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채현이 지난 16일 서울 영등포구 서종국클라이밍에서 인공암벽에 오르며 미소 짓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유롭게 등반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스포츠클라이밍에 샛별이 떴다. 서채현(17·올댓스포츠)이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성인무대 데뷔 첫해인 2019년 단숨에 리드부문 세계 1위에 오르며 여자 스포츠클라이밍 기대주로 떠올랐다.
유스대회를 건너 뛰고 곧바로 성인무대로 나선 그는 첫 월드컵에서 2위를 차지한 뒤 이후 4개 대회에서 금메달 4개를 추가했다.
서채현은 “세계대회에 출전한 것이 처음이라 어느 정도 잘하는지 가늠이 안 됐다”며 “처음에는 긴장을 많이 했는데 막상 예선을 치러보니 해볼 만한 것 같아 그때부터 크게 긴장은 안 했다”고 말했다.
처음 월드컵에 나선 서채현은 2018년 리드부문 세계 1위 얀야 간브렛(21·슬로베니아)에 이어 은메달을 따냈고 두 번째 대회에서는 간브렛이 4강에서 탈락하며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3번째 대회에서는 결승에서 간브렛과 맞붙어 명실공히 정상에 올랐다. 간브렛은 지난해 볼더링부문 세계 1위지만, 리드부문에서는 서채현에 밀려 세계 2위에 그쳤다.
서채현은 오는 4월 단 1장의 올림픽 출전권이 배정된 아시아챔피언십을 준비하고 있다. “올림픽 출전이라는 목표가 작은 건 아닌데,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는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면 엄청 큰 목표 하나가 이뤄지는 것”이라며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면 부족한 부분을 더 채우고 확실히 해서 메달권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클라이밍 리드부문 세계 1위라 해도 서채현의 올림픽 출전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김자인(31)·사솔(25) 등 소속팀 동료이자 대표팀 선배를 이겨야 한다. 올림픽에서는 리드(높이 대결)뿐 아니라 볼더링(과제 수행)과 스피드(속도 대결) 3대 부문을 합산해 순위를 결정하는데, 서채현은 볼더링과 스피드 경험이 부족하다. 특히 스피드부문은 근력이 중요한 만큼 어린 서채현한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서채현은 “스피드부문은 감을 유지하는 수준이 그치고, 좋아하고 잘하는 리드와 볼더링에 더 집중할 것”이라고 준비 상황을 밝혔다. 이는 3개 부문 순위를 곱해 가장 낮은 점수를 얻은 선수가 우승하는 스포츠클라이밍의 독특한 순위방식 때문이다. 예를 들어 2위·3위·4위(합계 24점)보다는 1위·2위·10위(합계 20점)를 하는 게 낫다. 한 부문에서 1위를 하면 이점이 크다.
‘클라이밍의 신동’이라는 말도 듣지만, 본인은 “재미있어서 하다 보니 좋은 성적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7살 때부터 클라이밍 선수인 부모님을 따라 실내 암장에서 놀이처럼 클라이밍을 익혔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전국대회 우승을 하면서 그의 삶의 목표는 클라이밍 그 자체가 됐다.
서채현은 “초등학교 때부터도 클라이머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고민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그는 바쁜 대회 일정에도 불구하고 학급 1위를 놓치지 않고 있지만 대학 진학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서채현은 “지금은 학교 때문에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지만 졸업하면 외국에 등반하러 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각지에 빼어난 등반코스들이 있지만 날씨 등으로 등반 시기는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달 초에는 경북 청송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에 출전해 6위를 기록했다. 그는 “아이스클라이밍이 주 종목은 아니지만 최종 1위를 해보는 게 목표다. 스포츠클라이밍과 아이스클라이밍, 자연바위 등 등반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잘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글·사진/이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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