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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새벽을 맞는다는 것, 얼마나 귀한가

등록 2010-04-30 20:56

“왜 내가…” 외면해도 다가오는 초침

1천여명 배웅한 능행스님 ‘죽음 생중계’

‘수익금’ 임종자 위한 호스피스 사업에

〈이 순간〉 능행 지음/휴·1만2000원

금융업에 종사했던 성일씨는 대장암으로 2년 동안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암이 폐까지 전이된 상태다. 이제 겨우 오십이다. 평소 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도 감정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그가 어느 날 ‘죽음’을 생각하는 속내를 스님에게 꺼냈다.

“섬뜩해지면서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게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아무도 모릅니다. 내 이런 심정.”

쉰넷에 남편과 별거한 뒤 혼자 남매를 키워내며 ‘이제 살 만하구나’ 싶었을 때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그니’는 애써 괜찮은 척하다 오솔길에서 스님 앞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나는 아니에요. 내가 그런 병에 걸릴 리가 없잖아요. 말도 안 돼요!”

그니는 땅바닥에 널브러진 채 한동안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 죽음에 대한 적대감을 마구 쏟아내며 울부짖었다.

<이 순간>이 전하는 ‘죽음의 생중계’ 현장은 리얼하다. 이런 실제 상황이 남 얘기만은 아니라는 게 문제다. 모두가 ‘나는 아닐 것’이라고 애써 회피해보지만, 지상에서 지금까지 죽음을 피해간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진시황도, 알렉산더 대왕도, 칭기즈칸도, 나폴레옹도….

죽음이 뭔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마주한 죽음 앞에서 피맺힌 아픔을 절규하는 사람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고라는 약과 음식을 머리맡에 소복소복 쌓지만 그 높이와 반대로 죽음의 초침은 더욱 빨라진다. 눈을 부릅뜨고 몸부림치지만,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육신은 한 모금의 물도 허락하지 않는다.

지난 15년간 무려 1000여명의 죽음을 배웅한 능행 스님. 죽도록 회피하고픈 죽음의 현장에서 죽어가며 몸부림치는 환자를 껴안아온 그다. 5년 전 펴낸 첫 작품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가 불교계에서 법정 스님 책 이후 최고 베스트셀러의 하나가 된 것도 ‘죽음의 분석가’들과는 전혀 다른 치열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능행 스님은 죽어가는 사람들의 간절한 눈빛을 거절하지 못해 뜻하지 않게 임종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의 길로 들어섰다. 임종자를 만나러 귀신이 나올 듯한 산길을 홀로 달리며 눈물 범벅이 되어 울고, 환자들의 치료비와 정토마을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밤낮으로 탁발을 해야만 하는 이 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정토마을을 탈출했던 그도 이제 오십줄에 들어섰다. 간염 환자를 돌보다 주사기에 찔려 정토마을 간호사와 자신이 함께 생사의 고비를 넘기도 했다. 그런 산전수전을 겪으며 죽음은 그에게 삶이 되었다. 그는 1000명을 저세상으로 보내면서 ‘잘 살지 못하고선 잘 죽을 수 없다’는 철칙을 깨달았다. 그것은 죽음이 안겨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토록 집착하던 돈도 명예도 권력도 어느 것 하나 가져갈 수 없이 ‘무소유’할 수밖에 없음을 자각하고 눈물짓는 임종자들을 수없이 보아온 그이기에 <이 순간>이 ‘죽음의 순간’일 수 없다.

“오늘 하루 숨 쉬고, 밥 먹고 무대에 서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라는 배우 나문희씨와 “오늘 물 한 잔을 마시며 살아 있는 것이 왜 기적같이 감사한 일인지 알았다”는 도종환 시인이 추천사에 쓴 것처럼 기적이야말로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다. 그래서 이 순간이야말로 축복하고, 감사하고, 사랑해야 할 천금 같은 시간이다.

설사 잘 살지 못했더라도 죽음의 순간만이라도 평안한 마음으로 ‘새로운 여행’을 떠나도록 도와주는 ‘서원’을 빌고 비는 그가 요즘 꿈꾸는 것은 임종이 다가오면서 너무 숨이 가빠 침대에 누워 있을 수조차 없는 환자들을 위한 안락의자를 사주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고귀한 삶을 마칠 수 있도록 울산 언양에 호스피스 병원을 짓기 위해 천일 동안 명상하고 사랑을 나누는 ‘천일애(愛)운동’을 펼친다. 그래서 책 판매수익금은 전액 불치병 환자들의 삶을 질을 높이는 데 쓴다.

보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느껴지는 삽화들과 함께 능행 스님이 ‘아름다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지상 최고의 선물을 안겨준다.

“물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켤 수 있는 것, 따뜻한 방바닥에 등을 눕힐 수 있는 것, 밤새 죽지 않고 새벽을 맞이하는 것, 오늘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것, 이 모두가 기적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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