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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아르헨티나 현대사의 교황

등록 2014-08-13 09:22

`더로운 전쟁'때 실종된 가족들의 사진을 들고 있는 아르헨티나 5월 어머니회원들

프란치스코 교황은 1973년 4월22일 예수회 사제로서 종신서원을 한다. 이후 1992년 주교 서품을 받기까지 20년 동안 고국 아르헨티나는 역사의 격랑에 휩싸인다. 군사독재 정권의 폭압, 민간 정부의 신자유주의를 향한 질주가 차례로 몰아쳤다. 특히 전반 10년은 시민들의 피로 물든 민주주의의 암흑기였다. 이 시기 그의 삶도 이후 논란을 피해가지 못했다.

 논란의 핵심은 그가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 대신 ‘순응’과 ‘협조’를 택했던 건 아니냐는 것이다. 1976년 이사벨 페론 정부를 축출한 아르헨티나 군부는 1983년 민정 이양까지 7년 동안 철권을 휘두른다. ‘국가 재조직’이란 이름 아래 반대자를 조직적으로 말살했다. 군부의 우두머리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는 “총이나 폭탄을 가진 자뿐 아니라 아르헨티나식 생활양식과 서구 기독교 문명에 반대하는 사상을 퍼뜨리는 자”는 모두 테러분자라고 규정했다. 3만명의 시민들이 살해·실종됐다. 고문실에서 숨지거나, 산 채로 비행기에서 바다로 던져졌다.

 가톨릭교회의 대응은 둘로 갈렸다. 해방신학을 따르는 이들은 목숨 걸고 싸웠다. 반면 고위 성직자 다수는 침묵과 순응을 택했다. 군부 쿠데타 직후 80여명의 주교들이 모여 다수결로 내놓은 대응책은 “침묵으로 상황을 주시한다”였다.

 당시 아르헨티나 예수회 관구장을 맡고 있던 베르골리오(교황의 이름) 신부가 선 자리는 가운데 어딘가였다. 혁명투쟁에 동참하지 않았지만, 정권의 폭압에 손놓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저항자들을 위한 ‘드러나지 않은 보호자’로 남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6년 예수회 소속 두 신부를 군인들이 끌고 갔다. 며칠의 고민 끝에 베르골리오는 군종신부 대신 비델라의 미사를 집전하겠다고 자청했다. 미사 뒤 그는 두 신부에 대한 선처를 직접 호소했다. 두 신부는 살아서 풀려나 아르헨티나를 떠났다. 그가 관구장을 맡은 기간 단 한명의 예수회원도 살해되지 않았다.

 군사독재 종식 뒤 일부에선 베르골리오가 군사정권의 협조자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시기 인권운동으로 노벨평화상을 탄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은 단언했다. “일부 주장과 달리 베르골리오 신부는 군사정권에 협조한 적이 없다. 다른 방법으로 그는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남몰래 도와줬다.”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가 된 그는 2000년 군사정권 시기 가톨릭교회의 죄를 고백하는 문헌 <내 죄>의 발표를 이끌었다. <내 죄>는 “우리는 자유와 인권을 해친 사람들에게 너무 너그러웠다”며 “책임있는 이들의 침묵을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교회 차원의 과거사 속죄를 이끌어낸 그는 사목활동의 평생 지침으로 삼았던 ‘가난과 벗하는 교회’의 실현에 한층 적극적으로 나선다. 민간 정부의 신자유주의 추진이 가난과 불평등을 키우는 조국의 현실에 두 눈을 부릅떴다. 이제는 ‘세계의 비참’에 맞서 ‘소박’과 ‘겸손’을 무기로 분투하고 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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