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일본 마쿠하리 메세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펜싱 여자 플뢰레 8강 전희숙(한국)-데리글라조바(ROC). 전희숙 패. 전희숙(왼쪽) 상대의 공격을 받고 있다. 데리글라조바의 다리에 오륜기가 들어가 있다. 연합뉴스.
25일 한국 펜싱의 ‘맏언니’ 전희숙(37·서울시청)을 8강전에서 꺾은 ‘세계 1위’ 인나 데리글라조바(31)의 양팔과 다리에는 ‘오륜기’가 박혀 있었다. 데리글라조바는 2016 리우올림픽에서는 러시아 국기와 ‘RUSSIA’(러시아)라는 국가명을 달고 뛰었고 금메달(플뢰레 개인전)을 목에 걸었다. 데리글라조바는 왜 이번에는 조국 러시아의 국기와 국가명을 달지 않았을까.
데리글라조바뿐만이 아니다.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러시아 선수단(335명)은 모두 경기 내내 유니폼·깃발·단체명 등에 국호와 국기, 국가를 사용할 수 없다. 러시아 선수는 메달을 획득하더라도 시상대에서 러시아 국가를 들을 수도 없고 국기를 펼치지도 못한다. 선수단 명칭도 러시아 대신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아르오시)로 표기된다.
러시아 선수단이 이런 조처를 받은 이유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주요 국제스포츠대회에서 러시아의 참가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2019년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러시아 모스크바 반도핑 연구소에서 받은 도핑(운동선수가 성적을 올리려고 금지 약물을 투약·먹는 행위) 테스트 데이터가 조작됐다고 판단했고, 이듬해 12월 스포츠중재재판소는 러시아의 도핑 샘플 조작을 인정했다. 이에 러시아는 올림픽은 물론 월드컵 등 주요 국제 스포츠 대회 출전권을 2년간 박탈당했다.
다만, 징계범위는 국가 자격으로 제한해 러시아 선수들이 개인 자격으로 도쿄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 선수들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지침에 따라 국기의 색상(빨간색·흰색·파란색)만 유니폼에 표시했다. 이밖에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올해 4월 러시아 음악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의 일부를 러시아 국가 대신 틀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선수단은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은 물론 2022 카타르월드컵 때도 ‘러시아’(RUSSIA) 대신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이름으로 출전해야 한다.
러시아가 도핑을 놓고 문제를 일으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4 소치겨울올림픽에서도 자국 선수단의 금지약물 복용 사실을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 2018 평창겨울올림픽 출전이 금지된 바 있다. 이때도 러시아 선수단은 러시아 대표팀 자격이 아닌 ‘올림픽 선수(OAR)’ 자격으로 출전했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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