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 역사의 가톨릭은 전통과 위계, 전례를 중시하는 ‘철옹성’이다. 그만큼 교회 밖과 경계가 뚜렸하다. 성서나 교리가 아닌 인문학이나 대중문화는 경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서울 강남구 청담동성당 주임 김민수 신부가 머무는 성당은 달라도 많이 다르다. 그가 서울 은평구 불광동성당에서 시작한 ‘가톨릭 독서콘서트’가 대표적이다. 이 콘서트는 전국 여러 성당으로 퍼져나가 90회를 넘기며 성당의 인문학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9일 청담동성당에서 김 신부로부터 독특한 사목의 이유를 들었다. “신자가 되기 전에 사람이 먼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성당에 나온 신자 중에도 밖에선 비신자들보다 못한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인문학을 통해 사람으로서 품성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그는 2012년 불광동성당 주임으로 부임한 지 6개월만에 가톨릭 독서콘서트를 시작했다. 2000년부터 무려 17년간 한국가톨릭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를 지낸 그는 가톨릭 언론인들과 공조해 콘서트를 열었다. 조정래, 한비야, 공지영, 정호승, 안도현, 김형석, 혜민스님 등 인지도 높은 강사들을 초청하자 성당이 미어터질만큼 신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는 수천·수백만원의 강사료를 지불해야 하는 유명강사들에게 ‘성당의 특수성’으로 양해를 구했고, 대부분이 50만원 가량의 강사비만으로도 흔쾌히 초청에 응해주었다. 불광동에서 입소문이 난 독서콘서트는 서울 도림동성당, 청담동성당, 중계양업성당과 대구 김대건성당 등으로 번져가고 있다.
2년 전 청담동성당에 부임한 이후 김 신부는 두 달에 한권씩 인문학 책을 선정해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신자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또 주보엔 책에 대한 서평을 직접 써서 독서열을 돋운다. 성당 안에 작은도서관도 지어 오는 9월 개관할 예정이다. 작은도서관 옆엔 ‘책 약국’도 열어 독서치유사가 신자들에게 맞춤형 책을 고를 수 있게 상담도 해줄 계획이다. 항공대를 졸업하고 서울가톨릭대를 다시 다녀 1985년 서품을 받은 김 신부는 미국에서 신학이나 철학이 아닌 커뮤니케이션으로 석·박사과정 공부를 하면서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대의 징표’를 읽는 눈이 떴다고 한다. 2005년엔 김수환 추기경 시절 구중서·노길명·조광 교수 등 가톨릭 지성인들이 설립한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원장을 맡았다. 교계 어른들이 그의 현실 감각을 높이 산 덕분이었다. 그는 이 연구원 산하에 디지털과의존연구소를 열어 디지털 중독을 예방하는 전문 강사를 양성하고, 종교간 협력을 통해 스마트쉼문화운동에 나선 공로로 최근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새로운 시도는 인문학 독서만이 아니다. 김 신부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착안해, 성당 안에서 60여개의 각종 동호회 부스를 차린 박람회를 열고 있다. 신자들이 주일 오전 9시·11시 미사 뒤에 퇴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부스를 들리도록 하고, 동호회에선 희한한 의상도 입고 노래와 쇼를 하면서 회원을 모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성당에도 지역별로 구역, 반 등 소공동체가 있다. 그러나 너무 거주하는 지역만 중심으로 의무적으로 모이라면 답답해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은 자유로운 노마드 시대 아닌가. 좀 더 유연하게 취향대로, 관심사대로 또 다른 공동체를 이루도록 해주는 게 필요하다.” 이 박람회를 열 때마다 200~300명의 신자들이 취향대로 새롭게 소속될 공동체를 찾았다. 소문이 나면서 이 박람회를 도입하는 성당들도 늘고 있다. 걷기와 여행은 요즘 시대의 대세다. 김 신부는 이런 대중들의 욕구를 적극 살려주고 있다. 묵주기도와 성체조배 방식에서 벗어나 돌아다니고 걷지 않으면 몸살이 나는 신자들을 위해 불광동성당 재임 때부터 ‘우하하 성지순례단’을 만들었다. ‘우하하’는 ‘우린 하느님 안에서 하나’라는 의미다. 한달에 한번씩 전세버스 두 대로 전국 111곳의 성지를 샅샅이 훑고 다녔다. 한번도 빠지지 않은 40여명 중엔 89살 두 할머니 신자도 있었다.
130여명의 성당 사목위원을 비롯한 신자들과 늘 카톡을 공유하는 그는 소통을 중시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중세부터 근세까지는 교회문화가 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근대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이뤄져 문화산업이 발전하면서 대중문화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신자들도 마찬가지다. 대중문화를 퇴폐문화로 부정적으로 보면 세상과 벽을 쌓을 수밖에 없다. 복음의 빛 속에서 성당 안에서도 대중문화를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