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복싱협회가 신임 회장을 뽑아놓고도 출범조차 하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였다. 단독 출마한 후보가 당선자로 결정돼 발표까지 됐지만,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기존 집행부가 이를 뒤집었기 때문이다.
대한복싱협회는 지난달 15일 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한 윤정무(37) 가림종합건설 대표이사를 당선인으로 확정해 공고했다. 대한체육회 산하 60여개 가맹단체 수장 중 최연소이며, 경기도복싱협회에서 8년간 부회장·회장을 맡았기에 체육 단체의 젊은 리더십이 강조되는 시대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윤 당선자는 아직 새 회장으로 공식 업무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협회 규정에 새 회장의 임기는 정기대의원 총회일로부터 시작한다고 돼 있는데, 정기대의원 총회의 날짜는 기존 집행부 이사회가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회장과 구 집행부 사이의 갈등이 있으면 악용될 수 있는 구조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기존 집행부는 애초 1월28일 정기대의원 총회 일정을 잡아 두었다. 하지만 총회 직전 먼저 개최돼야 할 이사회가 성원 미달을 이유로 두 차례나 연기되면서 정기대의원 총회도 미뤄졌다. 정작 이달 19일 28명 중 21명이 참석한 이사회에서는 윤정무 새 회장 당선을 무효로 하는 결정을 내렸다. 대한복싱협회 이사회는 발표문에서 “사전 선거운동, 위탁선거법 위반, 사회적 물의, 제3자에 의한 선거운동 금지조항 위반”을 당선 무효 사유로 들었다.
이에 대해 윤정무 당선인은 “이사회가 과연 선거와 관련한 결정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다른 후보가 나오지 않은 것을 두고 억측으로 나를 의심하고 있다. 만약 아니라면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 그동안 저쪽에서 여러 차례 부당한 요구를 해온 것을 모두 거부한 게 화근이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당선 무효 결정 무효 가처분 신청 등 법적인 대응에 나섰다.
신임 회장이 기존 집행부의 견제 때문에 출범하지 못하는 사례는 대한복싱협회만이 아니다. 대한검도회는 이달 간신히 정기대의원 총회를 열어 새 회장이 취임했지만 기존 집행부의 반발이 심했다. 대한레슬링협회와 대한컬링협회의 신임 회장은 당선 무효 파동을 겪은 뒤 법원 판단에 따라 당선인 자격을 회복했다.
한 체육인은 “대한체육회가 새 회장의 임기 시작을 정기대의원 총회 시점으로 하지 말고, 1월31일로 딱 못을 박아야 이런 문제가 없다. 선거 관련 규정을 다듬어야 할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김창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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