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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복지보다 정이 더 중요하다

등록 2015-08-19 09:02

‘행복한 삶’ 위해 복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

방한한 독일 심리치유사 이승연씨

독일은 정치·사회·경제뿐 아니라 복지와 시민의식과 공동체성에서도 모범적인 나라로 여겨진다. 특히 독일은 2차 대전 패전의 폐허 위에서 재건된 나라여서, 우리나라의 모델이 되어 왔다. 과연 독일인들의 내면 풍경은 어떨까.

35년째 독일 함부르크에서 살고 있는 이승연(58)씨는 화가이자 선(禪) 수행을 이끄는 법사이자, 독일의 공인 심리치유사다. 1970년대 암울한 시절 서울대 대학신문 삽화를 그리던 그는 서울대 응용미술학과와 대학원을 마치고 1981년 독일 국가 장학생으로 유학을 갔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였던 그는 함부르크대학 유학 도중 가톨릭학생회에서 만난 독일인과 1993년 결혼해 딸 하나를 두고 있다.

독일에서 티베트 명상과 참선을 해 불교심리에 눈을 뜬 그는 세계에 한국의 선을 전한 숭산 스님이 설립한 관음선종의 함부르크 모임을 이끄는 법사다. 또 3년 과정의 티베트불교심리학 과정을 마친 뒤, 따로 공부를 더 해 국가 공인 심리치유사 자격을 얻어 현지인들의 심리 상담을 하고 있다. 지금은 화가보다는 심리치유상담가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독일인 의사인 남편, 외동딸과 함께 8월 한달간 고국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방한한 이씨를 만났다.

“독일인들 부모 자식 간 애착관계 형성되지

않고, 가족 이웃 간 고립되고 경직된

삶이 한국인 모델 될 수 없다. 한국인들

이 무교와 도교의 영향으로 감정 표출

자유로운 점이 정신건강에 더 낫다.”

*함부르크 자택의 이승연씨 뒤의 서예 ‘달공’(達空·공에 통달함)은 그가 참선을 배운 야코프 펄(우봉 스님)에게 송광사 방장이던 구산 스님이 써준 것을 야코프 펄이 열반 전 그에게 전해준 것이다. 

-화가보다 심리치유사로서 삶을 살게 된 이유는?

“50살 생일을 앞두고 지난 삶을 되돌아보았다. 남부럽지 않은 삶이었지만 내 내면은 행복보다는 불행하다고 느껴졌다. 예술, 영적인 여정,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소통하는 것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까지 세 가지가 따로 놀고 있었다. 화가는 홀로 작업실에서 작업한다. 나머지 삶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불교심리학 공부와 참선을 병행했다. 이때 내면의 상처에서 상당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자 자신에게만 몰입했던 그림 세계도 타인을 위로하고 세상을 연민하는 쪽으로 밝게 변화됐다. 한때 위기에 몰린 남편과 관계도 좋아졌다. 숭산 스님이 말한 ‘돈트 메이크 애니싱’(어떤 것도 만들려 들지 마라)이라는 말대로 하면서, 많이 편해졌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억지로 변화시키려 들기보다는 자신을 더 많이 받아들이게 됐다는 얘기다. 자신을 좀 더 선명하게 보면, 새로운 나를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원래의 내 모습을 더 잘 알게 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남이 안 좋은 소리를 해도 별로 상관하지 않고, 눈치도 덜 보게 된다. 아등바등할 것도 없고, 일이 힘들다고 무서워할 것도 없다.”

-불교와 서양의 심리학을 동시에 만났는데, 차이점은?

“부처님이 최초의 심리치유사라는 말도 있지만, 현대 심리치료 기법은 서양에서 대부분 개발됐다. 스님들이 이끄는 방식은 상대방이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도움이 안 될 때도 있다. 심리치유는 상대가 스스로를 볼 수 있게 하는 게 좋다. 그러나 서양 심리학은 이론은 발달해 있으나 수행 방법을 모르는 게 문제다. 그래서 제가 공부한 티베트불교심리학에 근거한 카루나 트레이닝은 치유자가 명상을 많이 하게 하고, 상대방에게 해결점을 찾아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해결 방책을 깨달을 수 있도록 거울이 되어주는 데 중점을 둔다.”

-우울증 자살, 번아웃(탈진증후군)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의 심리치유를 위해 조언한다면?

