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한담] ‘봉쇄 수녀원’ 빗장 연 까닭
‘공해 유발’공장에 인근 마을 주민들 난민 될판
“수녀원 옮겨 준댔지만 그들 두고 떠날 수 없어”
“삶의 모든 기회를 포기하고 선택한 삶입니다. 어찌 그런 삶을 벗어나고 싶었겠습니까.”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수녀원’ 원장 장혜경(50) 수녀가 지난 18일 서울시 중구 정동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에서 ‘바깥 세상’을 향해 하소연했다. 경남 마산 구산면 수정리에 있는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수녀원’은 봉쇄수도원이다.
‘봉쇄수도원’이란 한번 들어가면 긴급한 치료가 요구되는 병이 발생하는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곳이다. 평생 기도와 노동, 독서만으로 하느님을 만나는 것 외엔 모든 것을 포기한 은둔 수도자 27명이 사는 곳이다. 세계적인 영성가 토머스 머튼이 속했던 곳이기도 한 트라피스트수도회는 가톨릭 수도회 가운데서도 청빈, 순명, 금욕 등에 가장 충실한 곳으로 유명하며, 국내엔 1987년 설립된 마산의 이 수녀원이 유일하다.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국내 유일의 수도원
스스로 ‘봉쇄’를 자처한 그가 봉쇄를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왜일까. 해안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동산에 있던 수녀원의 높은 담장 안으로 지난해 10월 굉음이 들려왔다. 걸음 소리조차 내지 않을 만큼 고요한 수녀원에만 머물던 장 수녀는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릴 정도였다”고 했다.
알고 보니, 애초 택지 조성을 위해 매립했던 지역에 조선기자재공장 설립을 추진하던 에스티엑스(STX)가 가사용 승인을 받아 선박 블록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나는 소음이었다. 수녀원 뿐 아니라 신라시대 때부터 조성된 380세대의 자연부락이 있고, 택지로 예정됐던 지역에 어떻게 기업과 마산시가 이런 공해유발 공장 설립을 추진할 수 있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봉쇄구역안의 수녀가 이미 이해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지역 경제를 살리자’는 논리 앞에서 바다의 생명이나 인권은 뒷전이었다.
회사 쪽에선 수녀원을 이전시켜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장 수녀는 “아무리 봉쇄구역 안에서만 살아왔지만, 홍합을 채취하는 등 이곳에서 생계를 꾸려가다가 난민처럼 뿔뿔이 쫓겨 갈 이웃 주민들을 두고 우리만 살 길을 찾아 나선다면 그게 수도자의 모습이겠느냐”고 말했다.
9일 동안 단식 호소 “경제 논리만 앞세워서야…”
그래서 장 수녀는 지난 84년 트라피스트수녀회에 입회한 이래 25년만에 ‘세상 속으로 외출’을 단행했다. 지난달 29일부터 9일 동안 마산시청 앞에서 단식으로 호소도 했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트라피스트수도회 베르나르도 올리베라 총장 신부에게 특별히 외출허가를 받아 한 외출이었다. 급성 후두염에 걸린 채 빼빼 말라가는 그의 손을 잡고 “제발 단식을 풀라”면서 눈물 짓는 수정리 마을 주민들의 걱정에 단식을 풀긴 했지만, 그는 “경제 논리만을 앞세운 기업과 행정관청과 언론에 의해 사면초가인 주민들의 곁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장 수녀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세상에 말하고 있었다. 약자가 설 곳이 없는 ‘세상’속에서 ‘봉쇄’ 당한 주민들을 떠날 수 없어 봉쇄수녀원을 나섰다고.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