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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병동 주혜주교수의 <마음극장>

등록 2014-03-19 18:39

<마음 극장>을 펴낸 주혜주 교수

지난 14일 서울 종로5가 연동교회 다사랑카페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남편인 이근복 목사와 함께 한 주혜주 교수

토크콘서트에서 두딸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주혜주 교수. 딸들은 늘 새벽에 병원에 나가기 위해 어두운 곳에서 불도 켜지않은채 밥을 먹고 있는 등으로만 엄마를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자신은 가족 살림을 위해 정신과병동에 나가고, 작고한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키워주었고, 남편은 이땅의 약자들을 위한 삶을 살도록 했다.

이근복 목사가 목회했던 새민족교회 교인들과 함께

“정신과 병동은 생각만 해도 두렵다고요? 거기에 입원한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르고 잘못된 인간들이라고요? 나도 조(울)증이 좀 있는데요. 당신은 커피중독이나 알코올 중독 없으세요. 좁은 공간에 들어가면 답답한 공황장애는 없으세요. 망상은요?”

<마음 극장>(인물과사상사 펴냄)이란 책을 낸 주혜주(60·경인여대 간호학과)교수를 만났다. 주 교수는 서울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18년 동안 서울대학병원 정신과병동에서 간호사를 하면서 정신과 환자들을 가장 가깝게 지켜본 산증인이다. 18년 가운데 16년간 수간호사를 했다. 모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마치고 간호사로 보낸 시간만큼을 후학들에게 ‘정신간호’를 가르쳐왔다.

 그는 ‘정신과병동 환자’들의 ‘무죄’를 적극 변론하는 변호인처럼 굴었다. 그가 처음 정신과병동에 발령을 받았다고 했을 때 “정신병 옮으면 어쩔거나”라는 어머니의 걱정대로, 그는 환자들과 너무도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일까.

 <마음 극장>이란 ‘정신과 병동’을 뜻하는 말이다. 1977년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들어간 정신과병동엔 시대상을 반영하듯 “중앙정보부가 미행한다”는 중년 환자가 적지않았다. 1990년대 초반엔 텔레비전 뉴스까지 등장해 초등학생들을 떨게한 ‘홍콩 할매 귀신’으로부터 피해망상을 호소하는 어린이 환자도 많았다. 또 지금은 대통령이 된 ‘박근혜’를 텔레비전에서 보며, 머지않아 결혼할 것이라고 꿈이 부풀어 이야기하는 남자 환자도 있었다. 그런 환자는 ‘귀여운 정도’였다.

언젠가는 정통으로 얼굴을 때려 수간호사 체면도 잃은채 외진 치료실 작은방에 온종일 울게 환 조울증 환자도 있었다. 100킬로그램이 넘는 중년남성 환자가 작은 환기통을 통해 도주해 기겁을 하게 한 적도 있었다. 한번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환자들을 데리고 영화 <취권>을 보러 극장에 갔다. 남자 환자가 화장실에 가면 의사가, 여자환자가 화장실에 가면 간호사가 따라가 감시하게 돼 있었다. 그런데 남자 환자가 화장실에 가는데도 영화를 보며 웃느라 바쁘던 의사는 “이렇게 재밌는 영화를 두고 도망갈리 없다”며 영화를 계속 보았다.

그런데 남자 환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호텔같은 좋은 시설에, 미모의 간호사들이 최고의 간호를 해주며, 온갖 오락 치료로 웃겨주는데 왜 집에만 가려는 것이지?”라며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차 80년대초 싱가포르로 연수를 가 3개월을 지낼 때였다. 당시 한국엔 통행금지가 있던 때여서 처음 2개월은 물 만난 고기처럼 밤마다 쏘다니며 거리를 활보했다. 그런데 3개월째 접어들자 김치찌개가 아니면 거들떠보기도 싫고, 하늘에 떠가는 비행기만 보아도 눈물이 나왔다. 그 때 그는 “누구나 집에 돌아가고 싶은게 정상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간호사 초년시절 뭐든게 비정상적으로 보이던 환자들의 마음이 그의 마음 극장 속으로 쏙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그 뒤부터 그도 많이 달라졌다. 어느날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왜 나처럼 정신 멀쩡한 사람을 가둬놓느냐”며 눈을 부라리며 대들곤했다. 가방을 메고 퇴근하든 그에게 대들던 환자에게 그는 “가방을 든 여인을 세글자로 줄이면 뭔지 아세요?”라고 물었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표정을 짓던 그에게 그가 “빽든 년!”이라고 말해주자, 환자는 입에 문 담배를 떨어뜨리며 웃더니 그 뒤부터 순한 양이 되었다.

그는 “정상과 비정상의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신 상태에 대해 진단을 내리는 것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리기 위한 게 아니라, 한 개인을 좀더 잘 이해하고, 그가 지니고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데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지 판단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주 교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산하 교육훈련원 원장 이근복 목사의 부인이다. 이 목사는 70~80년대 산업선교회에서 노동자 목회를 하는 등 평생 ‘돈 안되고 고생하는’일만 사서 해온 사람이다. 새문안교회 대학부에서 만나 결혼한 뒤, ‘가정 경제는 내가 책임질 테니 당신은 할일을 하라’고 한게 주교수였다.  

 그러면서도 주 교수는 “70~80년대 열심히 살다가 방향을 바꾼 분들이 많은데, 조용히 변치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남편이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5가 연동교회 다사랑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토크콘서트 상대자가 그에게 “나에게 있어서 ‘정신 간호’란?”이라고 묻자 주 교수는 “또 하나의 이근복이다”고 답했다. ‘내 삶을 충만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우리가 어른이 되어주자'며 남편에게 속삭이는 주 교수가 보여주는 <마음 극장>에서 많은 이들이 치유의 길을 발견하고 있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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