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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절벽 정상 코앞…두 팔 후들후들…온 몸 방전…

등록 2014-01-01 19:47수정 2014-01-02 10:37

지난 24일 경기도 양주시 도락산 가래비 빙벽장에서 <한겨레> 이길우 기자가 빙벽을 오르며 아이스바일로 얼음을 찍고 있다. 
이재용 서울시산악연맹 스포츠클라이밍 이사 제공
지난 24일 경기도 양주시 도락산 가래비 빙벽장에서 <한겨레> 이길우 기자가 빙벽을 오르며 아이스바일로 얼음을 찍고 있다. 이재용 서울시산악연맹 스포츠클라이밍 이사 제공
무모한 도전 / 빙벽 등반
스포츠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이다. 익숙한 시공간을 벗어나 성취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한겨레>는 일반 독자들이 쉽게 경험하기 힘든 종목이나 스포츠의 숨어 있는 영역을 찾아내 체험의 감흥을 전달한다. 독자의 아이디어와 의견도 전자우편(fkcool@hani.co.kr)으로 받아 적극 반영할 계획이다.

경기도 양주시 도락산 가래비 빙벽장에서  이길우 기자가 빙벽을 오르고 있다.  표정이 장난 아니다. 이재용 서울시산악연맹 스포츠클라이밍 이사 제공
경기도 양주시 도락산 가래비 빙벽장에서 이길우 기자가 빙벽을 오르고 있다. 표정이 장난 아니다. 이재용 서울시산악연맹 스포츠클라이밍 이사 제공

깊게 숨을 들이쉰다. 얼음의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 함께 코앞에 바짝 다가서 있다.

고개를 쳐드니 아찔한 수직 빙벽이다. 높이 20m의 수직 벽은 저 멀리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위압적으로 존재한다. 먼저 올라가는 등반자가 찍어낸 얼음 파편이 가끔씩 머리를 보호하는 헬멧 위로 쏟아진다. 허리에 매여 있는 구조용 로프가 추락을 막아주지만 수직 낙하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가시질 않는다.

지난달 24일 성탄절 이브, 전국에서 가장 먼저 얼어붙는다는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도락산 가래비빙벽장은 전국에서 찾아온 동호인들로 붐볐다. 빙벽 등반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경쟁적으로 절벽에 달라붙는다.

아이젠보다 발톱이 긴 크램폰을 채운 빙벽화를 신고 11자로 강하게 얼음바닥을 찍어야 한다. 얼음도끼로 불리는 아이스바일은 톱니가 있는 기역(ㄱ)자 모양의 쇠. 양손의 손목 스냅을 이용해 얼음을 찍어야 제구실을 한다. 빙벽에 오르기 전 빙벽화를 얼음에 수평으로 찍어 고정하는 요령과 아이스바일로 올라갈 방향의 얼음을 찍는 훈련을 한다. 대부분의 빙벽 등반 동호인들은 등산을 하다가 암벽에 빠져들고, 다시 빙벽의 매력에 심취하게 된다. 그러니 그들의 온몸 근육은 섬세하게 단련돼 있고, 중력에 저항해 수직 벽을 오르는 것에 대해 별다른 두려움이 없다.

높이 20m 수직빙벽에 파편 후두둑
퍽 퍽 얼음 찍어보지만 튕기기 일쑤

“팔이 아니라 허리와 다리 활용해야”
조언 듣고 다시 오르니 조금 편해져
완등 2m 앞두고 힘빠져 아쉬운 포기

암벽과 빙벽 등반 전문가인 노스페이스의 이재용 과장(서울시산악연맹 스포츠클라이밍 이사)이 빙벽 한쪽에서 기자에게 기초훈련을 시킨 뒤 빙벽 등반을 권유한다. 1차 시도다. 물론 스트레칭으로 온몸의 근육을 풀어준 상태였다.

조심스럽게 빙벽을 타기 시작했다. 우선 오른발 쪽 빙벽을 보고 크램폰을 고정할 곳을 찾았다. 공을 차듯 힘차게 빙벽을 찍어 본다. 느낌이 좋다. 이번엔 고개를 들고, 왼손으로 아이스바일을 공중에 들어 올렸다가 얼음을 찍어 본다. 손목의 스냅과 힘이 정확하게 얼음을 파고들지 못해 튕겨난다.

