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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조정래작가, 인생 경영의 비법

등록 2021-10-27 04:59수정 2022-01-19 20:05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④ 조정래 작가

접촉은 줄고, 접속은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해 활동량과 대면 접촉이 줄면서 활동반경은 줄고, 불안과 우울 지수는 높아졌다. 코로나19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 못지않게 지나친 불안과 우울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것도 중요한 때다. 똑같은 환경이지만 평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지혜를 찾아 <한겨레>가 플라톤아카데미와 공동으로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시리즈를 4주 간격으로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네번째 인생멘토는 조정래(79) 작가다.

강원도 평창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내 조정래집필실에 선 조정래 작가. 사진 조현 기자
강원도 평창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내 조정래집필실에 선 조정래 작가. 사진 조현 기자
지난 11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내 소나무숲에 둘러싸인 한옥 조정래집필실을 찾았다. 그는 3년 전부터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 부인 김초혜 시인과 주로 이곳에 머물며 소설을 쓰고 있다. 소나무 위에 앉은 백학처럼 흰 한복의 조 작가가 맑은 미소로 맞는다. 물 위의 학도 멀리서 보면 유유자적하지만, 수면 아래서는 물갈퀴를 쉬지 않고 젓고 있다고 하지 않던가. 편백나무 책받침에 그가 새겨놓은 ‘문학, 길 없는 길’이란 제목의 글귀가 그의 작가정신을 말없이 전해준다.

‘읽고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쓰고 쓰고 또 쓰면, 열릴 길.’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조 작가가 수십년간 스스로를 글감옥에 가두어 하루 12시간 이상씩 의자에 붙들어 맨 채 손으로 꾹꾹 눌러쓴 <태백산맥> 10권 1만6500장(200자 원고지 기준), <아리랑> 12권 2만장, <한강> 10권 1만5천장을 비롯한 10만여장의 육필 원고 앞에 서면, 더 이상 말문을 열기가 어렵다. 우리나라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무려 장편 대하소설만 1600만여권이 팔렸다. 이렇게 여러 편의 장편 대하소설을 쓴 이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그러니 삶의 여유와 행복을 위해서 ‘쉬라’거나 ‘비우라’는 조언을 그에게서 구하는 것은 소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찾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도 무쇠일 리 없다. <태백산맥>의 모태가 된 전남 벌교에서 자라면서 죽도방죽을 달린 그는 학교에서 마라톤이나 높이뛰기, 넓이뛰기 1등을 도맡아 할 만큼 타고난 강골이긴 했다. 하지만 과로 앞에 장사가 있을 수 없다. 대하소설 3부작을 내는 20년간 200자 원고지 30장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감한 이후에도 초인적 글 작업을 이어오면서 몸에 무리가 와 위궤양에 시달렸고, 두번이나 탈장 수술을 했다.

그러나 우리 나이로 여든에 이르러서도 고혈압, 당뇨 같은 어떤 성인병도 없이 마치 청년처럼 여전히 창작하면서 강연에서는 사자후를 토한다. 더구나 끊임없이 스스로 정한 일정표에 따라 매일 ‘마감’이란 스트레스를 부여함에도 몸과 마음이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버텨내며 비상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글감옥 속에 수십년간 자신을 가둔 고행과 고통뿐이었다면, 그가 이렇듯 건강한 모습일 리 만무하다. 그는 “인내와 고통을 상쇄해주는 게 있다”고 했다. 기쁨과 희열과 황홀이다. 인간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조 작가가 지난해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낸 독자와의 대화집 <홀로 쓰고, 함께 살다>의 제목처럼 말이다. 부모가 자식이 자라는 기쁨으로 기꺼이 부양의 노고를 감당하는 것처럼, 그도 글감옥에서 낳은 자식인 소설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으로 기꺼이 노고를 이겨낸다. 특히 그 소설들을 읽으며 의식이 깨어나고 커진다는 독후감에 형언할 수 없는 황홀감에 젖는다고 한다. 그가 ‘문학, 작품 그리고 인생 이야기’를 <황홀한 글감옥>이라고 이름한 대로다. 그는 “그 황홀함이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새로운 기운의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게 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인생도 경영”이라고 말한다. 운이 아니라 노력에 의한 경영이 삶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조 작가에게도 ‘롤모델’이 있다. 대문호들이 아니다. 그의 롤모델은 신체가 부자유한 장애인들과 운동선수라고 한다. 불편한 몸으로 사는 것도 힘든데, 그런 불편함에도 일을 해내고, 사지를 못 쓰면 입으로라도 그림을 그려내는 장애인들을 보며 그는 삶을 가다듬는다고 한다. 그는 또 “김연아도 손흥민도 ‘그렇게 신들린 듯한 기량의 비결이 뭐냐’는 물음에 ‘비결이 없다’며 ‘오직 노력이 있을 뿐’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일문일답이다.

