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유마거사인 `우리는 선우' 제천지회 김연호 회장.
준 것은 남고, 가진 것은 없어진다 채울수록 허기진듯 아성을 쌓아가는 부자들보다 ‘우리는 선우 제천지부’ 김연호 회장이 더 부자인 이유는? 그는 수십년간 모은 골동품을 왜 남김없이 기부했을까. 누가 부자일까. 99섬을 가지고도 남이 가진 1섬을 빼앗아 100섬을 채우려는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일까. 1섬을 가지고도 절반을 나눌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일까.
물속에서도 갈증을 느끼는 물고기처럼,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커지는 허기를 채우려 무언가를 빼앗기 위해 아우성치는 싸움판에서 벗어나 연민으로 중생을 돕는 이가 ‘보살’이다.
충북 제천시 의림대로 15길 24. 제천시내 한가운데 연꽃처럼 앉아 있는 중앙공원 뒤꼍에 진주동물병원이 있다. 무애문(無碍門)이란 편액에 대문 기둥의 주련까지. 동물병원이라기보다는 절간 같은 곳에서 김연호(61) 원장이 맞는다. 1년 내내 4대 보살(문수·관세음·지장·보현보살)을 호념을 하며 오체투지로 새벽을 열기 때문일까. 요즘 소 사육농가들을 찾아 구제역 예방주사를 놓느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동분서주한다는데도 소년처럼 해맑다.
그는 ‘우리는 선우 제천지회’ 회장이다. ‘우리는 선우’는 1992년 박광서(서강대)·성태용(건국대) 교수 등이 주축이 돼 창립한 ‘재가(승려가 아닌 불자)불교 운동 단체’다. 인적·물적 토대를 제공하면서도 기독교에서 평신도운동이 기를 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도 승려가 아닌 재가자들의 운동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선우 제천지부’는 지난 5월 부처님 오신 날 20㎏ 쌀 80포를 주민센터와 복지시설, 학교 등을 통해 홀몸 노인 및 불우청소년 가정에 전했다. 이들이 중앙공원에 ‘자비의 등’ 달기 운동을 해 매년 수십가마씩 자비의 쌀을 나눈 지도 10년이 넘는다. 또 인근 군부대에 부식비를 지원하고, 복지단체와 불교운동단체에 매달 1만원씩 지원하는 보시운동도 펼쳤다. 박노자 교수와 청전·현각·혜민 스님 등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시민강좌도 열었다.
김연호 회장과 부인 권선씨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란 보살도를 펼친 붓다 당시 재가거사 ‘유마’를 따라 그들도 배고픔과 슬픔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120여명의 회원이 함께하는 이들은 ‘우리는 선우’ 서울본부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벌여 본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들은 얼마든지 자체 건물이나 사무실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은 가난한 이웃을 돕거나 소신을 펼치는 승려들을 찾아 돕는 데 모든 돈을 쓰고 돈을 쌓아두지 않았다.
이는 땅이나 건물과 같은 재산이 초심으로 공덕을 베푸는 데 해가 될 뿐이어서 쌓아놓지 말고 베풀어야 한다는 김 회장의 비움과 나눔의 철학에서 비롯됐다. 그도 한때는 골동품이 쌓여가는 재미로 살아가던 때도 있었다. 제천에서 공무원을 하다가 동물병원을 개원한 뒤 집 살 생각도 하지 않고 보험이나 저축도 하지 않은 채 돈을 버는 족족 골동품을 사모았다. 값비싼 분청사기와 고서적을 비롯한 골동품이 집 안 가득 쌓였다. 그러니 집을 비울 수도 없었다. 소유는 그를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더욱 부자유스럽게 했다. 그는 어느 날 “욕망이야말로 모든 불행의 근원”임을 자각했다. 그래서 15년간 모아 전재산이나 다름없던 수십억원대의 문화재 670점을 1990년부터 최근까지 4차에 걸쳐 청주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어떻게 온 정성을 다해 수십년간 모은 골동품을 아낌없이 내놓을 수 있느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준 것은 남고, 가진 것은 없어진다.” 그는 첫 기부 이후 1992년 창립된 ‘우리는 선우’ 설립자 박광서 교수가 “세상을 위해 돈을 가진 사람은 돈을, 지식을 가진 사람은 지식을, 시간을 가진 사람은 시간을 내놓아야 한다”는 보시 철학에 전적으로 공감해 제천에서 재가불교운동을 펼쳤다. 그는 “작은 도시의 신행단체가 불우이웃을 도우며 신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보살 수행으로 새벽을 열면서 모든 일에 모범을 보여준 7분의 원로를 비롯한 좋은 도반들 때문”이라고 공덕을 돌렸다.
시민강좌를 열고 있는 김연호 회장 사진 우리는선우 제천지회 제공
김 회장에게 또 잊을 수 없는 분이 있다. 2001년 인도 히말라야의 다람살라에서 만난 티베트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였다. 어머니를 여의고 매일 2000배씩 10만배 기도를 한 뒤인 그때 그는 “가장 좋은 수행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달라이 라마는 “최선을 다해 남을 도우세요. 아니면 적어도 남에게 주는 피해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종교가 없더라도 남에게 친절하고 온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이 곧 훌륭한 수행법입니다”라고 답했다.
그의 부인인 권선(59)씨와 경희대병원 정신과 의사인 장남 영종씨, 출가한 차남 여철 스님도 모두 이 가르침을 모토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다. 진해 해군사관학교 법사인 여철 스님이 지난해 말 졸업생들의 100일간 태평양 항해 여행에 동참한 뒤 130여명의 생도 가운데 무려 70명이 불교에 귀의한 것도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과 친절의 귀결로 보고 있다. ‘내 복, 내 것만 챙기는 데서 모든 다툼과 화가 생겨난다’는 그가 울타리를 걷고 손짓한다. 함께 행복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열어가기 위한 벗이 되자고.
제천/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