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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러 ‘리프트 크러시밤’…가을 신촌이 달아올랐다

등록 2014-11-19 19:31수정 2014-11-20 08:19

프로레슬러 ‘닥터몬즈’(김남석·왼쪽 공격하는 이)가 15일 서울 신촌 연세로에서 열린 인디 프로레슬링 공연에서 상대 선수에게 ‘리프트 크러시밤’을 구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프로레슬러 ‘닥터몬즈’(김남석·왼쪽 공격하는 이)가 15일 서울 신촌 연세로에서 열린 인디 프로레슬링 공연에서 상대 선수에게 ‘리프트 크러시밤’을 구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인디 프로레슬링단체 ‘PWF’
젊음의 거리서 레슬링 알리기
지난 15일 서울 신촌 한복판에 설치된 사각 링에 레슬러 ‘매드원’이 등장했다. 그는 링 한켠에서 쉬던 인형 레슬러 ‘릴디’를 느닷없이 끌고 나오더니 가혹한 서브미션(관절기) 공격을 가했다. 통증을 느낄 리 없는 인형 레슬러가 전혀 반응하지 않자 매드원이 폭발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선수를 내보내다니 네놈들을 용서하지 않겠다!” 릴디와 동료 ‘릴섭지’를 향한 호통과 함께 매드원이 겉옷을 벗어젖혔다. 그의 동료 ‘닥터몬즈’(김남석)도 가세했다. 헐렁한 옷 안에 숨겨진 프로레슬러 특유의 근육질 몸매가 드러나자 링 분위기가 돌변했다. 릴섭지가 닥터몬즈의 어깨까지 뛰어올라 다리로 머리를 꼬아 메치는 허리케인 러너로 선제공격에 나섰다. 곧바로 매드원이 온몸으로 상대를 들이받는 슬링샷 스피어로 맞받았다. 이어 닥터몬즈가 상대를 거꾸로 들어올린 뒤 머리부터 바닥에 꽂는 필살기 리프트 크러시밤을 작렬시켰다. 영상 7~8도의 다소 쌀쌀한 날씨였지만 프로레슬러들의 화려한 기술이 쏟아지자 링 주위에 몰려든 시민 200여명은 환호했다.

이들은 국내 유일의 인디 프로레슬링단체 ‘프로레슬링피트’(PWF·Prowrestling Fit) 소속 선수들이다. 국내에서 인디 프로레슬링은 낯설지만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신일본프로레슬링협회,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 등의 주류 단체들과 다른 형식으로 독특한 재미를 주는 장르로 자리를 굳혔다. 일본 인디 단체 디디티(DDT·Dramatic Dream Team)는 인형 레슬러 ‘요시히코’와 실제 프로레슬러들이 겨루거나 게이 레슬러, 아이돌 스타를 선수로 출전시키기도 한다. 레슬러와 관객 간 퀴즈 대결이 승패를 좌우할 때도 있다. 3000석 규모의 인디 레슬링 경기장은 매주 관중이 가득 찬다. 1년에 한두 차례는 1만명 규모의 대형 경기가 치러진다.

고양 물류창고 개조해 훈련하고
매달 1차례 슈퍼노바 경기 열어
일본·미국선수 초청 국제대회도
김남석 대표 “몸으로 승부 ‘묘미’
모두 각본대로 되는 건 아녜요”

프로레슬링피트는 ‘닥터몬즈’ 김남석(30) 대표가 이끌고 있다. 18살 때 이왕표 체육관에서 처음 레슬링을 접한 뒤 20대 때 일본과 미국 등에서 프로레슬링을 배웠다. 국내 1세대 프로레슬러 김일(2006년 사망)씨의 “일본에 가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조언을 따랐다. 일본의 레슬링은 완전히 달랐다. 화려한 공격 기술뿐 아니라 로프를 타는 기술이나 속도 등에서 한국을 앞섰다. 한국은 세계 레슬링이 진화하는 속도에 크게 뒤떨어져 있었다.

