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알파인스키 대표팀 선수들이 31일 오전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스키장 슬로프에서 소치올림픽 대비 훈련을 하고 있다. 평창/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알파인스키 대표팀 훈련장 가보니
올림픽 개막 한달여 앞두고
선수들 10명 쉴새 없이 연습
“자연을 이겨야 하는 종목 매력”
“성적도 성적이지만 그냥 즐거워”
입상 어려워 지원 열악하지만
‘겨울스포츠의 꽃’ 자부심 가득
국내 최강 정동현, 10위권 목표
올림픽 개막 한달여 앞두고
선수들 10명 쉴새 없이 연습
“자연을 이겨야 하는 종목 매력”
“성적도 성적이지만 그냥 즐거워”
입상 어려워 지원 열악하지만
‘겨울스포츠의 꽃’ 자부심 가득
국내 최강 정동현, 10위권 목표
12월31일 이른 아침. 강원도 평창의 알펜시아리조트 스키장을 배경으로 대표팀 선수들의 입김이 불처럼 쏟아졌다. 한 해의 마지막 설상 훈련. 켜켜이 옷을 입었어도 냉기가 품 안을 파고든다. 코가 얼고 손끝과 발끝의 감각이 무뎌진다. 하지만 선수들은 추워할 틈이 없다. 영하의 비탈진 눈밭은 꽃을 피우기 위한 비옥한 토양. 알파인스키 대표팀 선수들은 2014 소치겨울올림픽에서 ‘정상의 꽃’을 피우려는 듯 코스를 달렸다.
알파인스키 대표팀 10명은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대회를 휩쓴 한국 최고의 선수들. 그러나 올림픽 메달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관심도 지원도 부족하다. 대표팀엔 장비 전문가도 없다. 선수들은 휴식시간을 이용해 직접 매일 두시간가량 자기 스키를 손질해야 한다. 전지훈련을 가지 못해 설상 훈련이 부족하다. 아무리 지상에서 체력훈련과 기술훈련을 해도 눈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다. 대표팀 간판 정동현(25·한국체대)은 “봄, 여름, 가을 비시즌에는 설상 훈련을 별로 못 하기 때문에 시즌이 시작하면 완전히 처음부터 감을 잡아야 한다. 어떤 때는 그 감을 찾다가 그냥 시즌이 끝나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허승욱 대한스키협회 알파인스키 위원장은 “한국 선수들과 유럽 선수들의 가장 큰 차이는 눈에 대한 감각이다. 한국 선수들은 일반 이용자들이 타는 코스 한켠에서 훈련을 하는데 이는 국제대회 경기용 슬로프와 설질이 다르다”고 했다. 최용희 대표팀 감독은 “기자들은 항상 몇위를 예상하냐고 질문한다. 그러나 매번 답하기 난감하다. 스키 손질하는 시간에 훈련은 물론이고 차라리 쉬기라도 하면 경기력 향상에 얼마나 보탬이 되겠나? 선수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스키 위에 올라 눈을 가르며 달리는 순간의 짜릿함 때문이다. 최광헌(23·한국체대)은 “스피드와 스릴이 마약과 같다”고 했고, 박제윤(20·상지대관령고)은 “성적도 성적이지만 무엇보다 즐겁다. 겨울을 기다리게 된다”며 웃었다. 대표팀 주장 김우성(28·하이원)은 “스키는 상대방을 이기는 게 아니라 눈과 자연을 상대하는 스포츠다. 경기장마다, 기문을 꽂을 때마다, 눈이 올 때마다 매번 달라지는 코스에서 출발하면 그 순간만큼은 나만의 시간이 된다”며 눈을 반짝였다. 막내 김소희(18·상지대관령고)는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스포츠의 꽃을 피겨라고 하는데, 세계적으로 봤을 때는 역시 알파인이죠!”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소치올림픽의 금메달 98개 중 절반인 49개가 스키 종목에서 나온다. 나머지 49개는 빙상, 봅슬레이 등 5개 종목이 나눠 갖는다. 알파인스키에는 남녀 각각 회전, 대회전, 슈퍼대회전, 활강, 복합 등 5개 세부 종목에서 10개가 걸려 있다. 한국은 이번 소치올림픽에 5명(남자 4, 여자 1)의 출전권을 확보했다. 최종 명단은 1월 중순 발표된다.
한국은 아직 세계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10위권대에 든 적도 없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 ‘전설’ 허승욱이 기록한 21위가 역대 최고 성적이다. 그래서 알파인스키 대표팀의 목표는 한 걸음 전진이다. 최용희 감독은 “소치에서 10위권대에 진입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번 소치행이 특별한 선수가 있다. 한국 스키의 1인자 정동현과 맏형 김우성이다. 한국 스키의 1인자이며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겨울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정동현에게도 그동안 올림픽 무대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정동현은 중학생이던 2005년에 2006 토리노올림픽 출전권을 자력으로 따내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학교 공부 때문에 대표팀 합숙훈련에 불참했다가 2년간 종합대회 출전 정지라는 징계를 받고 눈물을 흘렸다. 절치부심해 2010 밴쿠버올림픽에 다시 도전장을 냈지만 이번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대회 일주일 전 허벅지 부상을 당한 정동현은 근육 봉합수술을 받고 올림픽 출전을 강행했지만 완주하지 못했다. 그러나 밴쿠버 좌절 뒤 한국에서 유일하게 국제스키연맹(FIS) 포인트 랭킹 100위 안으로 진입(현재 88위)하며 실력을 끌어올린 정동현은 “올림픽은 누구나 꿈꾸는 꿈의 무대다. 소치에서 즐겁게 경험을 쌓고 4년 뒤 평창에서는 메달을 따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2011 아시안게임 동메달리스트이자 최근 포인트 랭킹을 다시 100위권대로 끌어올린 맏형 김우성은 이번 소치가 마지막 올림픽 무대일 가능성이 크다. 올림픽이 끝난 뒤 군대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상무에 스키팀이 생겼지만 이미 지원 연령(만 27살 이하)을 넘겼다. 김우성은 “2년간 군대에 갔다 오면 재기하기 힘들 것 같다. 그때는 후원이 다 끊겨 있을 거고, 실업팀도 별로 없는데다 당장의 성적이 없어서 들어가기도 힘들다. 과거 김형철 선수나 강민혁 선수도 한창나이에 군대에 들어가면서 다 은퇴를 했다”고 말했다. 김우성은 “마지막 올림픽이라 생각하고 내 기량을 마음껏 펼치고 싶다. 순위로 말하는 건 의미가 없다. 내가 그동안 훈련해온 것들을 실수 없이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평창/허승 기자 rais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