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겨울올림픽
“내게도 선물이 오는구나 싶었어요.”
2014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한국의 유일한 다관왕이 된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기둥’ 박승희(22·화성시청)는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박승희는 22일(한국시각)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베르크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이번 대회 쇼트트랙 여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인터뷰에서 “개인전에서 처음 금메달을 따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고 얼떨떨하다. 어떻게 경기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승희는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었는 부상 때문에 1500m도 나서지 못하고 500m에서도 아쉬웠다”면서 “심석희가 1등을 할 줄 알았는데 ‘내게도 선물이 오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박승희는 쇼트트랙 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해왔지만 단 한번도 ‘에이스’로 조명되지는 못했다. 처음 출전한 2010 밴쿠버 대회 때는 역대 최약체란 평가를 들어야 했고, 이번 대회에서는 ‘차세대 여왕’이란 별명을 얻은 심석희(17·세화여고)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언제나 한결같이 대표팀의 ‘기둥’으로 꿋꿋이 버텨줬다. 그리고 이번 대회 여자 500m 동메달에 이어 3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결국 이날 1000m에서 개인전 첫 금메달을 따냇다. 박승희는 두번의 올림픽에서 5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은 하늘이 정해준다“고 하는 그의 말대로 묵묵히 땀 흘린 것에 대한 “선물”을 제대로 받았다.
박승희는 여자 500m 결승전에서 다른 선수들에 밀려 넘어지며 무릎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결국 1500m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이날도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뛰었다. 박승희는 “전지훈련을 거치면서 컨디션이 많이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500m 경기에 출전하기 전에는 정말 몸이 좋았는데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리듬이 깨졌다”면서 “팀원들이 있어 내색은 못하지만 힘들었다”고 부상 이후의 마음고생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부하가 걸리는 오른발에 힘이 빠질 때가 있지만 경기를 치를 때면 정신이 없기 때문에 참을 만하다”며 쿨하게 웃었다.
평소 ‘쿨’한 성격으로 유명한 박승희는 “타고난 성격이 지난 일을 빨리 잊고 미련을 버리는 편이라 운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욕심을 내면 실수가 나오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후회만 남지 않으면 잘한 경기라고 생각하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좋은 성격을 물려주신 부모님에 감사드린 박승희는 이어서 “순발력도 타고 났다. 부모님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인데 우리 세 남매가 모두 좋은 순발력을 물려 받아서 부모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언니 박승주(24·단국대)는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대표팀으로, 나동생 박세영(21·단국대)은 쇼트트랙 남자 대표팀으로 이번 올림픽에 함께 출전했다. 박승희는 “부모님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 ‘세 명이 올림픽에 함께 나가는 것만으로도 복’이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큰 선물까지 가지고 돌아가 기쁘다”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후배들 생각도 잊지 않았다. 박승희는 “다만 석희가 내 뒤로 들어오길 바랐는데 동메달을 딴 것이 조금 아쉽다. (김)아랑이도 함께 왔으면 좋았을텐데…”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소치/허승 기자 raison@hani.co.kr
대한민국 쇼트트랙 대표팀의 박승희(오른쪽)가 22일 오전(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2014.2.22 소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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