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과의 승부다. 그리고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싶다. 그것이 전부다.”
훈련에 집중하고 싶어 외부와의 만남을 극도로 꺼리는 안창림(24·수원시청). 어렵게 이뤄진 짧은 전화 통화로 확인한 그의 목소리에는 갓 구워낸 식빵의 담백함이 있었다. ‘왜 올림픽 금인가?’ 우문인지 알면서도 던졌을 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자기만족이다. 내가 시작한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다. 부모님한테도 효도하고 싶다.” 관절이 꺾이고, 인대가 찢어지는 고통을 참는 이유는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다.
재일동포 3세 안창림은 한국 남자유도 73㎏의 간판이다. 체급 자체가 중량과 역동성을 지닌데다 기술 등이 화려하게 들어갈 수 있다. 이원희, 왕기춘 등 현란한 스타들도 이 체급에서 뛰었다. 당연히 경쟁도 치열하고 적수도 많다. 2014년 한국으로 넘어와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기량이 일취월장한 안창림이 방심할 수 없는 이유다.
귀화 제의 거부한 재일동포 3세
한국유도 73㎏급 강자로 성장
최민호의 주특기 좀더 발전시켜
‘변형 업어치기’ 신무기까지 장착
오노 쇼헤이와 금메달 다툼 유력
힘으론 밀려도 지구력에선 앞서
3전3패 딛고 ‘리우의 승자’ 야심
“나와의 승부…부모님 기쁘게 할 것”
초등학교 때부터 유도를 시작한 안창림의 주특기는 왼쪽 업어치기. 쓰쿠바대학 2학년 때까지 일본 스승으로부터 배워 갈고닦았다. 하지만 하나의 기술만으로 세계 정상에 오르려 하는 것은 모험이다. 상대가 철저히 대비책을 세우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새로운 기술 습득을 위해 뼈를 깎는 안창림은 “다양한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새롭게 장착한 안창림의 무기는 한국식의 변형 업어치기다. 전기영 용인대 교수는 “원래 최민호 코치가 하는 말아업어치기를 안창림이 좀 더 업그레이드해 장착했다. 최민호의 전매특허였는데 안창림이 최 코치로부터 배우면서 큰 수확을 거두고 있다”고 했다. 상대의 옷깃을 꽉 움켜쥔 채 자신의 몸을 회전시키면서 상대를 돌린 뒤, 몸으로 굴려야 한다. 이 동작에는 손목에 엄청난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어서 어린 선수들한테는 권하지 않는다. 금호연 수원시청 감독은 “안창림이 왼쪽 업어치기를 워낙 잘했지만,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여 있는 한국 태릉에서 훈련하면서 더 많이 성숙해졌다. 기술의 습득력이 매우 빠른 선수”라고 했다. 안창림은 “새 기술을 배우는 것은 정말 힘들다. 포기할까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유혹에 지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일본 유도계의 귀화를 거부하고 한국에 온 안창림은 2014년 8월 러시아에서 열린 세계대회에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했다. 국내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해 자신감이 넘쳤지만 이스라엘의 사기 무키(세계 3위)와 벌인 2회전 대결 패배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후 태릉에서 혹독한 연습을 감내하며 실력을 끌어올렸고, 이후 지금까지 무키와 벌인 3차례의 국제무대 대결에서 모두 한판승을 거뒀다.
세계 2위 안창림의 올림픽 정상행의 최대 걸림돌은 일본의 간판인 동갑내기 오노 쇼헤이(24·세계 6위). 지난해 카자흐스탄 세계대회와 독일 그랑프리 등 딱 2개 대회에만 출전해 우승한 그는 랭킹의 숫자와는 상관없이 안창림과 함께 73㎏ 체급의 양강으로 꼽힌다. 유도계에서는 둘이 리우 올림픽 금을 다툴 것으로 예상한다.
안창림은 그동안 오노와의 맞대결에서 3전3패를 기록했다. 지난해 8월 카자흐스탄 세계대회 4강전에서 기술을 넣으려다가 허점을 노출해 허리안아돌리기 한판패를 당할 때는 땅을 쳤다. 안창림은 “몸 상태가 워낙 좋았고 넘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작전을 쓰려고 했는데 당했다”고 말했다. 절반씩을 따낸 상태에서 1분을 남겨두자 조금 무리하게 공격을 시도하다가 허를 찔린 것이다. 전기영 교수는 “오노의 허벅다리 기술을 받아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너무 압박감을 느끼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 자신의 경기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호연 수원시청 감독은 “오노는 힘이 장사다. 하지만 5분간의 싸움에는 엄청난 체력이 소모되는데, 지구력에는 약점이 있어 보인다. 경기 운영 능력을 보완하면서 그 약점을 노려야 한다”고 말했다.
안창림은 “오노의 힘을 인정한다. 하지만 하체와 허리에서는 내게 장점이 있다. 올림픽 무대에서 되갚아 최후에 웃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한을 품고 있는 사람은 무서운 법이다. 안창림의 가파른 성장의 추이는 그가 세계를 메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