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
김동훈 기자의 직선타구 / <박봉곤 가출사건>. 한때 가수를 꿈꿨던 소녀 같은 감수성을 가진 주부가 가출해 밤무대 가수로 새 인생을 시작하고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뜬다는 영화다. 심혜진·안성기씨 주연의 이 영화는 1996년 개봉해 그해 17만명의 관객으로 흥행 순위 5위를 기록했다. 요즘 야구장에도 ‘박봉곤’이 있다. 엘지 선발 3인방 박명환(33)과 봉중근(30), 에드가 곤잘레스(27)를 ‘박봉곤’이라고 부른다. 시즌 전 엘지는 이들을 1·2·3선발로 기대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암담했다. 박명환은 시즌 개막 뒤 한동안 ‘개점휴업’했고, 봉중근은 한때 2군에 내려갔다 왔다. 곤잘레스는 지난 2일 잠실 넥센전에서 11점을 내주며 난타당했다. 셋 다 마치 가출한 주부 박봉곤처럼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박봉곤’이 확 달라졌다. 박명환은 지난 8일 사직 롯데전에서 무려 972일 만에 승리투수가 됐다. 지난 14일 잠실 삼성전에서도 6이닝 4실점으로 비록 승리투수가 되진 못했지만 팀의 5-4 승리에 주춧돌을 놨다. 이날 이겼다면 통산 22번째 100승 투수가 될 수 있었던 그는 팀의 투수 조장답게 “100승보다 팀 승리가 소중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2패만을 기록했던 봉중근은 15일 잠실 삼성전에서 시즌 첫 승을 따낸 뒤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내의 인터넷 미니홈피 댓글 파동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는 이날 6⅔이닝 무실점의 완벽한 투구로 박종훈 감독에게 ‘속죄’했다. 박 감독은 “중근이는 정말 좋은 투수”라며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심정으로 2군에 보낸 것”이라고 했다. 곤잘레스는 시즌 개막을 앞두고 면도칼에 손가락 끝을 베이는 바람에 며칠 동안 공을 놓았다. 이 탓에 시즌 초반 투구 밸런스가 무너졌다. 그러나 지난 13일 잠실 삼성전에서 7회까지 2자책점만 내주며 잘 던졌다. 20일 목동 넥센전에서도 갑작스런 허벅지 통증으로 강판됐지만 2이닝 무실점으로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엘지 박봉곤은 공교롭게 이번주 넥센과의 목동 3연전에 선발투수로 나란히 출격중이다. 박종훈 감독은 이들 셋의 공통점을 “열정을 가진 투수”라고 설명했다. 비록 셋 다 시즌 초반 삐걱댔지만 박 감독은 ‘박봉곤’을 다독이고 포용하고 가슴으로 안았다. 마치 영화 <박봉곤 가출사건>의 마지막 장면에서 엑스(X·안성기 분)가 박봉곤(심혜진 분)을 향해 “나는 당신을 가슴으로 안을 것입니다”라고 외쳤듯이.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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