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의 선승들의 존경을 받언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의 영결식이 28일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봉행됐다. ‘부처님 오신날’외엔 산중을 폐쇄하고 100여명의 선승들이 오직 참선만하는 봉암사엔 이날 전국에서 4부대중 3천여명이 찾아와 고인의 법구를 배웅했다. 선승들은 일체의 세속적인 자리를 탐하지않고, 봉암사에서조차 실질적인 어른이면서도 조실자리마저 거부하고 ’수좌’라는 평범한 직책을 지키며 오롯이 수행에만 전념하며, 산골에서도 중생들에 대한 이타행의 마음을 놓치않았던 스님의 떠남을 아쉬워했다.
특히 통상 한국의 화두선사들에 중생들의 삶과 유리된 수행관을 고집하는 것과 달리 '당신과 나, 만물과 내가 둘이 아니다'는 자타불이관을 내세운 적명스님의 사상을 표현한 만장이 눈길을 끌었다. 영결식장에는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는 사람이 깨달은 자이다’와 ‘깨달음은 일체가 자기 아님이 없음을 보는 것이다’는 적명 스님의 평소 언행을 담은 펼침막이 내걸렸다.
영결식에서 장의위원장을 맡은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대원스님은 영결사에서 “적명스님, 이게 웬일이십니까. 산승은 말문이 막히고 산하대지도 말문이 막혀 오열하고 있다”며 “아직 간화선이 한국과 세계화로 정착되지 못해 더 많은 지도와 가르침이 필요한 때 대종사께서 우리 곁을 떠나시다니 너무 안타깝고 한스럽다”고 안타까워했다.
대원스님은 “다시 향 사르고 청하오니 본래 서원 잊지 마시고 노니시다가, 다시 사바에 오셔서 대사를 거듭 밝혀주시고, 중생을 깨우쳐 달라”고 청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추도사에서 “한국불교의 큰 스승 한 분을 적멸의 세계로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은 허허롭기 그지없다”며 “저희 사부대중은 대종사님이 남겨주신 가르침을 받들면서 다시 정진해 나가도록 하겠다. ‘수좌 적명’이시여, 화엄의 빛으로, 다시 이 땅의 고요한 빛으로 돌아오소서”라고 바랐다.
이 자리에는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세민 대종사,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의정스님, 이철우 경북도지사, 주호영 국회 정각회 명예회장, 김거성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윤성이 동국대 총장, 박원순 서울시장 부인 강난희 등도 참석했다.
영결식에 이어서는 사찰 인근 봉암사 연화대에서 다비식이 봉행됐다. 만장을 앞세운 장례 행렬은 스님의 법구를 인근 연화대로 옮긴 뒤 약 2m높이로 나무와 숯 등을 이용해 만들어진 화장장에 불이 붙으며 적명 스님이 법구는 연기로 화하고, 깨달음의 빛만이 남았다.
적명 스님은 1939년 제주에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전남 나주 다보사에서 천진도인으로 알려진 우화 스님은 은사로 출가했다.그는 해인사와 통도사, 백양사, 수도암, 은해사 기기암 선원등 전국의 주요 선방에서 선원장을 지내고, 전국 수좌회 공동대표를 맡았다.
적명 스님은 동안거 90일 가운데 절반이 지난 반결제일을 맞아 반결제일엔 전대중들이 함께 산행을 한 전통에 따라 관음봉으로 대중들과 산행에 나섰다고, 홀로 더 산행을 하고 싶다는 요청에 따라 홀로 남았다. 점심시간이 넘어서도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승려들이 찾아 나섰고, 스님은 산중 바위 아래서 쓰러진 채 발견됐으나 이미 숨은 멎은 상태였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불가의 존경받는 선승이신 적명 큰스님의 급작스러운 입적 비보를 들었다”며 추모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8월 대선 후보 경선 시절 봉암사에서 스님을 만났던 때를 떠올리며 “(스님께선) ‘국민의 한 가지 바람은 10년 후, 100년 후에도 그리워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대통령을 가져보는 것’이라고 간절한 마음을 가지라고 당부하셨다. 스님 가르침대로 늘 간절한 마음을 가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