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책 펴낸 ‘수녀 출신’ 일아 스님
가톨릭 안맞아 개종 “관용·자유 찾아”
미국서 17년간 공부 열매…“이제 시작”
가톨릭 수녀 출신으로 불교 조계종에 출가한 일아(62·사진) 스님이 미국에서 17년 동안 공부한 초기 불교의 가르침을 책으로 담아왔다.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민족사 펴냄)은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삶이 생생히 담겨 있는 초기경전에서 가르침과 계율, 자비 실천, 수행 등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간추려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그의 처녀작이다.
60대라곤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해맑은 모습에 거침 없는 말투의 일아 스님은 서울여대를 졸업하고 여고 교사를 하다가 서울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에 입회해 6년간 수련생활을 하면서 계성여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가톨릭 수녀였다. 그는 1982년 수녀원을 탈퇴한 뒤 이듬해 순천 송광사에서 만난 법정 스님의 소개로 ‘조계종 비구니특별선원’인 석남사에서 법희 스님(현 석남사 선원장)을 은사로 출가했다.
스님은 “어떻게 해서 개종하게 됐느냐”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나는 가톨릭을 좋아한다”면서 “다만 나에겐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가톨릭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비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면서 “나로서는, 내 종교가 아니면 안된다는 배타성과 독선적 교리를 넘어선 관용과 자유를 찾았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러면 애초 왜 수녀가 됐을까. “미션스쿨인 서울여대에서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독신 수도 생활을 동경했고, 그 때는 종교적 차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스님은 머리를 빡빡 깍고 있는데 이상해 보였고, 수녀들은 멋있게 보여서 수녀회에 입회했죠.”
승복으로 갈아 입은 뒤 일아 스님은 운문승가대학을 졸업했다. 개신교학교인 서울여대와 가톨릭신학원에 이어 승가대까지 마침으로써 주요 종교의 대학과정을 모두 마친 셈이다.
40대 중반인 91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저명한 한인 불교학자인 박성배 교수가 재직 중인 뉴욕스토니브룩주립대 종교학과 학사 과정을 거쳐 웨스트대 비교종교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거쳤다. 처음엔 영어가 잘 들리지 않아 강의를 녹음한 뒤 한 자도 빼놓지 않고 노트에 적어 모두 외울 만큼 열성적으로 공부했다는 그는 지금도 온종일 책과 컴퓨터를 들여다 봐도 눈이 아프지 않다는 ‘타고 난 공부벌레’다.
초기 불교를 공부한 이유는 “과연 부처님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가르쳤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한국에서는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초기 경전을 푸대접하지만 서구에선 초기 경전 연구 열기가 뜨겁고, 언제든지 루이스 랭카스터나 아난다 구르거 같은 대학자들에게 모르는 것을 물을 수 있어서 여전히 미국에서 연구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처녀 때부터 남자엔 아무런 관심이 없이 오직 수도생활만 동경해왔다는 일아 스님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앞으로 초기 불교를 소개할 의욕에 소녀처럼 들떠 있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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