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장하는 정동채 전문화관광부 장관
집에서 아침마다 108배 절수행을 하는 정동채 전장관
집에 모신 예수상 마리아상 불상 관세음보살상 등
정동채(64)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지원포럼 회장은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3년6개월), 노무현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 문화관광부 장관(2년1개월), 국회의원 3선 등을 거쳐 그야말로 잘나간 정관계 인사다. 그런 그가 책을 냈는데, 회고록이 아니라 <봉정암에서 바티칸까지>(동연 펴냄)라는 ‘종교 순례기’다. 모르는 이들은 정치권 인물이 웬 ‘순례기’냐고 하겠지만, 그가 국회와 중앙부처에 있을 때도, ‘수도승 아닌 수도승’이었다는 걸 아는 이들은 안다.
그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본부의 불교위원장을 맡았다. 그런데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그것도 주일(일요일) 성당 미사를 빠진다는 건 상상도 못하고, 외국 여행을 할 때도 아무 성당에나 들어가 주일미사를 드릴 정도로 냉담자들과는 전혀 다른 독실한 신자다. 그런 그가 ‘불교위원장’을 맡았으니, “아무리 불교에 사람이 없기로서니”라며 불교계에서 화를 낼 법도 하건만, 그를 뜨악하게 대하는 스님은 많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절집 스님들과 친숙하다.
문화관광부 장관 시절 업무로 절에 갈 일도 많았지만 쉬는 날마다 따로 찾아다닐 정도로 절집에 심취했다. 장관 시절 순례한 절만 73곳이었다. 그사이 불자들도 평생 한번 해보길 소원하는 5대 보궁(석가모니 진골사리를 모신 곳)인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오대산 상원사, 영축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을 모두 순례했다. 설악산에서 수렴동 계곡과 깔딱고개를 5시간 동안 치고 올라가야 해 젊은이들도 혀를 내두르는 봉정암에 오를 때는, 스님이 ‘한달에 한번씩 연료를 실어나르는 헬리콥터가 올 때 오라’고 배려했지만, ‘어떻게 성지를 그런 식으로 순례할 수 있겠느냐’며 여느 보살(여성 불자)들과 마찬가지로 쌀과 미역을 메고 올라갔다.
그는 서옹 스님, 청화 스님, 대행 스님, 송담 스님 등 불교계의 고승들을 찾아뵙고 가르침도 받았다. 그 가운데 계행을 철저히 지키며 시자에게도 경어를 쓰는 청화 스님의 삶엔 감복을 받아 그분의 저서를 필사하며 공부하기도 했다. 법륜 스님의 정토회 수련원에서 하는 4박5일간의 ‘깨달음의 장’에 참여해 직접 수행을 하기도 했고, 2009년엔 전북 순창 구암사에서 2주간 단식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매일 새벽마다 집에서 날마다 108배를 하고 있다. 해외 출장 때조차 어떻게든 108배를 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절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래서 법정 스님은 그에게 ‘천불종’이라고 불렀다. 천주교 신자이면서 불교에 심취한 부류라는 것이었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살레지오수도회(살레시오회)가 설립한 광주사레지오고를 졸업한 그는 신학교에 가서 사제나 수도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딸 여섯을 낳은 끝에 나은 외아들이 사제가 되는 걸 어머니가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자 대학 1학년을 마친 뒤엔 사제가 되어도 독신을 고집하지 않는 성공회 쪽의 박요한 신부를 찾아가 성공회 신학교 편입을 상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군대에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한 뒤 <합동통신>과 <한겨레> 기자로 활동하면서 꿈꾸던 수도자의 길은 멀어져 버렸지만, 마음만은 한시도 그 길을 떠나지 않았다. 국회의원을 하던 12년간 단 한번도 ‘문화관광위’ 상임위원회를 떠나지 않은 것도 종교인들과 접촉하는 게 그렇게 편하고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1993년 아태평화재단 창립 때 김대중 이사장 비서실장으로 간 이후 오랫동안 디제이 밑에서 일하면서 그의 영성 세계에도 깊은 감화를 받게 되었다. 디제이는 1960년대 초, 장면 박사의 권유로 천주교에 귀의했고 부인 이휘호씨는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총무를 지낸 독실한 감리교 신자다. 부부간에 종교가 다른데도 아무 문제 없이 조화롭게 지내는 걸 보고 그도 타 종교에 대한 터부를 벗고 좀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갔다.
더구나 유신정권에 의해 일본 도쿄에서 납치돼 살해 위기를 넘긴 뒤 수차례의 죽을 고비와 전두환 군부에 의한 사형선고를 신앙의 힘으로 극복해 김수환 추기경도 감명을 표한 바 있던 디제이의 신앙 자세를 배웠다. 디제이는 그 바쁜 틈에 짬을 내면 각 종교 경전들을 보고, 노자·장자를 읽곤 했는데, ‘좀 쉬시라’고 권유하면, “이게 쉬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도 그 탐구욕을 본받아 성경과 불경, 유학 경전과 성리학, 동학 경전을 거쳐 무슬림 꾸란(코란)까지 보게 됐다.
“108배를 하며 정신이 맑아지고, 각 종교의 경전을 두루 본 뒤 성경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어졌다. 한국 같은 다종교 사회에선 물론 지금과 같은 글로벌화한 세상에서 다른 문명을 이해하는 열쇠인 타 종교 이해는 필수다. 그런데도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고, 나아가 고의적으로 왜곡하는 일부 성직자들의 도그마는 세상에 핵무기 같은 위험한 무기를 설치해 불화와 전쟁을 부채질하는 것과 같다.”
오랜 순례의 여정의 성찰을 책에 담아낸 그는 “다른 것을 배타하는 독선이야말로 진리와 가장 거리가 먼 것”이라며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종교라면 무조건 배타해 증오심을 부채질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은 배워 확인하고, 같은 것은 더 확장시켜 나가는’ 성숙한 자세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