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 누리집에 나온 스피드스케이팅장 설명.
해체하기로 했다가 존치로 번복하면서 ‘골칫덩이’가 된 강릉 400m 스피드스케이팅장의 교훈은 명확하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다.
한국개발연구원은 2012년 400m 트랙의 연간 유지관리비만으로 30억원이 든다고 추정했다. 피겨와 쇼트트랙이 열리는 아이스아레나(34억원), 남자아이스하키장(19억5천만원)을 포함하면 유지 비용은 더 커진다. 한편 한국스포츠개발원은 2015년 ‘강릉 동계종목 선수훈련장 조성 타당성 조사’에서 400m 트랙과 쇼트·피겨장 두 곳의 올림픽 뒤 운영수입을 13억8천만원으로 예상했다. 강릉에 국가대표 훈련장을 조성해 아이스하키와 컬링,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와 일반 선수, 일반인 등 8만1836명이 찾아왔을 때의 입장 수입이다.
두 개의 빙상장 수입조차 스피드스케이팅 하나의 유지관리비 절반을 충족시키기 힘들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와 강원도는 지난해 애초 해체하기로 했던 스피드스케이팅장과 아이스하키장을 존치시키기로 결정했다. 스피드스케이팅장 등을 국가대표 훈련장 등으로 활용하고, 새로운 일반 수요를 창출할 경우 올림픽 유산을 남기면서 관리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스포츠개발원의 선수훈련장 조성 타당성 조사를 신뢰하는 빙상인들은 거의 없다. 한 빙상 관계자는 “태릉의 400m 빙상장이 없어진다는 전제로 연구용역을 한 것부터 문제다. 결정된 것이 없는데 허상 위에 연구 조사를 의뢰한 것은 특정한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14년 현재 일반인 14만1천명 등 연간 20만여명이 이용하는 태릉 400m 스케이팅장은 수도권에 밀집한 빙상팀의 훈련 메카다. 이 훈련장을 없애면 수도권 팀들의 상당수가 해체의 길로 갈 가능성이 있다. 스포츠개발원의 연구용역에 나타난 설문 결과를 봐도, 강릉에 빙상훈련장이 조성될 경우 강릉으로 훈련을 가겠다고 한 곳은 조사 대상 10개 팀 가운데 하나뿐이었다. 이 관계자는 “진천에도 아이스하키와 컬링 경기장을 짓고 있는 상황에서 강릉에 같은 목적의 동계훈련장을 만든다는 발상은 애초 낭비의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연구를 주도한 스포츠개발원 쪽은 정치적인 고려는 전혀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책임연구원인 유지곤 박사는 “재무적으로 타당성이 없다고 명시했고, 국민의 (적자보전 등) 지불 의사를 반영할 경우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관여하거나 개입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올림픽 이후의 난관은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이 “분산개최는 없다”고 말한 것에서 비롯된다. 평창조직위 관계자는 “그 발언 이후 평창의 모든 문제가 꼬여 버렸다”고 했다. 시설만 지어 놓으면 정부가 알아서 재정지원을 해줄 것이라고 믿은 강원도나 강릉시의 안이함도 비판의 대상이다.
더 큰 문제는 정치나 논리가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전명규 한국체육대 교수는 “연구를 하든 정책 결정을 하든 현장의 전문가들한테 물어나 봤으면 좋겠다. 현장의 소리를 무시한 채 숫자나 정교한 수식으로 이뤄진 논리는 공허하다”고 했다.
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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