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 비밀은]
“매일 3만~4만m 토할듯한 고통 참아 큰일 해내”
쇼트트랙처럼 코너링서 올린 속도 계속 유지 ‘비법’
“매일 3만~4만m 토할듯한 고통 참아 큰일 해내”
쇼트트랙처럼 코너링서 올린 속도 계속 유지 ‘비법’
“하루 3만~4만m를 훈련했다. 강훈련에 토할 것 같은 고통을 참더니 큰일을 해냈다.”
이승훈(22·한체대)의 2010 밴쿠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 금메달 소식을 들은 이준수 한체대 빙상부 코치의 말이다. 이 코치는 지난해 4월 쇼트트랙 대표팀 선발전에서 떨어진 이승훈이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 전환을 했을 때 조언한 지도자다. 이후 10월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선발 때까지 6개월 동안 한체대에서 이승훈을 가르쳤다. 이 코치는 “최고 속도를 낸 뒤 그것을 유지하는 심폐지구력이 뛰어난 선수”라며 “밴쿠버에 가기 전에도 ‘5000m보다는 1만m가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경기 뒤 인터뷰에서 금메달 비결을 묻자, 이승훈은 “강한 훈련이오”라며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 타고난 지구력 오용석 단국대 빙상코치는 “막판에 네덜란드 선수를 한 바퀴 앞서 달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감당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스케이팅의 마라톤에서 최강국 선수를 제치고 나가는 힘에 경악했다는 것이다. 김관규 대표팀 감독은 “지구력을 타고난 선수다. 대표 선발전에서 경쟁자보다 한 수 위라고 봤지만 월드컵 대회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기하는 모습을 보며 (기존 한국 선수보다) 몇 단계는 위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승훈은 이날 매 바퀴 꾸준한 랩타임을 보였다. 초반 한 바퀴 30초대이던 랩타임이 5200m 구간에서 31초대로 느려졌지만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800m에서는 오히려 막판 스퍼트로 랩타임을 30초대로 끊었다. 타고난 지구력이 바탕이 된 것이다.
■ 쇼트트랙 훈련의 힘 서울 리라초등학교 시절 스피드스케이팅을 했던 이승훈은 중학교 때 쇼트트랙으로 종목을 바꿨다. 이후 8년 동안의 쇼트트랙 훈련으로 다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에 견줘 코너에서의 비교우위를 갖게 됐다. 주변의 우려에도 올림픽을 앞두고 홀로 쇼트트랙 훈련에 매달렸던 이승훈은 “쇼트트랙이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김 감독도 “코너링에서 효과를 냈다”며 “앞으로 외국 선수들도 쇼트트랙 훈련을 할 것 같다”고 웃었다.
다른 선수가 코너에서 속도를 유지하고 직선주로에서 속도를 올린다면, 이승훈은 코너를 돌며 속도를 올린 것을 바탕으로 직선주로를 타는 주법을 구사한다. 400m 4바퀴를 전력으로 달리고 휴식하는 세트 훈련을 반복하면서 스피드도 끌어올렸다. 5000m에서는 마지막 3바퀴, 1만m에서는 마지막 5바퀴에서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페이스를 조절하다 막판에 힘을 쥐어짜는 훈련에도 공을 들였다. 김 감독은 “승훈이의 금메달은 타고난 지구력, 스케이팅 자세가 결합돼 랩타임을 꾸준히 유지한 게 컸다”고 했다.
■ 아시아의 한계는 무너졌다 이준수 코치는 “한국이 장거리에서 메달 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영역으로 생각돼왔다”고 했다. 비록 실격했지만 185㎝의 키로 질주한 스벤 크라머(네덜란드) 등 긴 다리를 가진 유럽 선수들과 달리 177㎝의 이승훈은 빙판을 지칠 때 더 많이 킥을 해야 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외국 선수들과의 체격적 격차는 상당히 좁혀지고 있다. 여기에 체계적 훈련과 집중 투자가 체격적 불리함을 극복하는 결실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이승훈은 경기 뒤 “체격이 큰 선수는 체력 소모가 많다. 대신 나는 몸이 작아 체력 소모는 많지 않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관규 대표팀 감독도 “이승훈을 계기로 많은 선수들이 장거리에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밴쿠버/이승준 기자, 김창금 기자
gamja@hani.co.kr
이승훈이 유치원 롤러대회에서 딴 메달을 바라보는 모습. 연합뉴스.(왼쪽) 이승훈이 쇼트트랙 선수 시절 미국의 아폴로 안토 오노와 레이스를 펼치는 모습. 이승훈 미니홈피
04
gamj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