경기도 양주시 도락산 가래비 빙벽장에서 이길우 기자가 아이스바일로 얼음을 찍고 있다.  이재용 서울시산악연맹 스포츠클라이밍 이사 제공
경기도 양주시 도락산 가래비 빙벽장에서 이길우 기자가 아이스바일로 얼음을 찍고 있다. 이재용 서울시산악연맹 스포츠클라이밍 이사 제공

다시 시도해 얼음에 꽂는다. 온 힘을 다해 몸을 끌어올리며 발을 디딘다.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온다. 크램폰이 얼음에서 빠져 미끄러지는 것은 아닐까? 힘에 부쳐서 아이스바일을 놓치면 어쩌나? 두려움에 비례에 두 팔에 힘은 더 들어간다. 한발, 두발 오르다가 아래를 보니 내 보호 밧줄을 잡고 있는 보조자가 저 멀리 아래에 있다. 발을 디딜 곳과 아이스바일로 얼음을 찍을 곳을 찾지 못해 헤매는 기자에게 이 과장은 아래에서 큰 소리로 “오른발을 조금 더 왼쪽으로 옮겨요. 왼쪽 움푹 파인 곳에 아이스 바일을 찍어요”라고 조언한다. 간신히 15m가량 오르니 20분이 흘렀고, 전신에 힘이 남아 있지 않은 듯하다. 요령 없이 힘을 잔뜩 준 두 팔은 후들후들한다. 등반을 포기하고 일단 내려왔다.

이 과장은 헉헉대는 기자에게 ‘결정적인’ 빙벽 등반 요령을 가르쳐 준다. “두 발의 폭을 줄이세요. 줄인 상태에서 한쪽 발을 올려 자리 잡곤 다시 자리를 확보합니다. 몸의 중심이 실린 아이스바일과 양 다리는 항상 이등변삼각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한쪽으로 몸이 쏠리거든 허리를 이용해 그쪽으로 몸의 중심을 옮깁니다. 크램폰을 찍은 다리의 무릎을 굽혔다가 펴며 올라가야 합니다. 팔힘으로 올라가면 누구나 중도에 포기해야 합니다.”

도락산 가래비 빙벽장에서 이길우 기자가 빙벽을 오르며 아이스바일로 얼음을 찍고 있다. 이재용 서울시산악연맹 스포츠클라이밍 이사 제공
도락산 가래비 빙벽장에서 이길우 기자가 빙벽을 오르며 아이스바일로 얼음을 찍고 있다. 이재용 서울시산악연맹 스포츠클라이밍 이사 제공

피워놓은 모닥불에 손과 발을 녹이고, 따뜻한 어묵 국물을 마신 뒤 2차 시도에 나섰다. 첫번째보다는 휠씬 마음이 편하다. 두 팔에 힘을 빼고 다리에 힘을 줘서 오르는 것에 집중했다. 얼음절벽 곳곳에 존재하는 요철이 눈에 잘 들어온다. 다리도 쭉 뻗어 멀리 있는 곳에 크램폰을 고정시키기도 했다. 드디어 빙벽 정상이 눈앞에 보인다. 이제 2m만 오르면 된다. 그러나 역시 두 팔의 근육엔 젖산이 꽉 차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다. 정상 주변의 얼음이 불룩해 몸이 뒤로 떨어질 것만 같다. 아이스바일을 찍을 곳도 보이지 않는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포기하자니 완등의 기쁨이 아쉽기만 하다. 힘을 내 기합을 지르며 다시 얼음벽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의지만 있을 뿐 몸이 따르지 않는다. “완등”. 스스로 완등을 선언했다. 생명줄에 매달려 바닥에 내리자 이 과장이 한마디 한다. “힘이 완전히 빠진 상태라고 생각하지만 몸은 본능적으로 30%의 힘을 축적하고 있어요. 그것을 끌어내는 것이 정신력의 힘입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빙벽을 쳐다본다. 아찔하기만 했던 빙벽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또 달라붙고 싶어진다.

양주/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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