(휴온스)이 14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로당구 PBA 6차 투어 ‘NH농협카드 PBA 챔피언십’ 8강전에서 ‘베트남 특급’ 응우옌 꾸옥 응우옌(하나카드)을 3-1로 물리치고 4강에 진출했다.
직전 대회에서 프로 첫 우승컵을 거머쥔 최성원은 두 대회 연속 우승의 꿈을 부풀리게 됐다. 시즌 데뷔 초반 고전했지만, 직전 대회 7연승과 이번 대회 5연승까지 12연승을 질주했다. 2승을 추가한다면 두 번째 정상에 오른다.
이날 밤 열린 최성원과 응우옌의 경기는 순간 유튜브 접속자가 3만1천명에 이를 정도로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역전승을 거둔 최성원의 애버리지(1.767)는 준수했고, 하이런 8점을 기록했다. 반면 첫 세트에 2점대의 높은 애버리지로 7이닝 만에 세트를 잡은 응우옌의 최종 애버리지는 1.069로 극도로 낮았다.
1세트 하이런 7개를 치며 기세를 올렸던 응우옌의 리듬이 2~4세트 곤두박질친 이유는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최성원 특유의 판을 장악하는 능력으로 본다.
남도열 피비에이 고문은 “최성원은 원래 잘 치는 선수다. 침착하고 게임운영을 잘한다. 철저하고 냉정하게 공격과 수비를 병행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대방은 힘들어한다. 최성원의 페이스에 말리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최성원의 당구 스타일은 화려하지 않다. 경쾌하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빨리 치지 않으면서 천천히 자기 스타일로 표정의 변화도 없이 일관되게 경기를 풀어나간다.
팬들은 현란한 타격을 좋아하지만, 전문가들은 상대의 숨통을 조이는 듯한 압박감을 주면서, 다음 공의 포지션까지 염두에 두는 끈끈한 플레이를 더 높이 평가한다.
남도열 고문은 “자기 공격할 것은 다 하면서 경우의 수로 수비를 생각한다. 외국 선수로는 마르코 자네티가 그런 스타일이다. 팬들은 공격당구를 좋아하겠지만, 전문가들은 수준 높은 당구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실제 최성원은 이날 뒤집기가 시작된 2세트를 11이닝(15-5)째에 끝내는 등 조금씩 응우옌을 포위해 들어갔다. 3세트(15-8)도 9이닝까지 끌고가면서 상대의 템포를 빼앗았다.
마지막 4세트에는 하이런 8점 등 최고의 공격력으로 4이닝 만에 15점(애버리지 3.750)에 도달했고, 팬들도 승리하는 그의 당구가 보여준 매력을 알게 됐다.
최성원은 4강전에서 프로 원년에 우승했던 최원준과 대결한다. 누구를 만나든 자기만의 플레이로 상대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최성원과 야전에서 단련된 실전형 최원준의 싸움은 접전을 예고한다.
최성원의 질식당구가 이어질지, 아니면 하이런 전문 최원준의 집중타가 몰아칠지 팬들의 시선이 쏠려 있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