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밤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 세계대회 디비전 2 그룹 A 남북한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르네 파젤 국제아이스하키연맹 회장
“나이 많은 실향민들의 문의가 많았어요. 빨리 이산가족 상봉해야 한다며…”
6일 밤 강릉하키센터에서 만난 이선경 원주시민연대 대표는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대결’이 답답한 남북관계를 깨는 실마리가 되기를 바랐다.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강원본부 집행위원장이기도 한 이 대표는 이날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대회 디비전 2 그룹 A 경기에 나선 북한팀을 위해 공동응원단을 실질적으로 구성했다. 이날은 하늘색 한반도기가 새겨진 후드를 입고, 한반도 깃발을 든 1천여명의 공동응원단이 관중석 한 블록을 차지하고 북한 선수들을 응원했다.
이 대표는 “강원도에는 실향민들이 많다. 많은 분이 응원단에 문의하고 일부는 참석도 했다”며 “오로지 이산가족 상봉만을 바라는 분들이어서, 이런 대회가 남북관계 변화에 계기가 돼 주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독일인이 한반도기가 새겨진 티를 달라고 했다. 자기 나라도 분단의 경험이 있다며 응원하고 싶다는 뜻을 보인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것은 실향민들만이 아니었다. 이날 개성공단 기업인들과 경기를 보러온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빨리 대화하고 교류해야 한다. 정치 때문에 기업인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 스포츠 교류가 꽉 막힌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면 좋겠다”고 했다. 정 회장은 “현재 개성공단 전체 기업의 절반 정도는 여전히 공단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매우 힘든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돼 어려움에 부닥친 강원 북부 접경지의 주민들도 이날 대회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6000명 안팎의 관중들은 경기가 끝나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0-3으로 완패해 풀죽은 북한 선수들이 한줄로 서 앞뒤로 인사를 할 때는 큰 박수를 보냈다. 같은 동포이기 때문일 것이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의 르네 파젤 회장도 이날 경기를 지켜봤고, 경기 뒤에는 남북한 선수들과 어우러져 기념촬영을 했다. 국제연맹은 또 선수들에게 유엔 스포츠 평화의 날(4월6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피스 앤 스포츠’라고 쓰인 엽서를 선수 모두에게 선물했다.
북한의 아이스하키 대회 참가 여부는 지난달에 결정됐다. 평양에서 열리는 여자축구 아시안게임 예선에는 남한팀의 방북을 받아 들였다. 북한이 스포츠를 정치의 도구로 사용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꽉 막힌 남북관계를 해소하는 데는 스포츠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통일부가 지난주 북한 아이스하키선수단의 입국을 허가하면서, “국제관례에 따라 북쪽 선수단의 방남과 우리 선수단의 방북을 승인한 것일 뿐”이라고 했는데 너무 딱딱하고 사무적이다. 차라리 “노 코멘트”라고 말했더라면 여운이라도 남지 않았을까.
평생을 통일운동에 이바지한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남북의 선수들이 부딪히고 어울리고 쓰러지면서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성을 느낄 것이다. 8~9년간 경직된 남북관계가 체육을 통해서 틈을 메웠으면 좋겠다. 북한 선수들한테도 우리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됐으면 좋겠다.”
그렇다. 서로 왔다 갔다 해야 물꼬가 트인다. 이번 기회에 대한 아이스하키협회가 북쪽에 정기 교류전을 제안하면 어떨까. 그래서 해마다 남과 북에서 열흘 정도 합동훈련도 하고 우정도 나누면 어떨까. 그게 스포츠의 힘 아닌가.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