―오대산에 와 있으니 어떤가?

“기본 정서가 도회지가 아니고 농촌에 맞다. 제 기본 정서를 표현한 것이 <태백산맥>이다. 그런데 50년 동안 도시 생활을 하면서 항상 내가 살 곳은 도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떠돌이 같이 느껴졌다. 이 집필실에 와보니, 공기가 맑고 풍광이 이렇게 빼어날 수 없다. 환상적인 산책로가 많고, 명상적인 분위기이다. 자연 교향곡인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걸으면 영혼이 맑아져 마치 신선이 된 것만 같다. 그러니 다리에도 짱짱하게 기운이 뻗치는 것이 느껴져 말년에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작을 이어가면서 몸에 무리가 오지 않았나?

“왜 안그랬겠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쓸 때는 위궤양과 탈장으로 고생했다. 원고지 30매를 다 쓰고 새벽 2~3시에 잠자리에 누우면 몸이 땅으로 가라앉는 것 같아, 내일 아침에 못 깨어나면 이대로 죽겠지란 생각을 수없이 했다.”

―그런 초인적인 노력을 하면서도 큰병에 걸리거나 몸을 상하지 않고, 80이 다 된 지금까지도 창작을 이어가는 비결은?

“지난 8월17일로 79세를 넘겼고 우리 나이로 80이 됐다. 내가 마흔살 때는 예순까지 못 살 줄 알았다. 예순살 때는 80이 안 될 줄 알았다. 철이 안들었던 게다. 지금 80이 되어 바라보니, 지금도 글을 쓰려는 욕구가 남아 있다. 지금은 2년 뒤에 쓸 3권짜리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소설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읽고, 지금도 생각하고 쓰는 일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치매에 걸리지 않는 것은 읽고 또 읽기 때문이다. 매일 맨손체조와 산책 같은 가벼운 운동을 계속 해서 피가 원활하게 돌게 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매일 읽고, 읽는 것을 생각하고, 매일 뭔가를 쓰는 것은 프로 스포츠 선수가 체력을 관리하는 것과 같다. 몸도 고기를 잘 먹어 유지하기보다는 소식하고, 남보다 3배 이상 오래 고루고루 씹어서 천천히 먹는다. 지금도 80 나이에 고혈압, 당뇨 같은 성인병이 일체 없다. 그래서 내 나이를 80으로 안 보고 십년쯤 낮게 보니 기분 나쁘다. 20년쯤 낮게 봐줄 것이지.(웃음)”

―창작만큼 피를 말리는 게 없다고 하는데, 피 말리는 마감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어떻게 견디는가?

“2002년 조계사에서 스님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을 때 스님들이 10년 면벽수행을 자랑하는데, 스님들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나도 좌복 대신 의자에 나를 맸다. 소설가는 누구든지 창작 과정에서 3가지의 과정을 거친다. 첫번째는 생각보다 잘 되지 않을 경우. 두번째는 생각만큼 되는 경우. 세번째는 생각보다 더 잘 되는 경우다. 소설이 성공하려면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세번째가 계속 되어야 한다. 그건 집중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성취되지 않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행을 거쳐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에게만 열반의 희열이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인간은 집중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해 그것을 성취했을 때 황홀감을 느낀다. 그 황홀감이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킨다. 그 토대 위에 새로운 기운의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난다. 그 기운이 고통을 이겨나가게 한다. 그런 세월의 향기가 풍기는 삶이 소설가의 삶이다.”

