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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배가 산으로 갈 길 따라 ‘생명의 순리’ 고행

등록 2008-03-07 14:13

운하 반대 도보순례 22일째인 4일 오전 충북 괴산군 장연면 송덕리 마을 길가에서 순례단원들이 눈을 맞으며 백두대간에 다가서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산중한담] 대운하 반대 100일 순례단 1박2일 동행기

하늘-땅-생명 소리 울리며 걸음걸음 평화의 꽃

스님 목사님 신부님 서로서로 ‘화덕’되어 단잠   한강-남한강-달천-쌍천-원풍천 등 강줄기만을 따라 남하한 ‘종교인 생명평화 100일 순례단’은 지난 4일 산으로 접어들었습니다. 한반도대운하 반대를 내걸고 지난 2월12일 김포에서 출발한 지 22일째입니다. 스스로를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이라고 이름한 이들이 왜 강이 아닌 산으로 향한 것일까요. 경부운하가 추진된다면 배가 산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향한 충북 괴산 조령은 배가 지나도록 산 아래에 25㎞의 초대형굴이 예정된 곳입니다.   [동영상] ‘종교인 생명평화 100일 순례단’ 1박2일 동행기

    기러기 떼처럼 줄지은 순례단이 조령을 향할 때 괴산군청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순례단이 전날 괴산댐을 지나는 길에 쓰러져 있는 것을 구조해 괴산군청에 인계했던 황조롱이가 죽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조류 전문가들은 황조롱이가 수명이 다해 자연사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멸종 위기의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가 지상에서 사라지기 전 왜 ‘생명의 산과 강을 모시는 사람들’ 앞에 나타났을까요. 갈수록 인간의 탐욕과 폭력 앞에서 살아갈 환경이 열악해지는 뭇생명들의 아픔을 마지막으로 호소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황조롱이의 죽음은 뭇생명들의 아픔 마지막 호소였을까    순례단이 황조롱이의 아픔에 공감하며 한발 한발 내딛었습니다. 조령고개를 넘기 전인 괴산군 연풍면 고사리 이화여대 수양관엔 전국에서 온 차량들로 빼곡했습니다. ‘생명의 강 살리기를 위한 기도회’에 참석하러온 목회자들과 개신교인들이었습니다. 300여명의 기독교인들은 순례단과 함께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눈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순례단이 함께 모여 기도회를 열고 있다.

  목회자정의평화위원회 상임대표 정진우 목사가 세 번의 징을 울리며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소리는 하늘의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두 번째 소리는 땅의 소리입니다-땅에 속한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 번째 소리는 생명의 소리입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징소리에 이어 <여기 오소서 내주여>란 찬송이 울려퍼지자 하늘에선 눈꽃송이가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와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 등이 ‘생태계에 폭력을 가한 삶을 참회’하는 기도를 드렸고,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공동대표인 최완택 목사는 “걷는 자체가 평화”라며 “이로 인해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축도했습니다.   또 최 목사는 틱낫한 스님의 <산책명상>이란 시를 낭송했습니다.

 

 내손을 잡아라

 함께 걷자

 우리는 다만 걸을 것이다.

 닿을 곳에 대한 생각 없이

 다만 걷기를 즐길 것이다.

 평화롭게 걸어라

 행복하게 걸어라

 우리 산책은 평화로운 순례이다.

 우리 산책은 행복한 순례이다.

 

 그때 우리는 배운다.

 평화로운 산책은 없고

 평화 곧 산책임을

 행복한 산책은 없고

 행복 곧 산책임을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걷는다.

 언제나 손에 손잡고

 모든 사람을 위해서 걷는다.

 

 걸으면서 순간마다 평화를 만져라

 걸으면서 순간마다 행복을 만져라

 발짝마다 한 송이 꽃을 피운다.

 네 발로 땅에 입 맞추어라

 네 사랑과 행복을 땅에 새겨 놓아라

 우리가 우리 안에서 충분히 안전할 때

 땅은 안전한 것이다.   천근만근 몸 뉘자마자 너나 없이 코골이로 ‘아름다운 화음’    기도회가 끝나고 함께 걷던 방문객들이 모두 떠난 뒤 순례단은 괴산 장연면 송덕리 전이장인 김병근(55)씨 집 비닐하우스로 들어갔습니다. 이날 밤 순례단이 몸을 누일 곳이었습니다. 목사와 스님과 신부가 나란히 누었습니다. 온종일 걸은 피로 때문에 눕자마자 어디선가 코고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필완 목사(왼쪽)와 양재성 목사. 

  5년 전 전북 부안 새만금갯벌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하느라 무릎연골이 상할 대로 상해 한발자국 걷는 것이 고통스러운 수경 스님의 코고는 소리에 역시 무릎이 아파 지팡이를 짚고 걸어야하는 이필완 목사, 철원 근방 시골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농사꾼 김규봉 신부가 화답했습니다. 별빛 아래 비닐하우스 안에서 아름다운 화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밤이 깊어갔습니다.    이날 밤 기온은 영하 7도까지 내려갔습니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있어도 몹시 추웠습니다. 이번 순례에서 처음 만나 100년 지기처럼 가까워진 연관 스님과 김민해 목사는 곁에서 서로에게 화덕이 되어주었습니다.   목욕도 하지 못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하루하루 뭇생명을 대신해 행진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선 생태지평 명호연구원과 이원규 시인을 비롯한 10명의 자원봉사자들은 또 하루의 순례를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부산했고, 여성 지원팀들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밥을 하고, 국을 끓였습니다.   손 흔들어주고 잠자리에 먹거리까지, 가는 곳마다 격려·지지 손길   따뜻한 국으로 언 속을 덥히고 몸을 푼 뒤 생명을 위한 기도명상을 하고 서로에게 큰절을 올린 다음 이들은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함께 못 걸어 미안하다’며 전날 점심을 준비해온 문규현 신부에 이어 이날은 법륜 스님과 에코붓다 회원들이 함께 걸은 뒤 점심식사를 제공했습니다. 순례단이 도로를 지나는 동안 자동차를 타고 지나는 사람들도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을 담아 손을 흔들어주곤했습니다.  
도보순례 하루 일정을 마친 종교인들이 3일 저녁 충북 괴산군 칠성면 도정리 칠성교 아래 둔치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농민 박찬교씨, 최상석 성공회 신부, 홍현두 원불교 교무, 도법 스님, 이필완 목사(순례단장), 지관 스님, 수경 스님. 괴산/김봉규 기자.   운하가 예정된 지역은 운하가 될 경우 땅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에 부푼 지주들도 있습니다. 건설업자들 가운데는 운하가 추진되길 바라기도 합니다. 그래서 순례단들은 애초 운하 코스에서 이들로부터 비난을 받거나 욕을 먹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렇게 순례단을 비난하거나 욕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많은 분들이 격려해주고, 지지를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주무시고 가라면서 잠자리를 제공해주거나 먹을 거리를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순례단은 아름다운 산 밑으로 실개천이 흐르는 조령산체험마을에 이르러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누군가 “우리의 발밑으로 큰 배가 다니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무거운 침묵 가운데 다시 순례가 시작됐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폭력을 성찰하고 자문하는 걸음 걸음이었습니다.

 ‘인간의 끝없는 개발로 인해 황조롱이에 이어 또 누가 죽어갈까요.’   괴산 조령/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동영상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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