인디 단체를 표방하는 프로레슬링피트가 국내에서 프로레슬링의 명맥을 이어가는 ‘유이’한 단체가 됐을 정도로 국내 프로레슬링의 현실은 열악하다. 김일의 후계자이자 현역 시절 ‘타이거 마스크’로 이름을 날렸던 이왕표(60) 회장이 이끄는 한국프로레슬링연맹(WWA)이 메이저 단체다. 하지만 이 단체조차 한 해 한 차례 정도밖에 대회를 열지 못할 만큼 위상이 낮아졌다. 올해도 지난 8월 경기도 고양시 능곡전통시장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행사의 하나로 대회가 열렸다.

프로레슬링피트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가 꾸준히 경기를 여는 것이다. 프로 스포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게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1월부터 고양의 한 물류창고를 개조해 마련한 훈련장(드림하우스)에서 매달 한 차례씩 ‘슈퍼노바’ 공식 경기를 열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프로레슬링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소중한 시도다. 단체 공식 블로그(www.pwf.kr)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경기를 찾는 팬들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4월 일본과 미국 선수들을 초청해 ‘인생공격’이란 이름으로 국제 프로레슬링 대회를 열기도 했다. 19일 현재 팬투표로 ‘가장 못생긴 선수’한테 챔피언 타이틀을 넘기는 ‘로드 오브 카오스’를 진행하는 등 ‘인디’다운 이벤트도 벌이고 있다.

지난달 ‘닥터몬즈 에이치디(HD)’가 합류하면서 정식 소속 선수도 4명으로 불어났다. 연습생 2명도 데뷔를 위해 훈련을 거듭하고 있다. 기능성 트레이닝 전문가인 김 대표가 사비를 들여 경기를 열고 있지만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서는 후원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김 대표는 “프로레슬링은 드라마가 있는 스포츠로 이해해야 한다. 모든 게 각본대로 가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도 몸으로 승패를 가르는 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한국 프로레슬링의 역사

1965년 “프로레슬링은 쇼다” 발언으로 1차 위기
전두환 정권서 야구·축구 집중 지원 ‘사양길’로

“프로레슬링은 쇼다.” 장영철(1928~2006)의 이 한마디는 1960년대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프로레슬링계에 핵폭탄급 충격을 던졌다. 1965년 11월28일 밤 장충체육관 특설링에서 사달이 났다. 일본의 2류 프로레슬러 오쿠마 모토시가 국내 최고 선수로 꼽히던 장영철을 상대로 새우꺾기(상대 허리를 들어내리며 무릎으로 찍는 기술)를 실제로 구사해 우승을 차지했다. 분노한 장영철의 제자들이 링으로 뛰어올라 오쿠마를 때렸고, 이 가운데 이석윤(당시 28살)은 경찰에 구속됐다.

장영철은 경찰 조사에서 오쿠마가 사전 조율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그럼 다 짜고 치는 것 아니냐”고 심문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파문이 일었다. 당시 프로레슬링은 실전 격투기로 여겨졌다. 김일과 안토니오 이노키로 대표되는 한·일 프로레슬러들이 링에서 피를 튀기며 실전처럼 경기했다. ‘장영철 사건’의 배신감은 컸다. <동아일보>는 “폭발적인 인기를 갖고 일어나던 프로레슬링계가 ‘장영철의 반란’으로 붕괴”됐다고 보도했다.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이 사건 하나로 급전직하한 것은 아니다. 김일-장영철-천규덕으로 대표되는 프로레슬링 1세대에 이어 이왕표-역발산-임대수 등 2세대들이 활약하며 프로레슬링의 인기는 10여년간 그럭저럭 유지됐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프로레슬링이 배척받기 시작했다. 프로야구, 축구, 씨름 등에 정부의 지원이 집중됐고, 방송 중계마저 끊어지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2004년 김일씨는 “전두환씨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레슬링은 쇼인데 뭣하러 보십니까’라고 했다가 혼이 난 일이 있다”고 밝혔다. ‘극일’을 주제로 한 프로레슬링이 한-일 관계 개선을 바라는 정부 입장에선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내 프로레슬링계의 내분도 인기 하락에 한몫했다. 기영노 스포츠평론가는 “미국은 프로레슬링 경기를 위한 시나리오 작가가 있다. 관중들도 연출된 스포츠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즐긴다. 우리도 좀더 솔직해져서 관중들이 재미를 만끽할 수 있게 하면 된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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