―매일매일 방에 갇혀 글쓰는 작업만 반복하면 무료하고 견디기 어려운 것 아닌가?

“처음 <태백산맥> 1부 3권을 내고 한달쯤 지나 재판, 삼판을 찍고, 6개월이 지나니 독자들로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빨리 2부를 쓰지 않고 무얼 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다른 작가들이 쓰는 속도의 2배로 쓰는데도 성화가 그치지 않았다. 10권이 끝날 때까지 그런 전화로 황홀했다. <태백산맥> 완성 1년 후 독후감에서 독자들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했다. 또 ‘너무 재미있어서 멈출 수가 없어서 뒤로 갈수록 아까워서 아껴가면서 읽는다’고 했다. 특히 80년대 운동권 중 독방 생활하던 정치범들은 ‘아끼면서 읽는다’고 했다. 또 ‘이건 읽고 버릴 책이 아니어서 가보로 물려주려고 한다’고 했다. 그런 독자들의 반응이 그 많은 세월 동안 고통을 견디면서 이겨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 독자들의 성원이 또 글감옥을 견디게 해주었다.”

―삶의 롤모델이 있는가?

“첫째는 신체적으로 부자유한 장애인들이 나의 롤모델이다. 그들은 불편한 몸으로 사는 것도 힘든데, 그런 불편함에도 여러 직업에 종사하고,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따기도 하고, 사지를 못 쓰면 입으로라도 그림을 그려낸다. 둘째는 운동 선수들이다. 60년대 신동파라는 농구선수는 던졌다 하면 골인이었는데, ‘비결이 뭐냐’고 물으니 ‘비결은 없다’며 ‘단체 연습이 끝나고 나면, 아무도 안 볼 때 500번씩 던졌더니 어느날 공에 눈에 달려 빨려 들어갔다’고 했다. 김연아도 그렇다. 애초 아시아 사람들은 피겨스케이팅을 못 한다고 했다. 그런데 김연아는 엉덩이에 푸른 멍이 들 때도 연습을 더 했다. 최근엔 손흥민이 인종주의가 심한 백인 사회에서 세계 최고 선수 10명에 들어가지 않았나. 그에게도 ‘비결이 뭐냐’고 물으니 ‘비결이 없다’며 ‘단체 활동이 끝나고 나면 천번씩 공을 찼다’고 했다. 손흥민에게 <태백산맥>을 보내주고 싶은데, 지금은 연습에 방해될까봐 못 보내고, 그가 귀국하면 보내줄 생각이다.”

―100세 시대라지만 단지 오래 산다는 것만으로 축복은 아닐 텐데, 나이 들어서도 어떻게 멋진 삶을 살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세월과 자연현상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모든 사람은 늙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인생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해 정신적·육체적 건강 생활을 경작해야 한다. 인생은 경영이다. 나이는 육체가 먹는 횟수일 뿐이다. 나이들수록 정신은 명료하고 명징해질 필요가 있다.”

―노년과 젊은층의 세대간 단절이 심한데 어찌해야 하나?

“1960·70·80년대 30년에 걸친 세대들이 가장 불행하다고 볼 수 있다. 50년대 유엔에서 점찍은 최빈국이 아프리카 콩고와 대한민국이었다. 국민소득 80불에 불과했는데, 개발도상국 가운데 유일하게 선진국에 진입했다. 그러나 죽도록 일해 노동력을 제공한 장노년 세대들 가운데 노후 준비가 되어있는 이들이 10%도 안된다. 그들의 삶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그들이 일군 물질을 토대로 급진적 발전을 꾀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일만 하다 보니 정서 생활을 못해 기본교양이 안돼 있고. 어찌 보면 의식의 불구자가 됐다. 그들을 비웃지 말고, 부족함을 대화로 채워주고, 아이티 교육도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젊은 세대는 접근하고, 늙은 세대는 포용하고, 고정되어버린 퇴보를 인정하고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게 뭔가?

