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숙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경기운영본부장(왼쪽부터)과 딸 서효명(방송인), 아들 서수원(모델)씨가 최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봄 햇살처럼 화사한 표정의 누나가 포즈를 잡았다. 그러자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남동생이 연신 스마트폰 셔터를 눌렀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둘 다 나를 닮아 활달하다”며 흐뭇해 했다.
엄마는 1970~80년대 여자농구 최고 스타 박찬숙(60)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경기운영본부장이다. 그의 딸 서효명(33)은 배우이자 방송인이고, 아들 서수원(23)은 모델로 활동중이다. 박 본부장의 키는 190㎝, 딸 효명씨는 키 170㎝, 아들 수원씨는 키 190㎝다. 10년 전 작고한 남편 서재석씨도 키 180㎝인 ‘키다리 가족’이다.
박 본부장이 활약하던 당시 여자농구는 세계 수준이었다. 1979년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에 이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는 우리나라 구기종목 최초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아선수권에서는 진월방(2m7)과 정하이샤(2m4)가 버틴 ‘만리장성’ 중국을 상대로 6회 연속 금메달을 따냈다. ‘당시 엄마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느냐’고 묻자 아들 수원씨는 “김연아 정도? 아닌가? 잘 모르겠다”며 “어려웠던 시절, 엄마 덕분에 국민들이 웃을 수 있었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다”고 했다.
세종대에서 영화예술학을 전공한 딸 효명씨는 에스케이(SK)텔레콤 광고 치어리더편(2008년)으로 얼굴을 알린 뒤 교육방송(EBS)의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에서 메인 진행자 하니를 맡아 끼를 발산했다. 또 영화와 드라마에도 종종 출연하고 있다. “배우와 진행자 중 어떤 게 더 좋으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랑 똑같은 질문”이라며 “둘 다 잘하고 싶다”고 했다. 어릴 적 대만에서 자라 중국어도 능숙하다.
호기심 많은 성격에다 방송 진행을 많이 해봐서 그런지 인터뷰를 하다가 거꾸로 기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는 요즘 골프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골프 삼매경에 빠져 있다.
아들 수원씨는 고1 때까지 축구 골키퍼를 하다가 고 2때부터 모델의 길을 걷고 있다. 고 3때는 에스비에스(SBS) 슈퍼모델 선발대회에서 전체 2위, 남자 가운데 1위에 뽑혔다. 최근엔 홍콩에서 8개월간 모델 활동을 하고 돌아온 ‘글로벌 모델’이다. 눈빛과 턱선이 알랑 드롱과 많이 닮았다. 그는 “아빠가 젊었을 때 그 소리 많이 들었다고 한다”며 “중 1때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고등학교 때 우연히 아빠 젊은 시절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는 “내 적성을 찾았다. 모델의 길을 택하길 정말 잘했다”며 웃음지었다. 누나 효명씨도 “동생의 워킹이 처음엔 어색하고 어설펐는데 지금은 정말 멋지다”고 칭찬했다.
박찬숙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경기운영본부장(오른쪽부터)과 아들 서수원(모델), 딸 서효명(딸)이 최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에서 인터뷰를 하기 앞서 멋진 포즈를 취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남매는 열살 터울이다. 효명씨는 “업어키웠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 유치원 다니던 동생을 데리고 서대문형무소 견학도 다녀오고, 필름 사진을 찍어서 인화한 뒤 때와 장소를 일일이 적어가며 동생 앨범을 정리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수원씨는 누나를 “엄마 같은 누나, 친구같은 누나”라고 칭했다. 그러나 영화보러 갈 때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는 누나를 뿌리칠 땐 ‘현실 남매’로 돌아온다.
박 본부장은 2007년 여자프로농구 구단들의 여성 감독 후보 차별에 맞서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내는 등 성차별에 맞서 줄기차게 활동했다. 지난해 10월, 농구 행정가로 변신한 그는 한 시즌을 무난히 마쳤다. 그는 최근 신생 구단 비엔케이(BNK) 캐피탈이 코칭스태프를 전원 여성으로 구성한 데 대해 “늦었지만 의미있는 일”이라고 환영하면서도 “여성들의 기회가 늘어나려면 잘해야 할텐데 하는 걱정도 앞선다”고 했다.
농구 행정가와 방송인, 모델이라는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서로 격려하고 조언하는 ‘키다리 가족’이 봄 햇살처럼 따스하다.
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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