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대통령’이라 불렸던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16일 검찰에 소환되면서 그가 3년 재임 기간 남긴 체육계 유산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체육인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김종 차관은 2013년 10월 부임 이후 체육계 4대 악 척결과 스포츠의 공정성, 경기단체의 투명성 등 온갖 화려한 개혁 구호로 ‘비정상의 정상화’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김 차관의 행보가 대부분 최순실씨의 딸이나 최씨 사업 등 특정인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정부의 체육정책에 대한 체육인들의 신뢰는 깨졌다. 유소년이나 영재발굴을 위해 수십년간 사업을 해온 기존의 경기단체에게는 추가지원을 꺼리던 정부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최씨 일가 주도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는 6억7천만원을 지원한 것은 체육정책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경기단체가 기존 집행부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임원 중임제한 등 개혁조처를 내세웠지만, 차관이 개인적으로 아는 빙상인 가족이 24년 동안 협회장을 독식한 것에 대해서는 빙상계의 문제 제기에도 방관했다.
반대파에 대한 불이익이 일상적으로 주어지면서 체육계는 황폐화했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 과정에서 껄끄러운 목소리를 낸 인물 중 하나인 테니스협회장은 오래전 회계장부의 문제 때문에 ‘영구제명’ 당했다. 국제법과 어긋나는 국내법을 고수하며 박태환 선수를 올림픽에 보내지 않기 위해 국제스포츠 중재재판소까지 갈등을 끌고 가는 모습은 불통을 상징한다.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 위원장이 수시로 바뀐 배경에도 김 차관이 있다.
과거 대한체육회를 거치던 방식에서 문체부가 직접 경기단체에 예산을 지원하면서 줄 세우기는 일반화했다. 대한체육회는 존재 의미를 훼손당했다. 스포츠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전통의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은 의미도 불명확한 한국스포츠개발원으로 개칭됐다. 체육과학연구원은 일본에도 영향을 미친 체육계의 싱크탱크로 구성원들의 자존심이 강했는데, 스포츠개발원으로 바뀐 뒤 내부 반발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은퇴 선수 등을 위한 실질적 교육기관 구실을 했던 체육인재육성재단도 케이스포츠재단과 사업영역이 겹치자 지난해 말 독립법인에서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일개 부서로 축소됐다. 김 차관의 업적으로 평가받는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은, 일정을 1년 이상 앞당긴 속도전 후유증으로 지금도 통합단체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김종 차관은 케이스포츠재단을 만들 단계부터 최순실씨와 긴밀히 협의하며 이권에 개입했고, 문체부 직원 등 공조직을 가동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각종 회의에서 상대방과 소통하기보다는 호통을 치거나 윽박지르는 식이어서 많은 체육인이 상처를 입었다. 자신의 영향력으로 옥상옥의 스포츠기구를 만들거나, 산하 조직에 인사청탁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김종 차관 이후에도 문체부에는 위기의식이 없다. 지난주 문체부는 국장급 인사를 하면서 김종 차관과 손발을 맞춰온 인사들을 같은 직급의 다른 보직으로 이동시켰다. 새로운 체육정책 담당자는 이념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인물로 대체됐다. 체육계에서는 “여우를 피하니 호랑이를 만났다”라는 말이 나돈다. 일종의 반혁명이 필요한 시기인데 칼자루는 여전히 구세력이 잡고 있다. 관료 조직의 뼛속깊은 반성이 없어 보이기에, 김종 차관의 유산이 쉽게 해소될 것 같지가 않다.
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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