“우리 인간들이 지구라는 별에서 살면서 얼마나 거만하고 오만하고 자만에 빠져 살아왔는가. 멸망을 향해 치달아가는데 그렇게 하면 전멸·몰락할 것이라는 경종이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상황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와 캐나다에서 산불이 계속됐고, 기온이 섭씨 50도까지 올라갔다. 시베리아에도 산불이 나 매연이 알래스카까지 덮쳤다. 중국에서는 홍수가 나 수십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인도와 이라크도 기온이 올라가고, 한국도 열대야가 23일이나 계속됐다. 폭염과 태풍, 가뭄이 계속되면 기아가 닥치게 된다. 인간이 지구를 이토록 망가뜨리는 데 200년밖에 안 걸렸다. 인간이 기록한 역사가 4천년인데, 지난 200년간 산업혁명을 일으켜 모든 것을 기계화한 뒤 증기기관차 만들고, 석탄과 석유를 캐 계속 자연을 훼손해 대량생산하며 호의호식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가르쳤는데, 누가 임명한 영장인가. 인간은 하찮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은 산업혁명 이후 자연을 마음껏 강간해왔다. 1950년대 이후엔 달에 가면서 인간이 우주를 정복했다고 했는데, 지구란 전 우주에서 티끌 같은 존재다. 인간은 지구에서도 티끌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가르침을 망각하고 방자하게 자연을 망가뜨리고 환경을 오염시킨 결과다. 지금 ‘코로나19’의 변종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데, 또 다른 신형 바이러스가 생길 수 있다. 그것이 오기 전에 겸손하게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를 줄이고, 욕심을 줄여 겸허해져야 한다.”

―부인 김초혜 시인과 살며 신혼 초부터 연탄을 다 갈고 설거지를 했다는데 남성 꼰대가 판치던 시대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나?

“우린 부모한테 받은 물질적 유산은 아무것도 없어 셋방살이부터 시작했다. 1960년대엔 문학을 하면 굶어죽기를 각오해야 했던 때다. 최소한 먹고살기 위해 맞벌이 교사를 했다. 그러니 가사노동의 반을 분담해야 했다. 이 부분을 명확하게 구분해줬으면 좋겠다. 전업주부인데도 절반의 가사 분담을 한 것은 아니다. 김초혜는 저에게 가장 지성적인 대화자이고, 가장 슬기로운 충고자이자 가장 열정적인 응원자다. 그러므로 김초혜를 영혼 육체를 다 바쳐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리랑>은 구한말부터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다루고 있는데, 중국 근방 소수민족들이 다 망해버린 것과 달리 우리 민족은 나라를 잃어도 굴하지 않고 싸웠다. 주체성과 독립성을 가진 그 민족성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중국과 국경을 맞댄 고대 왕국들이 다 중국에 흡수됐지만 한국과 베트남만이 정복되지 않았다. 한반도는 미국과 일본, 러시아,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크고작은 침략을 931번이나 당했다. 중국의 중고교 세계사 교과서에서 조선왕조 500년을 2쪽 반으로 요약했다. 그중 대부분은 사색당파 싸움 등을 비판했고 다섯줄이 긍정적인데, 상당히 정확하다. 거기에서 의병과 동의보감을 칭찬했다. 수많은 외침을 받으면서 비정규군인 의병을 만들어 조국을 지킨 세계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다. 또 동양의 의학을 총집대성해서 체계화해 아시아인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 허준의 <동의보감>이 기여했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에 이어 <오징어 게임>이 세계를 강타 중인데, 한국인의 특성이나 능력, 한국의 가능성은 어떻게 보는가?

