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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2-07-27 19:26수정 2012-07-27 22:10

기고/올림픽 정신과 상상력
쿠베르탱 남작이 애초부터 ‘인류의 화합’ 같은 희멀건 명분으로 올림픽을 구상한 것은 아니었다. 보불전쟁은 프랑스의 대패로 끝났고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의 심장 베르사유 궁전에서 빌헬름 1세의 독일 제국 대관식을 치렀다. 프랑스 청년들은 비스마르크의 군대에 비하여 오합지졸이었다. 쿠베르탱은 참혹하게 구겨진 프랑스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하여 올림픽을 구상했다. 이미 혁명의 시대인 1790년대에 ‘공화국 올림픽’을 개최했던 기억이 있었다.

올림픽은 그 태생부터 철저히 근대적 시민국가의 격전장이었다. 예전의 지배자들은 검투사를 원형 경기장에 들여보내거나 테니스 하인을 시켜서 그것을 관전하는 데 만족했다. 그러나 근대의 시민들은 달랐다. 그들은 세습 권력도 없고 봉토도 없었다. 그들은 직접 익힌 학문으로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거리에서 권력을 획득했다. 1851년, 1회 만국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영국은 산업혁명의 상징이 되는 강철과 유리의 수정궁에서 15년 뒤에 최초의 영국 국내 올림픽을 치렀다. 스웨덴과 덴마크 사람들은 과학적인 인체 단련을 위하여 맨손체조를 창안했다. 그들은 몸으로 19세기를 쟁취했다.

그 집합적 열기가 비범한 상상력으로 빚어진 것이 올림픽이다. 1896년, 경쟁자들이 서서 출발할 때 잔뜩 웅크렸다가 탄환처럼 튕겨나간 ‘크라우칭 스타트’의 토머스 버크. 1936년, 다른 선수들이 팔을 뻗어 턴할 때 돌고래처럼 몸을 뒤집으며 발로 벽을 차며 앞서나간 ‘플립 턴’의 아돌프 키퍼. 1968년, 폐곡선을 그으며 달려와 순식간에 등으로 크로스바를 뛰어넘었던 ‘포스베리 스타일’의 딕 포스베리 같은 상상력이 올림픽을 이끌어왔다. 올해도 틀림없이 누군가 비범한 상상력으로 아무도 밟지 않은 경지에 이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최초의 여성 선수 스타마타 레비티(1896년)나 최초의 흑인 선수 렌 타우(1904년)를 비롯하여 1936년의 손기정, 1968년 토미 스미스, 2000년의 캐시 프리먼 등은 인종 갈등이나 약소국의 비애를 온몸으로 널리 알렸다. 이번 대회에도 유럽의 소수자와 중동의 여성과 아프리카의 가난한 선수들이 단지 뛰고 달리는 것만으로 그들의 존재적 가치를 증명할 것이다.

<트레인스포팅>으로 유명한 대니 보일 감독은 개막식을 통하여 올림픽의 이 양면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이 개막식을 제대로 중계하려면 역사학자, 영문학자, 경제학자, 클래식 애호가, 대중음악평론가, 판타지 문학 마니아, 설치미술 큐레이터 등이 필요했다. 셰익스피어와 아서 왕의 전설과 비틀스의 노래와 해리 포터의 판타지가 펼쳐진 장관 아니던가.

중요한 지점은 2부 ‘악마의 맷돌’이다. 산업 혁명의 비극을 묘사한 윌리엄 블레이크의 경구다. 청년 시절 블레이크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던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은 지금도 그 맷돌이 돌고 있다고 했다. 인간, 자연, 사회 등을 형체도 없이 짓이겨 모조리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맹목의 시장주의라는 ‘맷돌’ 말이다. 대니 보일도 이 점을 끌어안았다. 개막식에 참가했던 어느 영국인은 “산업혁명 당시의 분노를 표현”했다고 말했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영국의 ‘경이로움’과 ‘괴로움’이 함께 묘사될 것”이라고 썼다. 4년 전, 베이징올림픽의 개막식이 ‘중화주의’의 과도한 표현이었다면 대니 보일은 오늘의 ‘영국 병’도 숨기지 않는다. 우리처럼 그 무슨 산업화로 국가 발전이 되었다는 식의 저열한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하여 마침내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인류의 제전’이니 ‘화합의 한마당’이니 하는 소리는 싱거울 따름이고, 그 정치적·문화적 맥락에는 유심히 판별해야 할 난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선수들이 보여줄 비범한 상상력만큼은 삼복염천의 지루한 일상을 말끔히 씻어낼 만한 가치가 있다. 스타트라인에 웅크리고 있던 선수들은 먹잇감을 발견한 재규어처럼 달려나간다. 순간, 우리의 진부한 일상도 격하게 흔들린다. 온갖 규칙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한 뼘이라도 더 도약하기 위하여 허공에서 온몸을 뒤튼다. 그들은 엄격한 규칙 안에서, 규칙을 위반하는 게 아니라, 규칙이 일일이 지배할 수 없는 한 뼘의 자유로운 영토를 찾아 도약한다. 그 순간을 영접하기 위하여 우리는 텔레비전 앞에서 경건하게 밤잠을 쫓는다. 지극히 인간적인 시간! 기껏해야 보름 남짓 아닌가.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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