“하루에 30분이라도, 스마트폰, 텔레비전을 마주하지 않고, 쉬며 자기 존재를 느낄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아픔도, 기쁨도, 쉬지 않고 밀려드는 외부의 자극 속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마비되어 간다. 우리는 또한 뭐든지 너무나 잘하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더 잘해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치기보다는 무거운 짐을 얼마나 잘 지고 왔는지, 스스로가 진정으로 위로해줬으면 한다.”

*독일 함부르크 시내에 있는 심리치유상담실에서 참선을 하고 있는 이승연씨.

-한국 사회의 모델로 꼽히는 독일인들의 심리는 어떤가?

“전반적으로 독일인들의 마음은 한국인들보다 더 경직돼 있어 보인다. 프러시아(프로이센)식 정신을 이은 히틀러의 나치즘에서 온 국민이 무장해제된 게 70년밖에 안 됐다. 전후 이를 극복하며 살기에 급급했다. 우울증 환자가 많다. 한국은 유교적인 경직성도 있지만 무교나 도교의 바탕이 있어서 훨씬 자유롭게 감정을 표출한다. 그러나 독일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경직된 구조와 프러시아적인 절제와 엄격함이 너무 오래 지속돼왔고, 플라톤 이후 서양에선 몸과 정신은 분리되어 몸은 껍데기로 천시된 경향이 있었다. 2차 대전 이후의 독일인들은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문화를 잃었다.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출이 그들에겐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한국의 영화는 심각한 주제인데도 웃고 눈물나게 하지만, 독일 영화의 대부분은 무겁고 침침하다. 눈물이 나게 하기보다는 생각하게 만들고, 마음은 얼어붙게 한다. 다만 독일에선 심리치유를 받는 것에 대해 한국인들만큼 거부반응이 없다. 독감에 걸린 듯 많은 사람이 심리치유를 받는다. 그만큼 털어놓고 싶은 것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가족끼리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가?

“우리나라에선 아기를 엄마가 데리고 자는 것이 당연하지만 독일에선 어려서부터 떼어놓는 걸 당연시한다. 나도 딸을 왜 데리고 자느냐는 남편의 반발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독일에선 자식들이 어머니의 각별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의 시엔 어머니가 많이 등장하지만 독일의 시에서 어머니를 찾아보기 어렵다. 의사의 아들인 남편도 전형적인 독일의 중상류층으로 볼 수 있는데, 부모와 만날 때 아버지와도 악수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할 때도 아버지는 넥타이를 매고 격식을 갖추어 마주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가족들 간엔 거리가 있고 별로 정이 없다. ‘정’이란 말 자체도 독일어엔 없다. 독일말에 ‘양탄자 밑에 집어넣어 버린다’는 표현이 있는데, 좋지 않은 사건이나 감정은 없는 체한다는 거다. 감추어진 감정은 사라진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 밀치고 올라올 테니 좋은 게 아니다.”

-그러면 한국인들보다 더 고립되고 외롭다는 것인가?

“그렇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우리보다 산업화가 일찍 시작되고, 개인주의가 더 심화돼 모두가 혼자 사는 데 익숙하다. 성인이 되면 혼전이라도 자식들이 부모의 집을 떠나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렇다고 외롭지 않은 게 아니다. 한국에선 친척이라도 서로 도우며 지내는 경우가 많지만, 독일에서 내 이웃 중엔 그마저도 없이 고립돼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노인들이 많다. ‘어르신네’가 없는 독일의 노인들은 한국 노인들보다 더 불행하다.”

-복지가 이런 단점을 보완해주지 않는가?

“소통이 무너지면, 복지로 보완할 수 없다. 그래서 제가 아는 함부르크의대의 클라우스 되르너 사회정신과 교수는 중세의 마을공동체를 회복해서, 노인들의 외로움과 우울증도 해소하고, 원하지도 않는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 아니라, 누구나 원하는 대로 자기가 살던 곳에서 생을 마칠 수 있도록 하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를 위해 교회의 공동체성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는 그동안 하느님 섬기는 일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는 사람을 섬기는 일을 할 때가 되었다면서, 타인을 돕고 싶어하는 마음을 활용해, 정년퇴직하는 사람들이 조를 짜서 몇시간씩 외로운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말동무도 하고 일상을 도우면, 요양원에 갈 필요도 없어지고, 그들도 외로울 때 또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마을과 소공동체들의 인간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복지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놓아도 그 안에 들어가 살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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