“최근 5~6년 동안 한국인들이 창조해낸 문화가 여러 방면에서 전세계를 흔드는 것이 기적이고 희한하다지만 너무 당연하다. 한국인들이 고대부터 가무를 좋아하고, 흥이 있고, 신바람을 아는 민족이었다. 경제가 발전되면서 그 물적 토대 위에서 개인들이 드디어 그런 창의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한국의 시대를 열었다. 잃어버린 조국을 찾은 해방공간에서 백범 김구는 무력이 강한 나라가 아니라 문화가 강한 문화국가를 이루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 한국인들이 마침내 이를 이루고 있다. 케이드라마와 케이무비, 케이팝이 세계를 흔들면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나라가 50여개국에 이른다. 이제 시작이다. 우리의 내재된 힘이 더욱 자극될 것이다. ‘다음은 한국 세상이 될 것’이라는 이곳 오대산의 탄허 스님의 예언이 우리 눈앞에 실현되고 있다. 새로 자라는 세대에게 더욱 기를 북돋아 그 힘이 더욱 팽창되도록 해야 할 때다.”

―삶과 가치관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인물은 누구인가?

“제가 어렸을 때 영향을 가장 많이 준 분은 아버지(조종현 승려·시인·교육자·독립운동가)다. 순천 선암사에서 승려들을 교육시키는 강백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집안에서는 불교의 논리를 펼치기보다는 생활을 가르쳤다. 첫번째로 ‘주색잡기 하지마라’고 했다. 당시 부인 여럿을 얻는 것을 남자의 능력으로 알던 시대다. 둘째 ‘음식은 가리지 말고 고루고루 꼭꼭 씹어서 먹고, 과식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모자라면 무탈인데, 많이 먹으면 탈난다’는 것이다. 그 덕인지 8남매 중 주색잡기로 문제된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아직까지 다 건강하게 살아있다.”

―어린 시절 삶에 가장 영향을 준 곳은?

“<태백산맥>의 무대인 (전남) 벌교다. 한국전쟁과 여순사건 때 주검들을 많이 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야뇨증에 걸렸다. 전쟁 뒤 아버지가 벌교상고에 국어 교사로 가서 벌교에서 살았는데, 갯벌에서 게를 잡고 뛰어다니고, 아름다운 벌교의 산과 들에서 놀다 보니 6개월쯤 뒤 자연 치유가 되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같은 이념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어떻게 인간됨의 길을 찾아야 할까?

“인간은 수많은 동물 가운데서 언어와 종교와 정치를 창조한 아주 영리한 동물이다. 그 영리함이 팽배해 자신을 팽창시켜 자기를 망쳐버리는 단계까지 온 게 인간이다. 인간이 자족을 알고, 남을 도울 줄 아는 심성을 갖지 않는 한 지옥고는 해결이 안된다. 많이 가진 자들이 행복한 종말을 맞는 게 아니라 대부분 비극적으로 죽어간 것을 교육적으로 가르쳐야 하고, 타고난 착한 심성을 키워서 악한 심성 제압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풀꽃도 꽃이다>에서 교육 문제를 건드렸는데, 한국의 교육에 대한 소망이 있나?

“(공부 못하는) 절반쯤은 버려도 좋다는 식의 교육은 이제 그만둘 때다. 중고교 몇년의 성적으로 평생의 삶을 규정하는 짓은 불공평하기 그지없는 짓이고, 교육의 기본이 안된 것이다. 공부 못하는 사람도 사람이고, 그가 어떤 일을 해낼지도 알 수 없다. 장미만 꽃이냐, 풀꽃도 꽃이다.”

―평생 직접 손으로 원고지에 글을 써왔는데 이 컴퓨터 시대에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원고지만 고집하는 이유는?

“소설의 문장은 예술이고, 묘사력은 집중된 의식과 빛나는 영감의 작용에 의해 잉태되어 나오는 독특한 것이다. 비슷한 것 같은데 전혀 비숫하지 않은 게 예술이다. 기계의 속도에 따라 얹혀가는 의식은 자기 문장일 수 없고, 감동을 일으킬 수 없고, 밀도와 흡인력이 떨어진다는 생각 때문에 펜을 놓지 않았다. 상대방의 영혼을 끌어들여 용광로에서 쇠가 녹듯이, 수많은 각기 다른 영혼들이 들어와서 뜨거운 불길 같은 감동의 영혼을 녹이기 위해서라면 손으로 열번이라도 고쳐쓰는 작업을 기꺼이 할 수 있다.”

오대산(강원도 평창)/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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