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계영 800m에 출전해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금메달을 목에 건 중국 여자 수영 대표팀. 국제수영연맹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갈무리.
극적인 역전승, 신기록, 세계 1위의 탈락과 꼴찌의 반란.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대이변이 속출했다. 기초 종목인 수영과 육상에서 아시아 선수들의 진기록이 쏟아졌고, 만년 우승 후보가 탈락하거나 무명의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연출됐다.
중국 여자 수영 대표팀은 7월29일 계영 800m(4명의 선수가 자유형으로 200m씩 경주를 펼치는 경기) 결승에서 7분40초33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사상 첫 금메달을 수확했다. 2019 광주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오스트레일리아가 수립한 세계 기록(7분41초50)을 1초17 앞당겼다. 이 종목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해온 미국,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외 국가가 해당 종목에서 우승한 것은 1996년 대회 때 올림픽 세부 종목으로 채택된 뒤 처음이다.
개최국 일본은 각 종목 세계 1, 2위이자 유력 메달 후보로 꼽혔던 자국 선수들이 조기에 탈락해 아쉬움을 삼켰다. 배드민턴 남자 단식 세계 1위였던 모모타 겐토는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세계 38위 허광희에게 패해 8강 진출이 좌절됐고, 여자 테니스 세계 2위 오사카 나오미도 단식 16강전에서 세계 42위 마르케타 본드로우쇼바를 상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경기를 마감해야 했다.
일본 이토 미마와 미즈타니 준이 탁구 혼합복식에서 중국을 이긴 뒤 환호하고 있다. 도쿄올림픽 공식 누리집 갈무리.
탁구 최강국인 중국은 2004 아테네 대회 뒤로 17년 만에 금메달을 놓쳤다. 일본 이토 미마(21)와 미즈타니 준(32)이 7월26일 탁구 혼합복식 결승에서 중국을 상대로 세트스코어 4-3(5:11/7:11/11:8/11:9/11:9/6:11/11:6)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둬 일본 탁구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오스트리아의 아나 키젠호퍼가 여자 사이클 도로 경주 결승선을 통과하며 환호하고 있다. 도쿄올림픽 공식 누리집 갈무리.
모두의 예상을 깨고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도 나왔다. 현직 연구원(스위스 로잔공대)이자 아마추어 선수인 오스트리아의 아나 키젠호퍼(30)는 7월25일 여자 사이클 도로 경주에서 ‘인생 경기’를 펼치며 금메달을 따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키젠호퍼는 137㎞ 코스를 3시간52분45초로 주파하며 금메달 유력 후보인 아네미크 판플뢰턴(39·네덜란드)보다 1분15초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판플뢰턴은 경기를 마친 뒤 1위인 줄 알고 자축하다가 머쓱해하기도 했다. 그는 “키젠호퍼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털어놨다.
튀니지 수영선수 아흐마드 하프나위가 자유형 400m 결승에서 기록을 확인한 뒤 포효하고 있다. 도쿄올림픽 공식 누리집 갈무리.
튀니지 수영 선수 중 유일하게 출전한 아흐마드 하프나위도 같은 날 수영 남자 자유형 400m에 출전해 3분43초36으로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지난달 프랑스챔피언십에서 3분46초16을 기록해 올림픽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하프나위는 8위로 가까스로 결승에 진출한 뒤 마지막 50m에서 잭 매클로플린(오스트레일리아)을 밀어내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서 이변이 속출한 이유 중 하나는 코로나19로 인한 훈련 부족 등으로 기존 선수들이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림픽 개최지에 미리 입성해 현지 적응도 필요했으나 코로나19로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 더불어 국경 봉쇄로 국외 훈련 없이 1년 넘게 자국에서 조용히 칼을 갈고 있던 복병들이 올림픽 무대에서 잠재력을 폭발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상대를 알고 자신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이지만 코로나19로 ‘지피’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깜깜이 올림픽’이 된 측면도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