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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주는 것이 곧 받는 것

등록 2019-06-19 19:11

 오직 정해진 코스만 간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때론 행로를 벗어나 뜻밖의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전국생태마을네트워크가 지난 7일 충남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 풍류도예술원에서 연 공동체 축제에 갔다가 풍류도예술원 신현욱 원장이 “이 인근에 도인이 있다”고 했다. 신 원장이 우연한 기회에 만난 이후 자주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는 노인이 있다는 것이다. 10분 남짓 차를 타고 간 곳은 같은 대둔산 자락이지만 충남의 도계를 넘은 전북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의 한 농가였다. 강희목(96) 선생이 흰옷을 입고 객을 맞았다. 선풍도골의 외모에 그 나이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강건한 노인이 ‘후천’(後天)으로 입을 열었다.  후천은 주로 신도안을 비롯한 계룡산·대둔산·모악산 일대에서 조선조 후기와 일제강점기 암울한 세상의 변화를 희구하던 민초들 사이에서 풍미하던 종교 사상이었다. 그래서 ‘그런 유의 이야기를 재탕 삼탕 들어야 하는가’라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 그래도 노인 한 분 한 분이 박물관이라는 생각으로 경청한 지 세 시간. 견강부회가 없지 않지만 그의 말엔 분명히 뼈와 살을 발라낸 졸가리가 있었다. 그는 “양심이 곧 천국이고 극락”이라고 했다. 
  “하늘 나라는 이곳에 있거나 저곳에 있는 공간이 아니다. 내가 나라요, 내가 하늘이다. 내 가슴과 일 안에 있는 사랑과 기쁨과 창조의 빛을 내는 그런 삶이 하늘 나라다. 물고기가 물이 아닌 그 어디에서 온 것이 아니듯이 내가 하늘 나라가 아닌 그 어디에서 온 것이 아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고 갈 수 없듯이 내가 하늘 나라가 아닌 그 어디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 안에서 소생하고 생멸하는 물고기처럼, 우리는 이미 하늘 나라에서 태어나 하늘 나라에서 살고 있고 하늘 나라 안에서 사라질 것이기에 좋고 나쁘고, 아름답고 추하고, 태어나고 죽는다는 이원성이 사라지고, 사랑과 기쁨과 행복이 있으면 그곳이 하늘 나라다. 그러니 양심이 열리면 지금 여기가 그대로 하늘 나라고, 그대가 부처님이고 하느님이다.” 그는 주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의 부인(이정희)도 2년 전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 집에 누가 오든지 먹이고 재우고 대접한 걸로 유명했다고 한다. 강 선생은 부인이 떠난 뒤 홀로 살면서도 텃밭 500여평을 직접 가꾸어 검은콩, 검은깨, 오가피 등으로 환약을 만들어 복용해 건강을 유지하는데, 손님들에게도 그 약을 쥐여주며 베풀기를 멈추지 않는다.  “베푸는 것은 어디서 주든지, 얼마를 주든지, 무엇을 주든지 손해를 보지 않는다. 먼저 주고, 항상 주고, 없는 데 주어야 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 이 시간이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사람이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기쁨과 평화와 웃음을 주는 일이다.” 
 
  그는 이처럼 ‘주는 것이 곧 받는 것’이라는 인과를 모르고 자기 것만 챙기려는 것을 옛시대(선천)의 비양심으로 꼽는다. “저 사람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내 말을 듣지 말라는 것이요, 저 집에 가지 않는 것은 내 집에 오지 말라는 것이다. 저 사람을 내 친구로 만들려면 내가 먼저 저 사람 친구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만 이롭게 욕심 부리는 것은 저 사람은 손해를 보라는 것이다. 자기 것이 중하면 남의 것도 중한지 알아야 한다. 너를 불신한 것은 곧 나를 불신했다는 것을 깨치고,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존중해야 한다.” 
그는 “과거는 양반 세대, 현재는 물질 세대이고 앞으로는 양심 세대가 온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애초엔 글 공부를 해 과거시험을 보아 양반이 되었다. 그러나 양반은 쓰는 재주만 있지 버는 재주가 없으니 나라를 망해 먹었다. 점차 양반 같은 신분도 사고팔게 되어 사람들은 상놈의 멸시를 피해 양반과 같은 권세를 사기 위해 너나없이 돈벌이에 혈안이 되었다. 일심전력해 돈 세대, 물질 세대가 되어 이만한 부도 일구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자기 이익만 원하게 되니, 자기에게 손해를 끼치는 비양심가를 누구나 꺼리고 양심가들을 찾게 된다. 모두가 양심가를 찾으면 양심의 시대가 올 수밖에 없다. 세상은 홀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고, 양심가가 양반이나 부자보다 대우받으면 이기주의 시대가 양심의 시대로 변혁된다.”  그의 이런 사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는 “한문도, 불경도, 성경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 개벽사상들은 젊어서부터 두 도인으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했다. 한 명은 태조 왕건이 창건했다가 폐사 지경이었던 개태사를 재건한 김광영 보살이다. 그에 따르면 김 보살은 일제강점기 시절 방치돼 있던 미륵 삼존불을 발굴해 세웠고, 병자들을 고치는 신이한 능력을 보였으며, 평생 개태사에서 국태민안과 평화통일을 기원했다고 한다. 또 한 명은 전남 영암 출신의 김간수 선생으로, 남의 집 머슴살이 중에 넘어져 고통받던 중 도를 깨친 이후 후천개벽을 주장했다고 한다. 
  강 선생은 1957년 명륜회를 창설해 둘에게 배운 개벽운동을 펼쳤다. 일제가 말살한 백의민족 정신을 되찾기 위해 흰옷 1000벌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심 봉사처럼 양심의 눈을 떠 ‘마음이 맑은’ 심청이 되자며 심 봉사 잔치와 효 운동을 벌였다. 또 백일잔치, 돌잔치보다 아기가 태중에 있을 때 마음 간수가 중요하다며 태중교육 운동을 펼쳤다. 그는 “양심이 드러난 후천이 되면 신분과 빈부 차별이 없어지며, 여성과 어머니가 더욱 중요하고 앞서게 된다”며 말을 맺었다.  “아이들은 치우는 것과 힘든 일을 싫어하기 마련이다. 이제는 어른들까지 그렇다. 그러나 어머니는 괴로움과 피곤을 감수하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들 놀고 즐거운 것만 찾아 헤맬 때 고난을 마다하지 않은 분이 예수요, 석가요, 공자다. 가정에도 회사에도 나라에도 남이 하기 싫은 고난을 감내해 어머니 같은 분이 있어야 가정 꼴, 회사 꼴, 나라 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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