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신학자 이정배·이은선 부부
“유교, 기존종교가 잃어버린 세간의 도 회복
가족, 조상과 후손, 신과 인간이 어우러지게”
1월은 명절의 달이다. 신정과 구정(26일)이 동시에 있다.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다종교사회인 우리나라에선 명절 때가 되면 종교 간의 다른 예식으로 인해 한집안에서도 갈등을 빚는 경우가 다반사다. 가톨릭은 수만명의 순교자를 낸 뒤에 ‘조상 제사 의식’을 일정부분 수용함으로써 절충했지만, 개신교인들이 있는 상당수 가정에선 여전히 전통 차례상과의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여성들의 헌신을 요구하는 명절 차례상과 제사상에 대한 여성들의 거부감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유교는 종교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상태지만, 문화적으로는 어떤 종교인도 유교적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의 전통뿐 아니라 현재의 문화와 삶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기독교와 유교의 만남’을 주제로 오랫동안 연구하며 살아온 이정배 (54·감신대) 교수와 이은선(51·세종대) 교수 부부를 찾았다.
예배당도 없이 건물 한쪽 편을 빌려쓰는 조그만 교회서 예배
지난 4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장충동 앰배서더호텔 옆 한국대학문화원. 건물 1층의 조그만 강당에 있는 ‘겨자씨 교회’에서 막 주일예배를 마친 이들을 만났다. 이정배 교수는 전 월드비전회장 오재길 선생과 전 지속가능발전위원장 고철환 서울대 교수, 조병옥 전 이화여대 교수 등 40여명이 출석하는 이 교회의 설교 목사다. 이 교회는 예배당이 없을 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사례비를 받지 않고 봉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정배 교수는 개신교에서 널리 알려진 신학자다. 이은선 교수도 여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와 여성신학회 회장을 지낸 대표적인 여신학자다. 그런 그들이 거대한 교회들을 두고 왜 예배당도 없이 건물 한쪽 편을 빌려쓰는 이 조그만 교회를 택한 것일까? 교회의 팽창을 위해 전통문화와 종교를 배타하기에 급급했던 복음주의자들과 달리 한국인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유교를 공부하며 전통과 기독교, 신앙과 삶의 일치를 추구해온 그들다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정배 교수는 신학의 토착화를 위해 앞서다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교수직과 목사직, 신자직까지 박탈당했던 변선환(1927~95) 감신대 학장의 애제자다. 이은선 교수는 외국선교사들에 의해 이식된 교회를 한국인에 의한 토착적 교회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한국그리스도교회연합회 회장이던 신학자이고 목사이자 화가이며 영성가였던 이신(1927~81)의 딸이다. 변선환과 이신은 동년배 친구였다. 변선환은 미국 남부의 명문 밴더빌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촉망되던 장래를 버리고 주류 교단이 아닌 보잘것없는 교단을 택해 평생 불우한 삶을 자처하면서 ‘소신’을 지킨 이신을 존경했다. 이정배와 이은선이 만나 결혼한 것도 변선환과 이신 두 친구의 의기투합에 의해서였다.
둘이 결혼한 뒤 변선환은 애제자와 친구의 딸을 자신의 스승인 스위스 바젤대 후리츠 부리 교수에게 보낸다. 교토포럼에서 활약했던 후리츠 부리 교수는 신학의 지평을 동양으로 확대한 현대신학의 거장이다. 후리츠 부리로부터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을 시도했던 변선환은 이정배와 이은선에게 ‘기독교와 유교의 만남’을 시도해보도록 했다. 이에 따라 ‘부리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후리츠 부리 교수의 지도 아래 이정배는 주자학을, 이은선은 ‘페스탈로치와 왕양명’을 연구했다.
새벽마다 성경과 함께 유교 경전들 읽으며 ‘수양’
그 뒤 이정배 교수는 감신대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장으로서, 대화문화아카데미 프로그램 위원장 등으로 동서 종교 사상의 만남과 교류를 이끌었다. 이은선 교수도 다시 성균관대 한문학과 대학원에서 다시 박사학위과정으로 유학을 공부했고 최근 이를 토대로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한국유교의 종교적 성찰과 여성주의>(모시는사람들 펴냄)를 출간했다.
이은선 교수는 학문에서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도 매일 새벽이면 일어나 성경과 함께 유교 경전들을 읽으며 ‘수양’을 오랫동안 해왔다는 게 남편의 귀띔이다. 그처럼 그는 삶 속에서 기독교와 여성, 유교적 윤리와 인격 수양의 도(道)를 합치하기 위한 삶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기독교적 토양에서 배태된 페미니즘에서 ‘유교’는 배척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유교적 예식들은 대부분 여성들만 고달프게 하는 ‘허례허식’으로 간주됐고, 여성들이 감당해야 할 제사와 차례는 조상에 대한 감사를 통한 인간적 도리와 화해를 모색하는 자리로서보다는 미신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이은선 교수는 “신자와 구별되는 성직자를 두어 세간과는 다른 초월적 세계를 강조하며 성(聖)과 속(俗)을 분리하는 다른 종교들과 달리 유교야말로 성직자도 두지 않고, 세간 즉 가정과 삶과 교육, 경제활동 등에서 구체적으로 성스러움을 현실에서 실현해 일상에서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회복시켜주게 한다”면서 “기존 종교들이 잃어버린 세간에서도 도(道)를 되찾게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선 교수는 책에서도 조선시대 여성성리학자로서 학문적 깊이와 수행에서 높은 경지에 도달했던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학문과 삶을 소개하면서 “어떤 시대든 시대적 상황과 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에 조선시대엔 여성들도 그 틀에서 자유스럽지 못했지만, 이젠 많은 것이 변한만큼 여성들도 주체적인 우주관과 종교관을 갖고 일상을 성화시키는 내재적 힘을 지녔던 유교적 가치들을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월이면 제사와 차례가 4번 연이어 있다는 이들 부부는 그때는 부모님이 가장 좋아했던 몇가지 음식만을 정성껏 해서 차려놓고 조상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하면서 절도 한단다. 죽은 뒤가 아니라 일상적 삶 안에서 가족끼리, 이웃끼리, 조상과 후손이, 신과 인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하기 위해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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