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상 선임기자가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도락산 빙벽을 오르고 있다. 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나도 해볼까] 빙벽 등반
도끼 찍어가며 수직에 매달린 순간 ‘희열’
“발로 오르라” 충고에도 온팔에 힘 들어가
도끼 찍어가며 수직에 매달린 순간 ‘희열’
“발로 오르라” 충고에도 온팔에 힘 들어가
중력을 이기지 못해 절벽 아래로 떨어지던 폭포수도 동장군에겐 어쩔 수가 없다. 수직의 공간에 갇혀버린 폭포는 자신의 색깔을 잃고 하얗게 얼음벽이 되고 말았다. 그 멋진 장관에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속내를, 빙벽 등반이 주는 짜릿한 모험을 즐겨보지 못한 이는 알 도리가 없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얼어붙는다는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도락산 서쪽 기슭 가래비빙벽장을 찾았다. ■ 엑스(X)바디 “일명 얼음도끼로 불리는 아이스바일(Eisbeil)을 치켜든 두 팔의 위치는 양어깨 너비 안에, 두 발은 양어깨보다 넓게 서야 자세가 안정됩니다.” 빙벽 등반의 가장 기초적인 자세인 엑스바디를 설명하는 강사는 2008년 인도 가르왈 히말라야에 있는 메루피크(6660m) 북벽을 세계 최초로 오른 김세준(40·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 대장이다. 뒤에서 보니 그 모습이 꼭 엑스(X)자를 그리고 있다. 얼음을 찍을 땐 어깨가 아니라 손목 스냅으로, 빙벽화에 장착한 아이젠으로 얼음을 찰 때 역시 다리 전체가 아닌 무릎의 회전력만 이용해 가볍게 해야 한다. 2~3m짜리 얼음벽에서 연습을 해보지만 조금만 올라도 높이의 공포감이 엄습한다. 아니, 높이가 주는 무서움이라기보다는 빙벽에 불과 1~2㎝밖에 박히지 않은 아이젠과 아이스바일이 혹여 빠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더 강한 공포감을 만들어낸다. ■ 엔(N)바디 그렇게 깊지 않게 얼음에 박혔는데도 몸은 빙벽에 안전하게 버티고 있다. “모든 등반이 그렇듯이 빙벽 역시 발과 다리로 오르는 겁니다. 팔로 잡아당기듯 하면 제아무리 장사라 해도 오를수록 지치게 마련입니다.” 김세준 대장은 이어 국내에서 개발됐다는 엔(N)바디 자세를 설명했다. 먼저 꽂은 아이스바일의 손이 오른쪽이면 그 수직 아래에 왼발로 자세를 잡는 식이다. 그러면 자연히 오른발이 바깥쪽으로 나가며 엔(N)자 모양이 나온다. “자세가 역동적으로 나오는 걸 보니 속도를 내는 등반에 유리하겠네요?” 빙벽 취재를 했던 경험을 살려 아는 체를 하자 김 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김 대장이 15m 빙벽 위 고정물에 확보한 로프를 안전벨트에 묶고 등반에 나섰다. 강사의 가르침을 원칙대로 해보지만 쉽지 않다. 다만 앞서 동호인들이 비교적 쉽게 오르는 모습을 보니 마음속엔 ‘까짓것 못할 것도 없지’라는 묘한 모험심이 발동했다. ■ 막바디 고도감이 느껴지지 않는 5~6m까지는 경사도도 비교적 완만해 순식간에 올랐다. 엑스바디와 엔바디도 자유자재로 구사가 가능하다. 그런데 오르면 오를수록 자세가 나오질 않는다. 밑에서 본 빙벽이 막상 붙어보니 그 난이도가 보통이 아니다. 오버행(지면과의 각도 90도 이상)으로 느껴질 정도의 빙벽이 머리 위로 딱 버티고 있으니 하체로 버티기보단 어느새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이미 마음속으론 다리보다는 팔이 더 믿음이 가는 모양이다. 불안한 마음에 아이스바일을 더 깊게 힘차게 박는다. 그 견고함만이 나의 추락을 막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거였다. 다음 동작을 위해 빼려니 잘 빠지질 않는다. 아래위로, 좌우로 흔들다 보니 팔은 지치고 이마에 구슬땀이 맺힌다. 김 대장이 앞서 “두 가지의 자세가 기본이지만 빙벽의 형태와 모양에 따라 전혀 다른 자세가 나오기 마련”이라며 “그래서 나오는 기묘한 자세가 바로 막바디”라고 설명했다. 나는 중간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얼음벽에 막바디를 그리며 오르고 있었다. “완료!” 구호를 외치고 로프에 몸을 맡긴 채 하강하자 로프를 확보해주던 한 동호인이 “힘이 좋다”고 칭찬을 했다. “중간부터는 팔로 했어요”라고 대답한 뒤 두 주먹을 쥐어보니 힘을 쓸 수가 없다. 이틀을 자고 나니 겨드랑이에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직벽에 매달린 나를 생각해보니 즐거움이 몰려온다. 모처럼 모험심을 자극한 도전이 기분전환엔 최고였다. “수직의 공간에서 자유를 찾는 스포츠이지요.” 빙벽화를 빌려준 한 동호인의 말이다. 글 권오상 기자 kos@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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