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힐 듯하면 달아난다. 프로농구 선두 울산 모비스 얘기다. 시즌 첫 5경기에서 2패를 당하며 절대 강자의 단단함에 균열이 가는 듯했다. 10경기 만에 공동 선두에 오른 뒤, 정규리그 반환점을 코앞에 둔 8일 현재 한 달 넘게 단독 선두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승률 8할대(19승4패) 고공행진도 이어지고 있다.
양동근, 문태영, 함지훈, 리카르도 라틀리프로 이어지는 주전 멤버들이 리그 최강으로 꼽힌다. 이들만으로 5개월 동안 쉴 틈 없이 경기를 치르는 정규리그에서 정상을 유지할 수 없다. 모비스의 장기 독주에는 벤치 멤버들의 활약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지난 7일 경기는 모비스 벤치 멤버들의 저력을 보여준 경기였다. 상대는 최근 무서운 기세로 선두 자리를 위협하는 원주 동부(14승8패·3위)였다. 모비스에선 에이스 문태영이 16분밖에 뛰지 못한 채 5반칙으로 퇴장했다. 득점도 2점에 그쳤다. 문태영을 대신한 송창용이 10점을 올렸다. 주전 가드 양동근이 쉬는 틈마다 백업 포인트가드 김종근이 코트에 나와 불과 7분간 7점을 뽑았다. 이날 모비스의 전체 3점슛 7개가 모두 벤치 멤버 손에서 터졌다. 모비스의 주전 선수가 벤치에서 숨을 돌리는 사이에 상대 팀들은 쉴 틈이 없어진 셈이다. 칭찬에 인색한 유재학 모비스 감독도 이날만큼은 “벤치 멤버들이 잘해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올 시즌 모비스 벤치 멤버들의 주요 기록은 수치상으로 ‘평균 이하’다. 비주전 선수들의 경기당 평균 득점이 6위(15.7점), 도움 8위(3.8개), 튄공잡기 9위(5.7개)에 그친다. 짧은 시간 경기에 투입돼 득점과 수비에서 보여주는 ‘효율’은 리그 최고로 꼽힌다. 모비스 벤치 멤버들은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즌 도중에도 새벽, 야간까지 훈련을 소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출전 시간이 불규칙하면서 대개 일정한 슛 감각을 유지하기 어려운데, 모비스 선수들이 언제든 제 기량을 발휘하는 이유다.
유 감독이 크게 앞선 경기에 긴장을 풀지 않는 이유도 벤치 선수들과 관련이 있다. 유 감독은 “점수 차가 많이 났을 때 쫓기지 않는 경기를 해야 벤치 선수들한테 출전 기회가 생긴다”고 강조하고 있다. 주전 선수들이 체력을 비축하고, 벤치에 있는 선수들이 경기 감각을 유지해야 장기전에서 어려운 상대를 만났을 때 힘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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